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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Dec 07. 2016

사서 하는 '죽'노동 끝에 내게 남은 것(2)

산티아고 길을 걷고 온 후,  그 두 번째 이야기.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될 거야*


생텍쥐페리(Saint Exupery)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했던 이 말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과정을 심플하지만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어린 왕자'를 좋아해서 사전을 뒤져가며 원서로도 여러 번 읽었지만, 현재까지도 가장 기억나는 단어가 'apprivoiser'(길들이다)이다. 흔히 쓰지 않는 단어인 데다가 '아프리부아제'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나는 특유의 어감을 혼자 무척이나 좋아라 했다. 우리말로 '길들인다'라고 해서 무슨 자기 식대로 조련하는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그렇다기보다 어린 왕자가 물을 주고 사랑을 주고 정성을 쏟은 장미꽃이 다른 곳에 피어있는 수많은 다른 장미꽃들과 다른 의미를 지니 듯 서로에게 소중한 관계가 되는 과정을 여우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어린 왕자는 확실히 나이 들어 읽을수록 문장 하나하나에 이런 심오함이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고 작가 생텍쥐페리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이렇게 쉽고 간결하게 이런 메시지들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인지...)



 생택쥐페리가 태어난 프랑스 리옹(Lyon), 몇 해 전 리옹에 갔을 때 벨꾸르 광장에서 본 생택쥐베리와 어린왕자/ 광장 구석에 있어 생각보다 찾기가 은근히 어렵다.



오늘 까미노 이야기로 써보고 싶은 것은 '인연'에 대해서다.


어린 왕자가 그렇듯 길 위에서 만난 무수히 많은 인연들 중 서로의 인생에 특별한 존재감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한 그 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그러한 것과 같이. 까미노는 이걸 또 압축적으로 경험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 한 달이나 많게는 사십 여일이 넘는 기간 동안 말이다.


길의 초반 분위기는 대체로 모두 파이팅이 넘친다. 서로의 이름을 묻고 정보들을 공유하며 이 길에 대한 설렘 내지는 포부를 밝히기도 한다. 나도 오랜만에 스무 살 때 여행하던 기분으로 돌아가 약간은 붕 뜬 기분으로 재잘거려 본다. 특히 생장에서 출발할 경우엔 제일 처음 만나는 구간이 '피레네'이니 그 강렬한 체험을 앞두고는 전의가 불타오른다. 그리고 산맥을 넘은 후 나오는 마을, '론세바예스'에서는 드디어 제일 걱정되던 과제를 통과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자신에 대한 대견함으로 잠시 행복감에 젖는다. 같이 온 사람들과도 서로 잘했다며 격려의 말을 주고받는다.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의 순례자 사무실, 이곳에서 순례길 도보 증명을 위한 '크레덴시알'**을 발급받을 수 있다.



순례자 사무실이 위치한 골목길, 이 길을 따라 알베르게***가 모여 있다.


피레네 산맥 중턱에 위치한 오리손 산장의 저녁 시간



그런데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면서 모든 것이 처음과 같지 않게 시들해지는 것이다.

허 구언 날 물어보는 "어디서 왔니?" "왜 왔니?" "한국에서 뭐 했니?" "뭐 공부했니?" "몇 살이니?" 그리고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는 인사. 정말 지겹도록 비슷한 레파토리를 읊어야 하는 것이 점점 귀찮아지기도 했다. 특히 공통의 언어가 없는 사이에서 하는 초딩스런 대화는 날 더 지치게 했다. 어째 영어를 이렇게도 모르냐... 하는 마음에 짜증이 확 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영어를 모르는 게 그 사람 잘 못도 아니고 그 사람은 어쩜 넌 스페인어나 일본어를 이렇게도 모르냐... 생각했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나도 완벽하지 않은 주제에 누가 누굴 탓하겠는가.



어느 날은 내가 머무는 알베르게에서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한 적 있다는, 텍사스 출신의 미국인을 만났다. 나는 그때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너무나 환한 미소로 내게 다가와 "내가 맞춰볼게... 너 한국인이지?" 라며 자신을 한국 체류 경험이 있는 미국인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난 그가 뻘쭘하리 만큼 "아 그래?" 그러고 말았다. 아마 그는 내가 놀라 펄쩍 뛰며 아 정말? 한국에 와봤어? 와우 까미노에서 한국에 살았던 미국인을 다 만나네! 오 어디에서 일했는데? 와 같은 반응을 기대하고 반갑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우리 옆집에 살았었다고 해도 별로 감흥이 없었을 시점이었다. 평소에 난 내가 싫어도 남에게 예의상 어느 정도의 리액션은 해줘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지니고 살아온 소심한 타입이지만 까미노에서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어느 정도는 했던 것 같다;; 성격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기에...) 그는 한국에서의 경험이 본인에겐 너무 좋은 추억이었다고 묻지도 않았지만 내게 말해주었고, '날씨가 좋아서 빨래 잘 마르겠다' 뭐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던지고 방으로 급히 사라졌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그를 몇 번 더 보긴 했지만, 굉장히 형식적인 안부만 묻고 스쳐 지났다.






반면, 별 일 아닌데도 자꾸 속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보통 그저 그렇고 그런 질문들과 대답 속에서는 굳이 나도 나 자신을 다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 '내가 너랑 이런 이야기를 한들 뭘 하겠니....' 하는 시답지 않은 심리적 저항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 마치 알베르게에서 가끔 진행되는 티타임, 저녁식사 시간, 자기소개 시간 등에서 내가 그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정보와 감정의 적정 수준이 있듯, 누구에게나 그렇게 되지는 않는 거다.


그런데 시키지 않아도 속내를 말할 수 있는, 약한 부분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이 길에서도 생기게 마련인가 보다. 이건 정말 상대적인 부분이라 상대가 진심으로 전하는 수준이 서로 일치할 때 가능한 것일 텐데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그렇듯 까미노 길에서도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주는, 인연이라 부를 만한 누군가가 다가온다.



대화가 끊이지 않고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나에게도 마음에 남는 길 위의 인연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미국인 아저씨 '탐'이다.

시카고 출신의 엔지니어로 40대 후반의 그는 하와이, 발리, 서핑을 사랑하는 싱글남으로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의 안정된 생활보다는 자유롭게 여행하고 돈 벌며.. 적어도 겉으로는 인생을 잘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과는 조금 다르게 그는 영성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고 신에 대한 자신 만의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책으로 쓰고 있기도 했다.


어찌 만나게 되었는고 하니.. 생장에서 처음 정해서 들어간 알베르게에, '내 방'? 에 떡하니 계셨다... 고 할까.

내 방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도미토리를 혼자 쓰는 줄 알고 좋아했는데 저녁 먹고 돌아오니 놀랍게도 그 늦은 시간에 체크인을 하시고 야심 차게 나 혼자 쓰려던 그 공간 일부를 점령하고 계셨던 거다.  


좀 더 자세한 사연인 즉 이러했다.


사실 처음 생장에서 만나 알베르게를 같이 찾아 헤맨 한국인 남자분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를 찾아 들어갔더니 대략 10-12인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도미토리 방이 두 개가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방에만 사람이 가득 차 있고, 그 바로 옆방은 완전 텅 비어 있는 거다. 왜 빈 방을 두고 사람들이 그 비좁은 데로 모여 있는지 의아했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고 남자분과 나는 당연히 넓게 쓸 수 있는 방을 선택했다. 그런데 선택하고 보니 차라리 사람 여럿이 같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둘만 한 방을 쓰려니 좀 '그랬다'. 도미토리를 정말 오랜만에 맞딱들인데다 까미노 첫날이기에 적응이 안 되어 더 '그랬다'. 그런 불편함이 전해졌는지 너무나 고맙게도 본인이 옆방으로 갈 테니 편하게 쓰시라고 배려해 주셨다. 나이가 드니 뻔뻔해지는 걸까. 미안함 보다 첫날부터 도미토리를 싱글룸으로 쓰다니 이게 웬 떡이냐 생각하며 아주 신나는 마음이 되어 그 분과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그 길에 이미 까미노 경험이 있는 다른 한국 남자분이 조인하면서 함께 유쾌한 시간을 보냈고 '까미노, 그리 어렵지 않다'는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더 이상 체크인할 사람이 없을 줄 알았던, '내 방'이라 생각했던 그 공간에, 예상치 못한 게스트가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오리손 산장 알베르게, 5분 샤워의 충격에 이어 천장이 날아갈 정도로 코 고는 사람들 덕에 새벽별을 감상하며 날밤을 새웠던 곳.




당혹스럽고, 다소 실망스럽기까지 한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탐 아저씨가 어색한 기운을 뚫고 먼저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옷부터 갈아입으려니 불편해서 옷을 싸들고 나가서 갈아입고 오니 계속 눈치를 보고 있던 아저씨가 오밤중에 어울리 않는 경쾌한 톤으로 'The way'라는 영화 이야기, 산티아고 길에 대한 자신의 기대감 등을 이야기해주는 거다. 끊.임.없.이. 심지어 반지의 제왕 ost까지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말하셔서 이건 뭐 반지원정대라도 되는 듯한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아마 어색함을 풀고 싶어서 혹은 자신은 이상한 사람이 아님을 전달하고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피곤해서 머리만 대면 잘 것 같은 상태에서 덕분에 잠이 확 달아났다. 그리고 시작된 이야기는... 정말 10년 이상 안 친구에게나 말할 수 있을 법한, 아니 오히려 평소에 말해 보지 않은 다양한 주제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마음이 편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또 언제 보겠어 싶은 마음에 더 솔직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언제 보겠어가 아니라 무척이나 자주 봤다. 허허. 나의 '자주 마주치는 사람 리스트'에서 이 분이 거의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으시다. 폰에 GPS 추적을 해 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번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나셨다. 신기하게도.   






삶, 죽음, 종교, 사랑, 일... 에 대한 오만가지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었다.

아무래도 나보다 오래 사신만큼 다양한 경험에서 나오는 말들이 꽤 일리가 있게 느껴졌고 특히 내가 엄마를 떠나보내면서 간절히 알고 싶었던 죽음이나 종교에 대한 궁금증들을 본인이 느낀 범위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여느 성직자에게 물었을 때 받은 대답보다 나에게는 더 와 닿았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이다. 마음 한 켠에서 뭔가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간 받던 위로의 방식과는 좀 달라서 머리를 띵하고 한 대 맞은 것 같았고, 맞은 부분이 풀리면서 점차 시원 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엄마에 대한 걱정과 후회에 얽힌 모든 감정들을 조금은 털어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자신이 놓고 싶지 않았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제 엄마는 행복하다니 더 이상 내가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놓아줄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괴로워하던 관점을 조금은 전환할 수 있는 멋진 위로였다.


그런데 또 하나 신기한 건 그의 말이 엄마가 평소에 나에게 하던 말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국적도 성별도 다른 사람에게서 엄마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우리 딸은 사막에 버려져도 살아 돌아올 거야. 엄마는 걱정이 하나도 안 돼.


엄만 나에게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심지어 내가 대학교 때 유럽에서 전 재산과 여권 등을 몽땅 소매치기당했을 때도 당연히 걱정하셨지만 생각보다 담담하셨다. (덕분에 나는 홈리스쉘터에도 가보았다ㅎㅎ) 애지중지 곱게 키웠다지만 뭔가 내 내면에 강한 것이 있다고 엄마는 믿었다. 그런데 탐이 피레네 산맥을 넘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는데 울컥하는 걸 억지로 참았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야.


그리고 그는 나에게 메주고리에서 산 '기적의 패(메달)****'을 주었다. 이게 길에서 엄마처럼 널 지켜줄 거라면서..

엄마는 늘 내가 해외 나갈 때마다, 혹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기적의 패를 챙겨주었고, 나는 그걸 습관처럼 자주 메고 다니는 가방에 넣고 다녔다. 탐이 준 오묘한 푸른빛이 도는 메주고리 패도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매일 메는 작은 가방에 넣어 까미노 길 내내 함께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특별히 아프지도 않고 마지막까지 무사히 잘 해낼 수 있었다. 엄마가 함께 있는 것 마냥 든든했다.


 

탐 아저씨가 선물로 준 메주고리 기적의 패, 많은 위로와 힘이 되는 선물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가 생장에 도착하기 전 삼사일을 머물렀던 곳이 나와 일치했다. 나는 까미노 전에 5일 정도를 프랑스의 작은 마을 루르드(Lourdes)에 머물렀는데 이곳은 카톨릭 교회에서 유명한 성지로 엄마가 나으면 함께 가자고 약속했던 곳이기도 했다. 나중에 탐만큼이나 자주 보았던 한국인 언니 오빠 부부도 이곳에서 나와 탐처럼 며칠을 머물다가 생장에 왔다 하니 모두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까미노 길에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계속적으로 마주치게 된다는 것이 우연이지만 무언가 '인연'이라는 것은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과의 인연은 까미노 이후 포르투갈의 파티마까지 이어졌다.)



루르드 저녁 로사리오 기도 풍경,  이곳은 치유의 기적이 있다 하여 아픈 사람들이 많이 찾는 카톨릭 성지 중 하나다.





까미노의 전설 중에 첫날 만난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된다는... 누가 만든 전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런 썰이 있다고 한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에게도 이 전설이 해당될 줄은 몰랐다.


글의 중간에 등장했던 '생장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분'과 '탐'을 마지막에 함께 재회했다! 심지어 한국인 남자분은 피레네 이후 까미노 길에서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했었다. 까미노의 마지막을 장식하러 갔던 묵시아(Muxia)에서 첫날 생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같은 알베르게에 머무르는 우연 아닌 우연이 연출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날 같이 식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가 까미노에서 즐겨 듣던, 같이 듣기도 했던 Jimmy Fontana의 'Il Mondo'(영화 '어바웃 타임'의 OST이기도 함)가 나오는 게 아닌가.

 

세. 상. 에.

굉장히 지쳐서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은 시점에서 저-어 길 끝에 마을이 나올 때, 그 마을을 향해 벅찬 마음으로 들어갈 때 절묘하게 내 폰에서 il mondo가 자주 흘러나왔는데 이 노래가 매번 그 벅찬 마음을 배가 시켜주었다.



더 이상 못 가겠다고 생각할 때, 포기하고 싶을 때, 그 길 끝에 마을이 나타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트라이앵글을 치는 것 같은, 차갑게 ‘챙챙’하는 소리로 시작하는 반주부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도 아닌 데다가 스페인 시골 마을의 조그마한 식당에서, 까미노 인연들을 다시 만난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노래가 딱 맞춰 나오다니...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놀라웠다. 내가 너무 놀랍다고 기겁을 하니 탐 아저씨는 노래 가사에 무슨 메시지가 있을 수도 있다 생각했는지 구글에 가사를 영어로 찾아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가사마저도 '까미노스럽게' 마음에 들었다.




Il mondo,

Non si é fermato mai un momento

La notte insegue sempre il giorno,

Ed il giorno verrà


그 세상은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어요.

밤이 가면 언제나 대낮이 따라오고

날은 밝기 마련이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8j4dMWY11y8&feature=youtu.be

Jimmy Fontana, 'Il Mondo'



*아래는 이탈리아 3인조 팝페라 그룹 Il volo버전의 Il Mondo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_CXBGfDacM




신이 우리에게 예비했던 시간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깊고 깊은 인연의 고리가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 있도 있고, 무엇이라 생각하든 그 길에서 힘이 되어 준 인연들에게 가슴 깊이 감사한다. 그들 덕분에 나의 까미노가 더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을 수 있으니.



소중한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그렇게 되면 황금빛 물결치는 밀밭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밀밭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도 사랑하게 될 테니까.

-어린 왕자 中-  





[각주]

*어린 왕자 원문은 다음과 같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한테 너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거고, 너한테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니까...'

(Si tu m'apprivoises, nous aurons besoin l'un de l'autre. Tu seras pour moi unique au monde. Je serai pour toi unique au monde...)


**크리덴시알(Credencial)은 일종의 '순례 증명서'이다. 순례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매일 이곳에 도장(스페인어로는 Sello '세요')을 받아야 한다. 보통 순례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발급받으며, 차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면 이것을 제출해야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도장은 바(Bar), 식당, 성당, 알베르게에서 받을 수 있다.


***알베르게(Albergue)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를 말한다. 보통 5-10유로 정도로 저렴하며, 크리덴셜이 있는 순례자들(도보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자에 한함)만 머물 수 있다. 프랑스 길에는 주립, 시립, 사립 알베르게가 다양하게 있으며, 도착하는 순서대로 침대를 배정한다. 대체로 도미토리를 많이 운영하나, 싱글룸이나 더블룸이 있는 곳도 있어 선택의 폭이 많은 편이다. 나의 경우(9월 말 출발, 11월 초 도착)는 숙소에 자리가 없다던가 선택의 다양함이 없어 곤란을 겪는 경우는 전혀 없었지만, 성수기인 7-8월에는 숙소 쟁탈전이 일어난다고 들었다. 필요시 요청하면 더 있을 수 있는 곳도 있으나 1박을 원칙으로 한다. 약간 규모가 있는 마을의 경우, 알베르게 대신 펜션이나 호스텔, 호텔 등도 선택하여 머물 수 있다.


****기적의 패(프랑스어로 Médaille Miraculeuse)는 1830년에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 나타난 성모 마리아의 계시대로 제작(앞면에는 성모 마리아가 뒷면에는 십자가와 함께 예수의 심장과 칼에 찔린 마리아의 심장,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12개의 별이 새겨져 있음)하여 카톨릭 교회에 보급되었고 이 메달을 통한 많은 치유와 회개가 있었다고 보고 되어 현재까지 카톨릭 신앙인에게 묵주만큼 중요한 성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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