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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Dec 20. 2016

산티아고 길 위에서(3)

그 세 번째 이야기, 비현실적 세계에서 외로움에 대처하는 자세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산티아고 길을 걷다가 가끔 드는 생각이다.

특히 일행 없이 혼자 길을 걷다 보면 이런 생각이 좀 더 자주 든다.

끝없이 이어진 길을 따라 무작정 계속 걷는 것이 무료하고 지루해진 까닭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주변 환경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때, 마치 지구에 내가 홀로 남은 '생명체' 같이 느껴질 때

'도대체 여기서 나 혼자 뭐 하는 짓이야' 하고 생각했다.









오바한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 정말 앞 뒤로 사람이 아-무도 없이 좀 오랫동안 걷게 되면 마치 내가 영화 마션(The Martian)의 맷 데이먼이라도 된 양 다른 행성에 홀로 떨어진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급기야 저 넓디넓은 황무지 같은 땅에 '감자'라도 재배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비장함마저 느끼며 혼자 심각하게 들판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니면 '노아의 방주' 급의 뭔가 엄청난 천재지변이 지구를 휩쓸고 간 이후,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내가 살아남은 유일한 인류였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는데, 비현실적인 풍경을 덜 지루하게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대신 최후의 인류가 나 말고 한 사람 정도는 더 있길 간절히 바라면서... 허나 그 하나 있는 사람이 정말 똘아이거나 어디가 모자란 사람이라면? 그래도 후세대를 위해 힘을 합쳐 잘 살자고 해야겠다... 라고 다짐하며 나름 진지하게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등 뒤에서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하며 누군가 다가오거나 아니면 길에 주저앉아 과일을 먹거나 드러누워 쉬고 있던 사람이 불시에 내 시야에 들어오면서 나의 블록버스터급 SF 시나리오는 급히 마무리되곤 했다.


'그래 나만 있는 게 아니었어.'



혼자인 것만 같은 길에도 사람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다. 사진에서 사람을 찾아보시라.


사람이 드문 길을 걷다가도 쉬어갈 수 있는 장소가 나타나면 늘 사람들을 만난다.


햇살을 받으며 걸어오는 스페인 소녀와 개



그렇다. 여기는 가장 대중적이라는 프랑스 길이 아닌가.

이 길에서 사람 없이 아주 오랜 시간 걷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끔 정말 신기할 정도로 몇 시간을 사람 코빼기도 못 보고 걸은 적도 있으니, 겨울도 아닌 프랑스 길에서 귀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를 어제 처음 해 봤어요.



'사하군(Sahagun)'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프랑스 길과 마드리드 길이 합쳐지는 어떤 지점이 있었는데 그 무렵쯤에서 만난 한국인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걷는 길은 다양하다. 그중 나는 '대중적인' 프랑스 길을 걸었지만 출발지에 따라 '은의 길', '마드리드 길' , '포르투갈 길',  '북쪽 길' 등이 있다. 유럽 사람들 중에는 그냥 자기 집에서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 독일이나 프랑스 사람 중에 자기 집에서부터 시작해서 걷고 있는 사람 몇을 보기도 했다.)

 

십여 일이 훌쩍 지난 시점에 처음으로 '부엔 까미노(Buen Camino)'를 써보다니... 이건 프랑스 길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엔 까미노'는 길에서 눈만 마주쳐도 버릇처럼 하던 인사일진대... 그리하여 매일 어림잡아 수 십 번은 하고도 남았을, 그 흔하디 흔해 빠진 인사말을 한 번도 나눌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사람이 그렇게 없는 길을 여태껏 용케 걸어온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동안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혹시 길을 잘 못 들었나 불안해지고 자주 외로워지기도 했던 그간의 경험들을 비추어볼 때 십여 일 넘게 사람이 없는 길을 걸어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을 터다. 성격도 쾌활해 보였기에 왠지 더 힘들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다시 그 길을 걷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이 정도로 외로울 줄 미리 알았으면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 했다.




철의 십자가에서 무언가를 오래도록 적고 있던 아저씨, 순례자들은 이곳에 자신이 들고 다녔던 물건들 중 일부를 놓고 가거나 자신의 돌을 올려놓고 가기도 한다.




사실 다른 길을 프랑스 길과 비교하자면, 뭔가 엄청나게 더 험준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실제 더 험준한 요인이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함께 걷는 사람이 없거나'

'사람 사는 곳이 없거나'(마을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숙박시설 찾기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람에게서 느끼는 온기가 없어서'

더 힘든 것 같다.

한마디로 외로워서 더 힘들단 이야기다.

 


인구 밀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서울이라는 곳에 평생을 산 사람에게 영화 '마션'을 연상하게 하는 곳을 체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바라마지 않던 꿀 같은 휴가다. '혼자 좀 내버려둬'를 외치지 않아도 혼자 있게 되는, 자발적으로 자처한 '고독'을 경험할 수 있으니,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는 현대인에게 이보다 훌륭한 힐링 장소가 어딨겠는가.

 

그러나 그 자처한 '고독'이라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 오래지 않아 '외로움'으로 변할 때가 많다.

누군가에게는 덧없이 평화로운 고독의 시간일지 모르나 또 다른 이에게는 그저 쓸쓸한 '외로움'의 시간일 수도 있다. 어떻게 느끼고 체험하는가는 철저히 개인에 따랐지만 말이다.



혼자 가는 이 분은 과연 평화로울까. 쓸쓸할까.  



5년 전 즈음인가...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를 알게 된 건 터키에서 메튜라는, 튤립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남자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소개해서였다.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라는 사람의 실화이고, 배우 숀펜이 감독을 했다는 정보에는 그런가 보다 했지만 남자 주인공이 너무 쿨하다며 자신은 그처럼 진정한 삶을 찾기 위해 언젠가 자연으로 떠나는 것이 로망이라고 몇 번이고 말하기에... 얼마나 멋진 영화인지 한국에 오면 꼭 찾아봐야지... 하고 있었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 2007)




영화에서 주인공은 대학 졸업 후 전 재산을 구호단체에 기부하고, 미래가 보장된 삶을 내던지고 홀로 자연으로 들어간다. 가족들과의 연락도 끊은 채 도시 문명에서 벗어나 철저히 야생에서 생활하면서 진정한 자유와 삶의 가치를 발견하겠다고 떠났으나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버려진 낡은 버스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메튜가 영화를 중간까지 보고 결말을 보지 않았나 의심이 되었다. 모순 덩어리로 보이는 현실에서 그가 찾는 진실은 없다고... 느낀 젊은이가 가질 수 있는 문제의식과 그걸 자연에서 찾겠다는 실험정신은 날 것 그대로의 광대한 자연 풍경과 함께 중반 이후까지는 그가 말한 대로 꽤나 멋지게 보였다. 속이 아주 뻥 뚫리듯 시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죽는다. 그것도 굶어 죽는다. (실제로 야생의 독초를 잘못 먹은 것이 원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렇게 위험한 곳에 가면서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은 잘못일까. 아니면 뼛속까지 도시인이 감히 자연에서 살겠다는 오만을 부려 이런 유쾌하지 않은 결말을 초래한 것일까. 그는 자신이 버려진 버스 안에서 이런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리라고 애초에 상상이나 했을까. 여하간 난 매튜가 영화를 끝까지 보고도 그가 쿨하다고 그렇게 말한 것인지 정말 의심스러웠다.   


나중에 발견된 그가 남긴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Happiness is only real when shared.

(행복은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권위주의, 물질적인 세속주의에 경도된 사회와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고 순수한 자연의 질서에서 해답을 얻고자 했지만 결국 그가 마지막에 그리워한 건 완벽하지 않은 세상일지라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힘든 것도 좋은 것도 같이 나눌 사람이 없다면 길의 마지막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홀로 있음을 즐길 줄도 알면 좋겠지만

실제로 길에서 상당한 시간을 고독이 주는 평화로움, 자유를 즐기기도 했지만

그건 언젠가 같이 나눌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혼자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닌 길.

까미노 길은 고독하기도 하지만 누군가 같이 있어 덜 외로운 길이기도 하다.

앞에 가는 저 사람을 바라보며 내가 든든함을 느꼈듯이,

누군가에게 나도 거기에 존재했기에 든든함이 되어 준 적이 있지 않을까. 

그랬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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