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레 미제라블을 봤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말고 아래 영화, Les Misérables.
여기 프랑스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요즘 제주에서 며칠 동안 프랑스 영화를 상영해 주고 있거든.
보는 내내 숨이 막혔다. 그 분노와 두려움.
자신의 정당화를 위해 정의나 선으로 포장한 '미움'을 쓰는 어른들.
두려움과 화의 돌림노래 같은 이야기, 어른(아이)들은 자신이 그러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진짜)아이들에게 그걸 들려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그 이야기를 아이들을 통해 다시 듣는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너무 우울했다.
진짜 어른은 어디 있을까.
분노에 갇힌 사람들.
두려움에 떠는 자신에 대한 화로 상대를 공격하는 어른들.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
과연 절대적 선이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더욱 느껴진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걸.
차라리 드론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드론의 시각.
사랑을 줄 수 없는 거라면.
영화에서 한 아이가 촬영하는 드론의 시각은 그냥 보는 것 그대로다.
그것이 경우에 따라 관음으로, 범죄의 물증으로, 상대에 대한 미움/복수로 해석을 달리하여 존재하게 되나 처음은 그냥 그것이다. 어떤 필터도 없는 그냥 현상 그대로. 그건 마치 서커스 단에 갇힌 아기 사자를 데려온 아이의 처음 시선 같다. 그것이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부풀려지고 커지는지 그 거대한 화의 화염 속에 아이들을 어떻게 초대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걸 겪은 아이들이 어떤 필터를 가지게 되는지. 그걸 보고 있는 내내 아주 숨이 막혔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교정하고 바로잡는다고 나서는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또 다른 분노를 답습할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어른이 가졌던, 그 보이지 않는 거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해 나갈 거다. 사실 영화 초반부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그 분노가 곧 터질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가 이 분노와 참담함 속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태원 참사, 우리 사회에 또 한 번의 비극이다. 세월호도 그렇고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토록 큰 희생자를 내는 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건 왜 일까. 이 계기로 다시 돌아봐야 하는 것이 반드시 있을 거다.
그런데 분명한 건 이런 큰 참사를 통해 우리는 분통을 터뜨리고 슬픔에 가슴 아파하고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표출한다. (물론 외면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타인을 향하고 있지만 (그것에 반응하는) 온통 흐르고 뛰어다니는 그 감정의 덩어리는 내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억압된 그 감정들, 슬픔, 분노, 그건 비단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지만 억압된 자신 안의 감정들, 이걸 통해 터트리고 내보이게 되는 그것들은 자신의 무의식 안에 흐르는 것을 보여준다. 평소 너무 잔잔해서(혹은 그런 척해서) 감히 내 보이지 못했던 것, 그것들이 타인의 이야기 안에 흐르고 있다. (혹 아무것도 안 느껴지신다고 한다면 그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억눌러서 차마 올라올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집단의 무의식을 어떤 식으로든 공유하고 있다)
어릴 적 너무 낭만적이야 하며 프랑스를 좋아했더랬다. 스무 살이 되고 제일 먼저 나간 해외도 프랑스였고 오래도록 내게 좋은 추억이 되는 기억들이 유독 참 많다. 그런데 나는 그 사회의 속살을 몇 년 전 책을 내자마자 갔던 그 시리도록 추운 파리에서부터 조금씩 보았다. 그리고 전혀 다른 그 사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더 느끼고 있다. 이 과정이 어쩌면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의 모양새와 꽤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았던 '나 자신'안에 억압된 감정들과 느낌들이 피어오르며.. 몰랐냐. 그것도 다 니 이야기야.라고 알려주었거든. 그리고 내 앞의 거울들을 통해 또 그걸 선명하게 보았거든.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이 노래의 가사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 백만 송이 장미.
https://youtube.com/shorts/_azI2Rbm41U?feature=share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영화 보고 나니 더 별이 보고 싶어졌다.
야심 차게 장만한 고프로로 며칠간 스타트레일을 찍어보겠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달님만 백 장쯤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