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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끝없는 생명의 이야기

by Iris K HYUN



돈키호테를 완독한 적은 없다. 살면서 여러 번 펼치긴 했는데 여기저기 띄엄띄엄 읽었고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만 몇 번 봤다. 스페인, 멕시코를 여행할 때 오래된 장서로 대학이나 개인이 보관하고 있는 버전을 구경한 적이 있다. 내용은 대강 아니 누군가 말하면 맞장구는 쳤다.



지난해 여름 제주 있을 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돈키호테를 찾아댔고 관련 책 중 가장 재밌게 읽었다. 아래 책.



돈키호테, 끝없는 생명의 이야기, 김해완 작가, 북드라망 2022



책도 책인데 작가의 이력이 흥미롭다. 뉴욕, 쿠바, 스페인, 작가가 걷는 길의 흔적이 돈키호테만큼 재밌다. 거두절미하고 책의 일부 문장을 여기 공유합니다. 지난 여름날 멋진 밤을 선물해 준 작가님에게 감사하며.




+ 결말까지 좌충우돌 돌진해 보지 않는 한 이 사실을 진심으로 수용할 수가 없다. 체득할 수가 없다. 길 위에서 시험받지 않는 무지는 내면에 단단한 똬리를 뜬 채 조용히 시간을 좀먹는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로, 시간의 흐름에 무작정 떠밀려 가게 한다.



++ 레판토 해전에서 기독교의 신은 무슨 계시를 내렸던가? 지중해의 세르반테스는 무엇을 위해 열정을 불태웠나? 그가 한쪽 팔과 바꿔 가며 일조했다 믿었던 스페인의 영광은 정말로 실재했는가? 허무하게도 모든 실체가 사라진다. 다들 각자의 환상 속에서 제 길이 곧 세상의 길이라고 믿었을 뿐이다.



+++ 어떤 '꿈'을 꾸든 간에 안정성과 확실성에 의존하려는 정신은 존재와 세상을 분리시키는 '활자'를 탈출하기 어렵다. 어떤 주제를 다루든 간에, 주객 관계에 갇힌 언어는 자아의 덫을 뛰어넘어 낯선 세상으로 정신을 인도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겠다면서 자의식의 성채만 쌓아 올리는 것이다.



++++ 세르반테스가 책에서 보여 주려는 것은 그가 다시 만난 길, 길의 모습 그 자체이다. 이 길은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경주마처럼 질주하던 외길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마침내 받아들이고 확실성을 붙들려는 욕망을 포기할 때 비로소 만나게 되는, 어떤 경로도 미리 설정되어 있지 않은 세상의 길이다.



+++++ 이 길에는 무엇이 있을까? 타자들이다. 예전처럼 목표를 향해 돌진할 때라면 나의 노선과 상관없는 자들이라며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길로 나오는 순간 잡다한 사람들이 통일된 방향 없이 우글거리고 있는 게 전부다. 존재하는 것, 살아있는 것, 부대끼는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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