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다음 질문은 이거였다.
오가와 선수가 복싱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영화는 오가와 게이코라는 청각 장애를 가진 복서의 이야기다.
장애를 이겨내고 챔피언이 되는..
그런 환희의 팡파레를 향해 달려가는 영화가 아니라 좋았다.
그보다는 '과정의 그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어느 날 룸메는 묻는다.
맞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라고.
시합 후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그녀는 그 물음에 두렵다고 한다.
매번 똑같은 두려움을 마주해야 하는 그걸
그녀는 대체 왜 계속하는 걸까?
영화 안에서 그녀는 1승을 한다.
감격에 겨운 것도 잠시일 뿐
사람들의 축하에도 웃는 얼굴을 주문하는 카메라 앞에서도
덤덤하다. 대략 우물쭈물 어색하게 서 있다.
상대 선수는 병원에 갔대.라는 누군가의 말에
자신의 기량이 이토록 강했구나 특별히 우쭐하지도 않는다.
시합의 결과가 중요하다지만
누군가를 이기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큰 의미는 아닌 듯했다.
그녀는 그럼 왜 하는 걸까?
그녀가 복싱을 왜 하는지는
직접 그녀에게 물어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 그녀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의 감각으로 보는 세상이 조금은 만져지는 느낌이다.
그녀는 소리 없는 세상에 산다.
소리가 주는 입체적 움직임은 다른 감각들이 대체한다.
그녀에게 복싱은
자신의 감각으로 그릴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다.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그녀의 삶은 전형적인 틀에 갇힐 수도 있다.
청각 장애가 있으니 이런 일이 어울려 뭐 이런 틀.
어쩌면 그녀에게 복싱은
그 틀로부터 자유로운 움직임이 아닐까.
상대의 움직임이 들리지 않는 건 큰 핸디캡이다.
하지만 그녀는 반복되는 노력으로 더욱 정교하고 강한 움직임을 만들어간다.
두 눈으로 온몸으로 상대를 읽어낸다.
들리지 않는 어려움은, 거기서 벌어지는 상대와의 갭은
창의적인 자신이 되게 하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삶의 아티스트다.
그녀의 작품인 그 움직임은
그 모든 과정의 창의성을 담고 있다.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빛이 일렁이는 움직임을 더 세세하게 볼 수 있다.
소리로 인해 흩어지는 모든 감각이
하나에 집중되면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게 거기 있었어? 놀라기도 한다.
새롭게 보인다.
그녀의 감각이 그리는 세상은
텅 비어 있는 심심한 그런 느낌이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느낌. 그녀는 충분히 그걸 창조하며 살아가니까.
그렇다면 그게 다 일까?
복싱을 하는 이유.
복싱장이 문을 닫는다.
그녀가 땀을 흘리며 움직임을 갈고 만들던 그곳이 문을 닫게 된 거다.
시설이 더 좋고 시스템도 잘 되어 있는 새로운 곳으로
추천해 주지만 그녀는 내키지 않는다.
복싱을 잠시 쉬겠다고 한다.
왜 그런 걸까?
자신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그 시선 때문이었다.
그만 두겠다고 말하려고 가는 길에 이 장면을 우연히 본 거다.
그만 두겠다고 썼던 편지를 찢어 버렸다.
조그마한 티비에 코를 박고 자신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그 시선,
그걸 느끼니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 시선은
어쩌면 자신이 의미를 부여할 생각도 못하고
그저 하던 과정을
더 큰 애정으로 지켜보고 응원한다.
어찌 그만 두겠나.
혼자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과정은
혼자 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세상은
모두가 함께 일렁이며 움직여 만드는 것이었다.
서로 겹치며 흐르는 빛의 무리들처럼.
내가 쓰는 이야기는 나의 삶의 가장 창의적인 움직임이다.
나의 감각이 그릴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다.
이제는 좀더 단단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