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 계속 눈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내가 본 사람 눈.
그 하나하나의 세계들을 떠올려 보는 게
지난 여정을 정리하는 느낌이다.
여행을 다니며
남의 눈이
내 눈처럼 느껴지는 순간
매번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영화관에 갔다가
오랜만에 일본 영화를 봤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순전히 제목이 나를 낚았다.
잘 낚였다.
16mm 필름 카메라로 보는
모든 풍경이 까슬까슬하면서 따뜻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여자 복서가 주인공이다.
그녀의 세계로 점점 다가가는 시선이
필름의 느낌과 닮았다.
아주 처음 영화의 시작은 청각적 자극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딱히 bgm이 없는 화면 안에서 일상의 모든 소음이 크게 울린다.
정작 그녀는 느낄 수 없는 소리들.
반대로 그녀가 등장해서 수어를 쓰면
우리는 그 움직임을 바로 이해할 수 없다.
동시 자막을 쓰지 않기에 한 템포 느리게 그 뜻을 알게 된다.
수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는
우리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그들을 본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를 이해하는 감각의 접점이 생긴다.
소리 자극이 없으면 세상이 암흑일 것 같았는데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것들이 보인다.
깊은 고요 속에 빛이 움직인다.
그게 이렇게까지 섬세할까 싶었다.
아름답다.
마지막엔 소리 없는 풍경들이 나열된다.
우리는 이제 그녀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완벽하게 같은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그 눈으로 본 세상도 이야기가 가득했다.
풍성했다.
지금 내가 보는 세상은 어떠하지?
상대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떠한가?
나는
어떤 세상을 보겠는가?
오가와 선수가 복싱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건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