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기억을 잃은 사람들의 섬

by Iris K HYUN



1부< 기억을 잃은 사람들의 섬



고립된 작은 섬이었다. 아이를 잃은 여자가 그 섬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누가 썼는지, 언제 쓴 것인지도 모르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책의 맨 앞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작은 섬에서 발생한 믿을 수 없는 일에 대해 기록으로 남깁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숨을 크게 쉬고 책장을 넘겼다.



천재지변처럼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느 날 눈을 뜬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기억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참으로 기이한 점은 타인에 대한 세세한 정보는 기억할 수 있다는 건데 정작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굵직한 요소들은 기억에서 몽땅 사라졌다. 타인을 설명하는 정보 안에서 추측해 보지만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기에 나는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사람들은 한동안 자신이 누군지 여기저기 묻고 다녔다.


나를 기억해? 나는 어떤 사람이니?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는 사람들은 타인은 기가 막히게 잘 설명했다. 상대로부터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또 수집했다. 그렇게 자신의 조각이 되는 퍼즐 하나하나를 귀하게 주워 담았다. 더 넓게 움직이니 그만큼 다양한 퍼즐이 생겼다.


내가 누군지 더 모르겠어.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의 퍼즐이 만드는 큰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누구인지 모르고 사는 편이 더 편했다고 자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퍼즐은 자신에 대한 정보일지라도 타인의 기억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자신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사람들은 절망했다.



모든 걸 기억하는 고양이가 있다. 하얀 털에 푸른 눈을 가진 고양이는 이 작은 섬에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은 모든 걸 기억하는 고양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한 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고양이는 그 나무 위에서 살고 있다. 뭘 먹는지 어찌 사는지 알 도리도 없으나 늘 거기 있다.


하얀 고양이는 놀랍게도 사람 말을 하는데 그 언어의 종류도 오는 사람에 맞춰 그때그때 변환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언어로 같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작은 섬에는 놀랍게도 세상의 모든 언어가 다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 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절실한 사람들은 다른 언어로 같은 말을 하며 고개가 꺾이도록 고양이를 올려다보았다. 고양이는 매번 얄미울 정도로 딴청을 피웠다. 그나마 말을 해도 직접적인 게 아니라 더 애가 탔다. 주로 하는 말은 이랬다. 미안하지만 기억을 자신이 찾아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한들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일부 사람들은 믿을 테니 제발 자신에 대해 기억하는 것을 모두 알려달라고 했고 어떤 이는 역시 믿을 수 없는 요물이라며 시간 낭비했다고 툴툴대며 자리를 떠났다.



시간이 지나도 그곳에 남아 끝까지 자신은 누구냐고 물어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눈은 고양이의 마음을 점차 두근거리게 했다. 눈은 저마다 색깔도 모양도 다 달랐지만 고양이의 귀에는 같은 말로 들렸다.


살고 싶어.


어느 날이었다. 고양이는 같은 자리에 앉아서 해가 바다에 닿으며 붉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거대한 바다가 그 붉은 기운을 온통 삼켜서 하늘로 다시 뿜어낸다. 시시각각으로 더 예쁘게 붉어지는 색이 고요해서 고양이는 살아 있는 순간이 좋았다.


봐, 움직이잖아.


몹시 감동한 얼굴의 고양이는 나무 아래 사람들이 들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사람들은 놀라서 드디어 입을 연 고양이를 쳐다봤다. 가슴이 뜨거워진 고양이는 무언가 결심한 듯 게슴츠레한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의지로 가득 찬 미간을 움직이며 입을 야무지게 벌려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각국의 언어로 변환되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 순식간에 들어갔다.



당신이 여길 떠나 마주하는 사람 중에 가장 인상적인 ‘눈(eye)’을 찾아오세요. 그 눈에서 무얼 보았는지 내게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알려줄게요.




그곳에 끝까지 남아 해결책 같지도 않은 이 말을 듣는 사람은 겨우 일곱 명뿐이었다. 그들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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