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섬의 기억_무명 4

Cuba 쿠바 (1)

by Iris K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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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名) 4

Cuba 쿠바




실내는 더웠고 땀이 온몸을 타고 이리저리 흘렀다.


몸에 흐르는 이 끈적이는 것의 정체가 다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지경으로 무명 4는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엉켜 있다. 레게톤의 음악은 몸 전체를 감싸고 진동한다. 소리에 반응하는 심장이 목을 타고 올라와 머리 안을 뱅글뱅글 돌며 규칙 없이 울린다. 한 남자가 들고 온 럼을 입에 빠르게 털어 넣자마자 옆 사람의 럼이 무명 4에게 쏟아졌다. 서로 쳐다보며 웃었고 또 다른 남자가 건네는 럼을 서로 권하다가 또 쏟았다. 이쯤 되니 내 땀인지 네 땀인지 럼인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인지 모를 것들로 완전히 척척해진 몸은 조금 전의 보송하던 몸의 어색함을 사라지게 했다. 건조하게 부딪치던 몸들은 어느새 미끈하게 꿈틀거리는 생선처럼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감겨 공간을 떠돈다.



다들 오늘만 살고 죽자는 거 같지 않아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남자가 무명 4에게 말을 걸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이곳에 모이기로 약속이나 한 건가. 그야말로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트리니다드의 어느 작은 바에서 무명 4는 뜨거운 열기와 데낄라에 취해 흔들리는 사람들 사이를 겨우 비집고 나왔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공간을 찾는다. 두리번거리던 눈이 그의 눈과 마주친 거다.


전 여기서 살사를 가르치고 있어요. 닉이라고 해요.


남자는 평범한 카키색 팬츠에 흰 셔츠라는 단순한 조합도 스타일리시하게 느껴질 만큼 탄탄한 몸매를 가졌다. 얼떨결에 그의 악수를 받았다. 그는 자기 앞의 의자를 끌어다가 무명 4에게 내준다.


살사를 가르치신다고요?


네, 가르치기 시작한 건 한 삼 년쯤 됐어요. 관심 있어요? 제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제집은 좁아서 안 되고 원한다면 친구 집에 공간이 있어서 거기서 가능해요. 가르쳐 줄게요. 한 번 배워봐요.


연락처가 적힌 구겨진 종이를 건넨다. 여기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본 건물 외관의 빛깔이랑 비슷하다. 남자의 눈. 페인트가 얼기설기 벗겨진 오래된 건물은 물빛 같았다. 아마도 처음은 훨씬 선명한 파란색이었을 거다.




눈이 시리다. 너무 쨍한 파란색이야.

울트라마린 안료에 숨이 턱 막힌 적이 있다. 유럽의 어느 미술관에서 본 성모마리아의 옷감에 쓰인 그 색은 밖으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만져지듯 너울거리는 색이 너무 선명했다.

울트라마린이 당시엔 금보다 비쌌대. 청금석 100그램 안에 겨우 4그램만 들어 있었다고.. 여기 쓰여 있네.

친구는 이렇게 말하며 금광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감탄했고 여자는 그 푸른색이 자신을 온통 휘감기라도 할까 뒤로 물러섰다.




여기로 입장하는 문은 아주 연한 푸른색이었다. 세월에 깨지고 온통 부서진 채로 그 옛날처럼 존재하는 건물과 잘 어울린다. 체 게바라가 아바나로 입성할 때 찍은 과거 사진 속 풍경과 어쩌면 별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른다. 아쉬운 대로 덧칠로 메운 벽마저도 과거 이야기가 현재처럼 말을 거는 동네다. 시간의 흐름을 알기 어렵다.


제멋대로 벗겨진 문을 일단 열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내부의 에너지는 일상의 고단한 삶과 전혀 다른 서사를 쓴다. 설령 내일이 오지 않아도.. 정말 그래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애써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열린 그곳은 감추는 것이 없어 오히려 벌거벗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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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지만.. 제가 쿠바에 오래 있을 게 아니라서요. 좀 길게 있으면 한번 배워보고 싶은데 정말 아쉽네요. 무명 4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거절했으나 포기를 모르는 쿠바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원데이 클래스도 가능해요. 체험만 해볼 수도 있으니 언제든 연락 줘요. 투명한 푸른 눈이 반짝인다.


한국 오면 영업 끝내주게 잘하시겠어요. 무명 4는 구겨진 연락처를 펴며 웅얼거렸다.


네?


아니에요. 그런데 몸치도 가능한가요? 저 진짜 춤이라곤 춰 본 적이 없어서.


무명 4는 그의 적극성에 약간의 부담을 느끼며 그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팔, 다리 있고 음악 소리 들리죠? 그럼 오케이.


하하 그렇게 간단할 거 같지 않은데.


어색하게 웃었다. 갑자기 그가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무명 4에게 더 가까이 앉는다.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밀고 말한다.


될지 안 될지는 해보면 알겠죠? 음.. 즐기는 게 어려운가요? 왜 그런지 알아요?


.......


남의 시선을 계속 신경 쓰기 때문에 그래요. 춤을 출 때도 남에게 보이는 나를 생각하죠. 어릴 때 그냥 막 신나서 쾅쾅 뛰고 구르고 춤인지 뭔지도 모르게 움직이던 적 없었어요? 한 번도?


.......


분명 있었을 거예요. 나이 들어서 누굴 의식해서 추는 춤 말고요. 굳이 예쁘게, 섹시하게 보일 필요도 없는 본능적인 기쁨을 따르는 춤 말이에요. 우리는 그렇게 춤을 춰요. 그 순간 우리의 욕망에 충실하죠. 춤도 본인이 즐기려고 추는 거 아닌가요? 즐길 수 없다면 그만큼 슬픈 게 어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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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 모든 사진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사진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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