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월드 Bubble World (3)
> 고양이의 꿈 6 <
버블 월드 Bubble World
꿈이니까 용기가 나. 나 다시 사람인 것 같은데. 사람의 몸으로 이 정도 용기는 대단한 일이잖아. 뭐 하는데 용기 타령이냐고? 나와 다른 색의 버블을 제대로 안아보려고 해. 그렇게 결심하고 길을 나섰어. 나오자마자 층고가 높은 2층 건물이더라고. 겁도 없이 뛰어내렸어. 도톰한 젤리발이랑 온몸으로 충격 분산이 가능한 균형 감각도 없는 사람 몸으로 말이야. 착지를 잘했어. 꿈이라서 어찌어찌 본능이 살아났나 봐. 다음 계획이 뭐냐고? 없어. 그냥 가는 거야. 근데 말이야. 푸른색 버블을 통과할 때 좀 미안했어.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벌써 미안해지는 건 이 사람의 몸으로 대단히 익숙한 감정 같아.
가는 길에 검은 고양이를 만났어. 녀석은 숨 막히게 더운 날 정신없이 뛰어다녀. 가볍기도 하지. 멀리서 보니 검은 비닐봉지인 줄 알았어. 뭐 하나 봤더니 거품 장인이 쏘아 올린 그걸 잡겠다고 저 난리야. 동족이지만 저렇게 제멋대로 움직일 때면 외면하고 싶어져. 잠시라도 다른 종족인 걸 다행으로 생각해. 앞발로 거품을 톡톡 쳐서 터트리는 거에 재미를 붙였나 봐. 생기기 무섭게 죄다 쳐서 존재한지도 모르게 공중으로 흩어버려. 큰 거품 하나가 아주 높이 떴어. 세상에.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는 법도 없어. 설마 했는데 과감하게 점프해서 그걸 내려치더라고. 그 안에 말려있던 족자가 좌르르 펼쳐져 내렸어. 그 뭐냐 애들 운동회에서 박 터지는 느낌으로. 한국 고유의 서체로 쓴 글씨야. 고풍스럽기도 하지.
당신의 눈에서
기쁨을 발견하게 해주세요.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서
아이는 자유로울 거예요.
엄마 당신이 그러하듯.
당신은 내게 불완전하게 완벽해요.
검은 고양이는 대수롭지 않게 떨어진 족자를 밟더니 뛰기 시작했어. 미쳤지. 이 더운 날. 난 더 미쳤어. 뭘 하러 나온지도 잊고 아이를 쫓기 시작했으니까. 검은 녀석을 따라가느라 여간 숨이 찬 게 아니야. 이 몸으로는 기껏 몇 미터 뛰면서도 땀이 이토록 나니 기가 막혀. 심지어 내 발에 걸려 내가 넘어질 뻔했어. 놓치긴 싫으니 별 수 있어. 죽도록 뛰어야지. 검은 아이가 드디어 멈췄어. 어느 하얀 방 앞에서. 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갔던 정신을 이 몸에 구겨 넣고 있었고. 웃지 말라고. 검은 아이는 어울리지도 않게 턱을 괴고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어. 어찌나 진지한지. 말도 못 걸겠어. 그림 앞에서 오랫동안 침묵 수행을 하던 아이가 입을 열고 음식을 먹듯 오물조물 말을 해.
하얀 옷을 입은 여자는 푸른 말 갈기색 옷을 입은 남자를 따라나섰어. 그들은 미련 없이 날아가. 온통 화염으로 뒤덮인 저 아래 세계를 뒤로하고. 구원이라 생각했어. 승리의 기쁨에 도취 되었지. 한동안은 말이야.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그들의 파라다이스를 생각하며. 여자는 별안간 소스라치게 놀랐어. 초록 얼굴을 한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의 얼굴이 엄마로 변한 거야. 여자는 어떻게 했을 거 같아?
검은 녀석이 나를 보며 물어.
나는 아직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답했어.
음. 말에서 뛰어내려. 저 밑에 화염 속으로.
검은 녀석이 웃으며 말해. 그게 끝일까?
검은 아이는 이 이야기를 이어주길 바라는 눈빛이었어. 난 고요한 그 순간이 참 좋았어. 소리가 사라진 세계가 편했어. 소리 대신 진동이 잔잔하게 몸을 쓸었어.
여자가 뛰어든 곳은 푸른 바다였어. 지옥인 줄 알았던 붉은 화염의 세계가 바다였다고. 여자가 물 위로 떠올라. 아주 처음처럼.
기인열전에 나가도 좋을 만큼 큰 버블을 만들어 낸 여자가 있었어. 여자는 아이의 눈을 보며 말해.
사랑하는 아가, 내가 너를 위해 만든 이 거품은 터트리기 위해 만들어졌단다. 애초에 우리는 버블 없이 만났으니까.
난 검은 아이를 꼭 안았어. 내 버블이 터져서 망가질 줄 알았는데 더 또렷한 색을 보았어. 내가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색이었어.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 모든 사진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것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