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여행 이야기 5.
평생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제주에서 난 프랑스어를 무려 '가르친다'. 내가 배워도 모자랄 판에 한 학생을 가르친다. 나도 아주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함께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얼마 전 수락했다. 그래도 다음 달 유학 가는 그녀의 삶을 망칠까 두려워 최선은 다하려고 한다. 그녀는 기초만 다지면 된다고, 또 프랑스 가서 열심히 하면 된다며 고맙게도 나의 불안감을 낮춰 주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 학생을 쳐다보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구랑 닮았더라 생각을 해보는데 학생을 보내고 불현듯 생각났다. 대학교 1학년 여름,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샹베리에서 만난 중국인 Yayi, 바로 그녀였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 정처 없이 길을 헤매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어 주었고, 친절하게 내가 머물 집까지 데려다주었던 친구, 신기하게 그녀를 '아주 많이 빼닮았다'. 당시 프랑스어의 시제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현재, 과거, 미래를 내 맘대로 넘나들며 정체불명의 언어를 쓰던 나를 인내심 많은 그녀는 무척이나 많이 챙겨 주었다. 초기에 난 얼마나 그녀에게 의지를 했던지 중국식 억양이 들어간 그녀의 프랑스어까지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 언니, 오빠는 중국 사람이 말하는 것 같다며 나를 놀렸다. 그녀는 설리번 선생님처럼 자신의 입모양을 보고 따라 하라면서 중국식 억양이 가득한 프랑스어를 내게 열정적으로 알려주었는데 나는 순종적인 학생이 되어 열심히 따라 했었다. 그런데 내가 원어민도 아닌 주제에 지금 이 학생에게 발음을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는데, 이 순간이 묘하게 그때 같아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얼마 전 서울에서 반가운 동생이 놀러 왔다. 제주에 좀 있었다고 무뎌진 나의 마음에 다시금 신선한 자극을 주고 간 그녀 덕분에 뻔한 것도 좀 '낯설게 보기'를 하고 있다. 그녀의 숙소가 위치한 곳이 동쪽 어드매인 까닭에 난 덩달아 '동쪽'을 새로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동쪽에 위치한 종달리라는 이름도 예쁜 마을에는 '소심한 책방'이 있다. 소심한 책방, 이곳과 너무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대범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녀간지도 모르게 조용히 머물다 갈 수 있는 그런 작지만 사랑스러운 공간이다.
독립 책방으로 입소문을 타고 여기저기 많이 소개된 곳이기도 하나 난 제주 온 지 꽤 되어서야 이곳을 방문했다. 제주시에서 가까운 책방들은 많이 다녀 보았지만 이곳은 웬일인지 궁금함에도 선뜻 발길이 닿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제주에 있으면 있을수록 제주가 더 크게 느껴진다. 예전에 여행 다닐 때는 동서남북 휙휙 잘도 다녔건만 제주시에 정주하는 지금은 아주 큰 맘먹고 어쩌다 한 번 씩 동쪽으로, 서쪽으로, 남쪽으로 간다.
가끔 여행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기억 속에서 (선명하지 않은 오랜 무성영화를 빨리 돌리는 것처럼) 실체가 분명치 않은 덩어리로 기록되어 있다가 불현듯 어떤 향을 맡는다던가, 어떤 소리를 듣는다던가 하는 식의 한 가지 감각에 의해서도 아주 디테일하게 천천히 재생되는 것 같다. 마르셀 푸르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를 맡으며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그는 홍차와 마들렌을 매게로 잠재의식 속 기억들을 소환해 내는데 거기에는 당시 주변의 공기, 냄새, 소리, 느꼈던 모든 감정 등이 종합적으로 들어 있다.
종달리에서 무척이나 여유로운 오후, 난 오랜만에 다시금 여행하는 기분이 되어 그곳에 있었다.
자그마한 책방 한 구석에 책 몇 권을 들고 와 앉았다. 외관은 여타의 다른 독립 책방들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했으나 들려오는 음악이 이곳의 색깔을 다르게 기억하게 한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의 정원(Attila Marcel, 2013)' ost, 그곳에 머무는 한 시간이 족히 넘는 시간 동안 그 앨범의 음악들이 반복되어 재생되고 있었다.
작은 스피커 앞에 두 개 밖에 없는 의자를 누가 찜할까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고 거기 주저앉아 있었다. 그 영화 주인공의 기억 속에서 그의 엄마가 부르는 노래는 달콤하기도 하고, 어쩐지 슬프기도, 아늑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주인공)에게 다가가 사람들은 이 아이가 장차 커서 뭐가 될 것인지 저마다 이야기한다. 그는 정말로 그의 인생에서 뭔가 대단한 것을 성취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의 엄마는 이렇게 노래한다.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아요. 내 아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살 거예요.
멋진 가족이라면 그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출지 결정해 버리지 않을 거예요.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아요. 내 아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살 거예요.
이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사회가 가르쳐 줄 순 없어요.
사랑 한 스푼, 꿀 한 스푼
햇빛 한 줄기가 그의 무지개가 되고,
모래 한 줌이 그의 성(城)이자
그림을 그릴 크레용이 되겠지요.
필요한 건 그뿐이에요. 필요한 건 그뿐이에요.
이 영화의 ost는 정말이지 모든 곡이 다 좋다. 피아노 곡도 정말 좋다. 그러나 정식 앨범을 사지 않고는 당최 전곡을 들어 볼 수가 없다. -.- 그날의 분위기와 정말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앨범에는 주인공의 이웃집 아줌마가 우쿨렐레로 연주한 곡이 있다.
그 곡을 듣고 있자니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병원에 가기 전 몇 개월 동안 우쿨렐레를 배웠었다. 아주 예전에 기타에도 도전했으나 손가락이 짧아서 어려웠다며 작고 귀여운 우쿨렐레가 엄마한테 딱 맞다고 즐거워했다. 뭐든 열심히 하는 우리 엄마는 더 배워서 다양한 곡들을 내게 연주해주겠다고 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레파토리가 거기서 거기라며 더 개발하라고 말했었지만 난 그때 엄마가 들려주는 곡들이 충분히 좋았다. 무척 그립다.
혼자 만의 감정에 빠져 있는 사이에
재주 많은 동생은 그새 밖에 나가 쓱쓱 아무렇지 않게 소심한 책방을 그려왔다. 전공자가 아님에도 그녀가 만들어내는 것들은 진심이 들어 있어서인지 늘 느낌이 있다. 아무 대가 없이 책방 주인에게 그걸 건네고는 뿌듯한 얼굴로 돌아온다. 순간의 행복했던 기억을 이런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그녀의 마음의 여유, 참 따뜻하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