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 하기엔

끝나지 않은 여행 이야기 4.

by Iris K HYUN





어느 화창한 오후, 나는 아주 커다란 통유리창을 마주하고 서 있다.

내 키에 거의 두 배는 될 만한 높이에 또 그것의 곱절 이상은 될 법한 가로 폭의 유리창은 지나가던 새가 모르고 이곳으로 돌진한다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만큼 투명하다. 흔한 블라인드나 커튼 하나 없고, 주변에 어떤 소품조차 보이지 않는, 그저 덩그러니 커다란 창만 있는 이곳은 가정집 같아 보이지는 않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다소 평범하고 어쩐지 익숙하여 지루하기까지 한 어느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다.

별생각 없이 한참 밖을 보고 섰는데 별안간 이상하리만큼 낮은 고도로 날고 있는 비행기 한 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 근방이 비행기가 자주 지나다니는 길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가까이 날아오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당연히 금방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고 무심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이 비행기는 통유리창을 뚫고 내가 서 있는 곳으로 아주 들이닥칠 기세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것도 내가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도 남을 정도로 아주 느-리게.

잡티 하나 찾을 수 없는 맑은 통창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영화 스크린 같고, 거기에 어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행기가 비현실적으로 줌인되어 보인다. 마치 아주 어릴 때 63 빌딩에서 아이맥스 영화를 처음 보며 느꼈던 위압감의 열 배 정도랄까.

'설마' 하는 생각이 들지만 놀라서인지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무서워서 눈을 감았다. 비행기는 스치듯 내가 있는 건물을 살짝 비켜나 뒤에 다른 건물을 들이박고 어딘가에 추락한 '것만 같다.' 그런데 희한하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을 감고 있으니 당연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나는 멀쩡하다.



이상은 몇 년 전 내가 꾼 '꿈'의 내용이다. 꿈 자체를 자주 꾸는 편은 아닌데 똑같은 세팅의 이런 꿈을 몇 번 정도 반복해서 꿨다는 사실이 좀 의아했다. 꿈은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하기도 한다는데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궁금하기도 해서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하니 9.11 테러가 무의식 중에 큰 충격으로 남아서 그런 거 아닐까 라며 어느 고 천년 된 이야기를 꺼낸다. 그렇다고 비행기 사고가 나는 모습을 딱히 본 것도 아니니 그리 나쁜 꿈은 아닐 거라고 했다.



꿈을 꾼 그 해 들른 프랑스 니스에서 낮은 고도로 나는 비행기를 보는데 문득 꿈속 이미지가 떠올랐다. 니스 공항은 시내와도 매우 가까운 편이라 거리를 다니면서도 매우 빈번하게 비행기를 구경하게 된다. 머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들락거렸던 니스 해변에서도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수평선 오른쪽 어느 지점에서 로켓이 발사되듯 끊임없이 올라오는 비행기를 보았다. 니스의 마지막 날 밤, 나는 어둠이 내린 해변의 하늘 위로 별처럼 반짝이며 어김없이 솟아오르는 비행기를 보고 있었고, 함께 맥주를 마시던 파울라에게 나의 요상한 '비행기 꿈'을 이야기했다. 남미 사람 특유의 유쾌한 기운이 넘쳐흐르던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너가 니스에서 비행기를 이렇게 많이 볼 운명이었나 봐. 혹시 알아. 이러다 추락하는 비행기를 볼지도. 기다려보자." 그녀는 살벌한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건네고는 파도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는 핸드폰 음악에 맞춰 한동안 혼자 춤을 추었다.



현재 제주시에 있는 나는 '낮게 나는 비행기'를 자주 목격한다. 특히 제주 오일장이 열리는 근방에서는 (거짓말 조금+ 보태) 점프하면 비행기를 만져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니스보다는 한 수 위로 비행기의 '배'를 아주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을 만큼 낮게 난다. 마치 비행장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 거의 분당 한 대 꼴로 날아올랐고 소음 또한 만만치 않은데 여기 근처에 사시는 분들은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그 꿈이 또 생각났다. 다행히 꿈처럼 현실에서도 추락하는 비행기는 보지 못했지만 통유리창 전체를 가득 채우며 내 근처로 날아드는 것만 같은 그 정도의 위압감을 데자뷔처럼 느꼈다.






지난해 가을, 나는 산티아고를 향하는 길 위에 있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물었다. "한국 가면 어디를 꼭 들러야 해?" 정말 올 것도 아니면서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물어보는 것 같기도 했지만 가끔은 정말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묻는 사람도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서울에서 외국인들이 응당 많이 가는 '관광지'를 그냥 몇 군데 알려주고 말았겠지만 이상하게도 이 길에서는 자주 '제주도'라고 대답했다. 서울 말고 추천할 수 있는 곳을 떠올리면 사실 경주, 전주와 같은 전통 지역들이 먼저 생각나기도 했으나 제주에 아무런 연고도 없으면서 홍보 대사라도 된 마냥 '제주 아일랜드'를 퍽이나 자주 언급했다.(나도 몇 번 가보지 못한 주제에 말이다). 산티아고 길에 한국인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질문에 답하다가도, 한국에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 있는가를 말하다가도 어김없이 제주로 이야기가 흘러갔는데 마치 이 길의 연장선상에 제주가 있는 느낌이었다.



우연히 제주 책방에서 발견, 고흐와 랭보, 예전에 학교 장에서 싸게 구입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너를 여기서 또 볼 줄이야.



제주에 꼭 한번 들르겠다던, 산티아고 길 위의 그들 대신 내가 이곳 제주에 와 있다.

인생은 매 순간 내가 선택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과 만나게 된 사람들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처음 대하는 순간이지만 굉장히 익숙한 그림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마치 예전에 비슷한 순간이 내 인생에 있었던 것처럼.


요즘 제주에서 부딪치는 사람이나 소소한 일상의 단면들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해서 가끔 놀랄 때가 있다. 오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던 산티아고 길부터 유독 사람 사이의 '인연', 그리고 사건의 우연성 속에 들어있는 알 수 없는 익숙함을 한층 더 크게 느낀다. 예전부터 계속 그러했는데 단지 바쁘게 사느라 인식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지난 해부터 그런 인연이나 사건들이 생기는 것인지 혹은 내가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 필요한 시기에 나를 스쳐갔다. 행복했던 순간도, 슬프고 괴로웠던 순간도 나에게 다 그런대로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지나고 보니 그렇다.




요즘 내가 제주에서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요가'다.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다. 그러나 예전에 설렁설렁 할 때의 마음가짐과는 확연히 다르다.

요가의 자세 중 엉덩이와 복부의 힘으로 활처럼 뒤로젖히는 동작(Urdhva Dhanurasana)이 있다. 유연성과 근력이 종합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로 우연히 접한 미란다 커의 아름답고도 완벽한 자세(여기에 더해 그녀는 한 쪽 다리까지 위로 뻗은 응용 자세를 하고 있었음)에 쓸데없는 욕심이 났다. 미란다가 했기에 당연히 아름다울 수 있었을 것이나 나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된 시도에도 팔을 쫙 필수 없음에 내 몸뚱이는 대체 왜 이런 걸까 좌절했다. 사람이 했으니 나도 언젠가는 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란다도 요가를 십 년 이상 했다고 하니 작은 노력으로 큰 것을 바라는 나의 조급함이 문제인거다.

물론 요가는 고난도 동작을 그럴듯하게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그러나 덜 '용을 쓰면서도', 좀 '아름답게' 해보고 싶었다. 이런 집착 때문이었을까. 비 오는 어느 날 찾아 간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다음의 작품(류인, '밤-혼', 1990)을 보았고, 작가의 의도*는 전혀 달랐겠지만 죄송하게도 진지한 작품 앞에서 난 미란다 커를 떠올렸다.




* 류인 작가의 '밤-혼'(1990)은 '존재의 연소'(Combustion of the Existence)라는 타이틀로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전시 중이다. 이 작품은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주로 표현했던 당시 그의 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온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불안하게 누워있는 인물을 표현하지만 두 손은 힘이 잔뜩 실려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 하다. 작가는 작품에서 정신적 고통으로 가득한 밤의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했다. (아라리오 뮤지엄 작품 소개 中)










얼마 전 예전에 보았던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 2011)'라는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동양의 불교철학에 기반한 윤회를 모티브로 삼고 있지만 서양적 색채와 이야기로 덧칠한 매력적인 영화다. 서구권 감독으로 사람 사이의 인연을 이렇게 독특한 시각으로 흥미롭게 다루었다는 자체가 신선했고, 워낙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음악의 효과를 잘 이용하는 장 마크 발레 감독이기에 더욱 인상적으로 남는다.


영화는 1960년대 빠리에 사는 다운증후군 아이와 그 어머니의 이야기와 현대의 몬트리올을 배경으로 새로운 사랑에 빠진 남자와 그의 여인, 그리고 전 부인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다른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연'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고, '소울 메이트'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갖게 한다. 자칫 스포가 될 수 있기에 핵심 스토리를 말할 수 없지만 이들 사이의 관계성은 픽션이지만 다소 섬뜩하기까지 하다. 남자의 현재의 사랑을 합리화 하는 것으로 읽힌다면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겠으나 '큰 그림'으로 본다면 충분히 생각할 거리가 있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무엇보다 배경음악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감독의 감각적 연출에 더욱 세련된 색깔을 덧입혀주는 음악은 영화가 맘에 들지 않아도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빈번하게 쓰인 까닭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스토리보다 더 매력적이었던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의 "Svenfn-G-Englar" (제목이 It's you일 것만 같은) 두 곡은 영화의 느낌을 잘 살린다. 그러고 보니 시규어 로스의 음악이 이곳 제주의 밤 공기와 얼추 잘 어울리는 것도 같다.


서구권에서는 하나의 판타지라 여겨질 법한 스토리 구성과 결말이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너무 이루고 싶었던 일, 혹은 사랑 등에 대해 '그래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라고 스스로 위안하게 할 수도 있고, 안 되면 큰 일이나 날 듯 아득바득 집착하며 놓지 못하던 일도 '그래 거대한 우주 혹은 신의 계획 하에 순리대로 가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할 수도 있으니까.

매번 이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면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내 의지와 관련 없이 발생한 일들에 대해서는

이러한 해석도 위로가 될 수도 있음을,

때로는 편안함을 주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피천득, '인연'




https://youtu.be/rtemrZ7-pj0

Sigur Ros, 'Svefn-g-englar'




https://www.youtube.com/watch?v=4jN2ENGyDXI&feature=youtu.be

Doctor Rockit, 'Cafe de Flore' (Charles Webster New Mix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