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여행 이야기 6.
내가 성장해온 환경인 자유로운 삶을,
존재의 빛과 행복을 나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비록 이 향수가 나의 많은 잘못과 과오를 드러낸다 할지라도 내 천직을 한층 잘 이해하도록 해 준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또한 내가 짧은 자유에서 느낀 행복을 피난처로 삶는 사람들, 그 행복에 대한 기억만으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지탱하는 모든 침묵하는 사람들과 맹목적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지켜주었다.
알베르 까뮈(Albert Camus)
까뮈가 여기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여러 작가들, 철학자들이 한데 뒤섞인 한 책에서 이 문장을 보며 난 여행을 떠올렸다. 존재의 빛과 행복, 자유, 그 기억.. 좀 거창해 보이지만 그가 말하는 이런 것들을 난 종종 '여행'을 통해 얻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여행'은 딱히 큰 일탈 없이 고만고만하게 살아온 내 삶에 그가 말하듯 자유였고, 때때로 현재의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그런 성질의 여유로운 선택이 아닌 것이다. 누가 나를 가둬 놓는 것도 아니건만 뭐가 그리 답답해서 그러냐고 한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살면서 필요한 것은 대체로 주변에 다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모든 것은 겉으로 보기에 안정되어 있었지만 정말로 안정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외면적으로 가장 활력 있게 보였던 시절이 사실 나의 내면의 조화는 더 깨지고 있었고, '열심히 하루를 살고' 돌아와 홀로 있을 때 찾아오는 공허함인지 뭔지 여하간 별로인 이 기분은 더 자주 날 괴롭혔다. 한 친구는 나에게 그랬다. 남들 다 그렇게 산다고. 그냥 좀 쉽게 가라고. 아주 배가 불러 터진 소리 한다고.
그러나 낯선 여행은 나에게 사치가 아닌 절박함으로 다시 '열심히 살기' 위해 종종 내게 필요했고, 그 누구보다도 친절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특히나 홀로 갖는 여행의 시간은 보통 외부의 기대에서 멀찍이 떨어져 나에게로 시선을 돌릴 수 있기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이를 통해 엄청난 에너지를 받기도 한다.
브런치에서 본 어느 글에 따르면 실제 자기개념과 마음속으로 바라는 이상적 자기개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의무적 자기개념 사이의 차이(gap)가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Higgins, self-discrepancy theory). 현대인은 아마 어느 정도 이들 사이의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고, 남의 시선이나 피드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인의 경우 그 차이가 더 클 것 같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고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느냐의 여부가 진정으로 만족감 있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한 어찌보면 가장 첫 단계이다. 특히 착하게, 하라는 대로 잘 살았던 사람의 경우 (적절한 시기에 자신을 알아볼 기회를 스스로 찾지 않았다면), 겉으로는 '나이에 걸맞은 스텝'을 적절하게 거치며 그럭저럭 훌륭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외부의 자극에 끊임없이 흔들리며 알 수 없이 찾아오는 감정의 널뛰기에 힘들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의무적 자기개념이 어린 시절부터 강했던 편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 부분이 실제적 나를 가릴 만큼 컸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이로부터 성취된 결과에 늘 만족하지 못했고, 긍정적 피드백을 받아도 뭔가 모르게 허한 느낌 내지는 불안감이 들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어려워하며, 자주 '괜찮은 척' 하고 산다.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이 나를 더 사랑해주기 바라는 것으로 이런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한다.
'일탈'이라는 말이 뭔가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시도해보는 것들을 지칭할 때도 종종 쓰이나 혼자 하는 여행에 갖다 붙인 '일탈'은 적어도 나에게는 퍽이나 생산적인 의미를 지닌다. 어떤 것을 생산적, 비생산적으로 나누어 정확하게 물리적인 득실을 따지는 것부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몸에 밴 습관이 된 듯 하나 이런저런 것을 떠나 나의 성장이라는 (이 바쁜 세상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지만) 점에서는 충분히 생산적이다. 가끔은 너무 당연하고도 익숙한 공간에서 떨어져 있는 그대로 나를 본다는 자체가 힐링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문화나 가치관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생각보다 좁은 내 식견으로 판단해 버리던 사소한 것들에서 나름의 가치를 발견하기도 하고, 모두 있는 그대로 의미가 있음을, 그러하기에 나도 그러함을 느낀다. 누구의 어머니/아버지, 딸/아들 이기에 앞서 존재만으로 반짝이는 각자의 '나'가 있음을 보기도 한다.
가끔 보면 여행 내내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건지느라' 바쁜 사람도 있다. 그 또한 개인의 즐거움이라면 좋은 에너지가 되겠지만(나도 어릴 때는 사진에 꼭 내가 나왔으면 했다) 그리고 매 순간을 충분히 잘 즐길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아주 개인적인 여행의 시간마저도 타인의 피드백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 든다. 완전한 일탈은 아닌 것이다.
야 나도 여행 가고 싶은데, 넌 어떻게 그렇게 맘먹은 대로 휙휙 잘도 가냐?
어떤 이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특별히 용감해서 혼자 여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흘러넘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당장 먹여 살려야 하는 남편과 자식이 있지 않기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으나 모든 것은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가'에 따랐다. 종종 우리는 시간이 없다, 이래서 저래서 못한다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너무 간절히 원하면 잠을 안 자고라도 하고, 가족들에게 욕을 좀 먹더라도 하며, 얼마 가지지 않은 것을 몽땅 투자해서라도 한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포기하는 것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쉽다.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피곤해 죽을 것 같아도,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 만나지 않는가. 이런저런 리스크가 두렵고 선택하기 꺼려진다면 그만큼 간절한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난 꽤 말 잘 듣는 아이였다. 학창 시절에는 특별한 반항 없이? 그 흔한 사춘기도 없는 듯 지나갔다. 엄마가 이거 절대 열어보면 안 된다고 무얼 쥐어주면 궁금해도 절대 안 열어보고 꼭 쥐고 왔고, 하지 말라는 것이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지 않았다. 어디 좀 모자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겁도 많아서 수시로 잘 놀랐고, 영화 트루먼 쇼에 주인공처럼 구획된 곳(우리 집은 이사도 안 가고 한 곳에 거의 20년을 살았다)에서만 움직였다.
그러나 사춘기가 뒤늦게 왔는지 이십 대에는 모든 것이 답답했다. 공부를 해도, 일을 해도, 누굴 만나도 금세 답답했다. 답답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내가 아닌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도 제법 유쾌한 여인으로 살아왔지만, 즐거운만큼 공허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가장 큰 일탈은 내가 살던 목동에서 신촌으로 당시 129-1번 버스를 타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목동에 영화관이 없던 시절이라 중간, 기말고사가 끝난 후 친구들과 엄마가 주신 용돈으로 한 번 씩 그렇게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별 일 없는 일상에 큰 이벤트였다. 우리는 주로 버스 맨 뒷자리에 조르륵 앉아 뭐가 그리 즐겁다고 별일 아닌 일에 정말 미친 듯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시험을 언제 망쳤냐는 듯 호탕하게 웃어댔다.
언제였던가.. 하루는 늦은 저녁시간 집 근처 독서실에 앉았다가 알 수 없이 서럽고 답답해서 신촌으로 가는 버스를 처음으로 혼자 잡아 탔다. 차창 밖으로는 익숙한 신촌이 지나고 있었지만 내리지 않았다. 가출이라도 할 기세로 세상 다 산 듯 아무 데나 가라 하는 심정으로 잠깐 앉아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모르는 곳이 나오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늦은 시각 버스에는 사람이 그리 많이 타고 있지 않았다. 얼른 잽싸게 내려서 반대로 가서 다시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모르는 곳으로 몇 정거장 더 갔다고 심장이 뛰던 내가 기회가 생기면 혼자 온 사방을 이렇게 잘 싸돌아 다니게 된 것은 아마 대학 때 내가 했던 일탈, 여행의 경험들 덕분?이다.
언젠가 유럽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가지고 있던 전 재산과 여권 등을 홀라당 털린 일이 있었는데,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재미난 일들이 많았다(물론 당시에는 전혀 재밌지 않았지만). 당시 계획대로만 정확하게 움직이던 내게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구나를 알려준 첫 번째 경험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씩씩하구나. 어랍쇼 닥치니 어찌어찌하네. 생각했다. 돈을 그렇게 많이 털릴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이었다.
작년 '산티아고'와 올해 '제주' 여정은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일탈이다.
지난해 힘든 시기에 난 산티아고 길을 무작정 선택했고, 매번 여행의 일탈이 내게 그러했듯 다시 나를 채워주었다. 무엇보다 지금껏 모든 여행을 통틀어 혼자 생각할 시간이 가장 많았던 여행이었기에 슬픔이라는 감정의 밑바닥을 아주 꽝 치고 다시 올라올 수 있었고 내면은 이전보다 조금은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사실 슬픔을 이기는 데는 외면적으로 어떤 위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힘은 결국은 자신의 내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산티아고 길이라는 환경은 단지 나로 하여금 더 내부로 시선을 돌리기에 적절한 '바탕'만 마련해 줄 뿐이고, 거기서 내가 깨닫고 느낀 딱 그만큼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받아 온다. 그 길에서 난 나에 대해서 더 이해하고 보듬고 돌아왔지만 아쉬움이 남았고 그 부분을 지금 제주에서 채워가는 느낌이다. 제주는 자연이 아름다워 환경적으로도 산티아고 길과 유사한 면도 있지만 외부의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게 하는 묘한 기운이 있다. 물론 유명 관광지로만 이리저리 다니면 알 수 없는 것이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보석 같은 공간들이 여전히 참 많다.
여행의 순간은 일상의 그것들에 비해 보통은 훨씬 강렬하고 깊게 기억된다. 평소 바쁘다며 지나칠 것들도 한번 더 들여다볼 여유가 있고 낯선 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그렇지 않을까. 이런 기억들은 대체로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왜곡되기도 하지만 가끔 지칠 때면 오래된 사진첩을 뒤적거리듯 기억들이 알아서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며 날 위로하기도 한다.
내가 지금 있는 제주가 산티아고 길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가끔 보는 주변 풍경에서 정확하게 그때 기억을 끌어낼 수 있기에 그렇다.
얼마 전 땡볕에 '사려니 숲'을 걷는데 지난 가을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보던 장면들이 별안간 눈 앞에 확 펼쳐진 것 같았다. 특히 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나 있는 산책로의 어느 구간은 아주 정확하게, 딱 그 당시 모습을 재현한 듯했고, 여유로운 산책로와 어울리지 않게 아주 큰 배낭을 메고 파란색 버프를 두른 낯선 외국인 덕분에 순간 다시 그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환하게 웃었는데 왠지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할 것 같았다. 산티아고 길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