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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 Sep 17. 2023

일탈 여덟.

패들보드 타기



일탈 8. 패들보드 타기 <<<



패들보드 타기. 새로 알게 된 터키 친구와.



내가 지난해 터키에서 떠돌던 중 만난 치과 선생님이 있었다. 새로 개원한 그녀의 병원에 가서 즉흥 노래와 연주도 듣고, 발 치료도? 했다. 여기 어딘가 그 흔적이 있을 거다. 반가운 그녀가 이번에 한국에 왔고 함께 온 동료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와 제주에서 한 체험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정작 그녀는 오지 못했는데 그래서 참 기이한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다 같이 한 차례 보긴 했지만 그녀의 친구는 여전히 내겐 낯설었다. 나도 오랜만에 제주를 가보고 싶었기에 좋다고 했는데 선뜻 좋다고 하고 나니 뭘 하지 막막했다. 다정하고 조용한 성격의 그는 아무거나 해도 좋다고 했지만 짧은 시간에 대체 뭘 보여주나 바쁜 머리에 비해 몸이 멍 했다.


그리하여 아무 계획이 없던 우리는 숙소 근처였던 함덕 해변에서 먼저 패들보드를 타기로 했다. 둘 다 안 해본 것 같이 해보기로.




느낀 것.



1. 보드는 앉아서 누워서 서서 타도 된다. 처음에는 앉아서 대강 노를 저어봤다. 얼마 못 가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완전히 드러누워서 내리는 비를 맞았다. 패들 들고나갈 때만 해도 멀쩡했던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거다. 아래에는 바닷물이 찰랑이고 위에서는 빗물이 도도독 떨어진다. 젠장. 갈수록 더 세게 온다. 도도독이 아니라 두두두두두 안면부를 사정없이 강타한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빗방울이 수면에 닿는 것이 보인다. 수면의 빗방울, 내 얼굴에도 똑같이 닿고 있다. 노는 보드 위에 얹고 손과 발을 빼서 물 안에 담그고 하늘을 보고 있으니 어라. 그저 좋다. 다 섞여서 편안하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누워 봐. 좋아.

고개를 들고 친구를 향해 외쳤다. 그 친구도 누워서 잘 흘러가고 있다. 입 벌리고 떨어지는 빗물도 괜히 먹어 봤다. 해도 안 나니 얼굴 탈 염려도 없고 이대로 낮잠 자도 되겠어. 물 침대가 따로 없네. 참 좋네.


한참 그러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바람이 부는 대로 어디론가 간다.  

애쓰지 않아도 그냥 존재해서 좋다.





2. 노를 가슴에 얹고 아 좋다. 를 연발하고 있을 때였다.

너무 평화로운 나머지 뭍을 볼 생각도 안 하고 한참 떠다니다 보니 줄 쳐 놓은 데보다 훨씬 멀리 나온 거다.


줄 넘지 말라고 했잖아요. 노를 저으세욧!


눈을 뜨니 업체에서 보트 타고 오신 분이 소리치고 계셨다.


아. 넵.



그때부터 우린 노를 열심히 젓기 시작했다. 다시 육지를 향해.




3. 전반전은 하릴없이 둥둥 떠다녔다면 후반전은 의욕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산발인 머리를 한데 모아 묶고 서 보기로 했다. 뒤뚱뒤뚱하면서 몇 번 엉덩이를 찍으며 앉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처음만 흔들흔들하지 일어서고 보니 패들 위에 똑바로 서 있는 기분도 참 좋은 거다. 서서 노만 저어도 신나는데 진짜 파도를 타면 얼마나 재미날 건가 상상해 봤다.

비도 그쳐서 해가 나니 기분이 더 좋다. 옆을 보니 친구도 일어났다. 무엇이 되었든 처음의 순간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좋다.

 



4. 뭍으로 오는 길에 아이를 데리고 온 여자분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정한 방향으로 쭉- 가요?


꼴랑 한 시간 타봤다고 노하우가 생겼는지 난 처음과 다르게 오는 길은 아주 힘차게 방향에 맞게 쭉쭉 나가고 있었다.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가니 더 이상 지체 없어 그곳으로 가야 했다.


아 그게 보드에 가까이 붙이고 저어 보세요. 멀리 놓고 저으면 방향만 돌아요. 요렇게요. 휘적휘적.


돌아오는 길은 내 어설픔이 전달할 거리가 되니 뿌듯했다. 그렇게 막 나서는 몇 분에게 노하우를 전수? 하고 짧은 항해를 마쳤다.ㅎㅎ



이상. 뭍을 떠났다가 뭍으로 돌아오는 항해.



++

균형, 너그러움, 외유내강.


몸과 마음에서 떠오르는 세 단어였다. 이 단어는 신기하게도 함께 체험한 상대에게서 찾은 단어이기도 했다.

새로운 자극으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도 있지만 잔잔한 물결도 참 괜찮구나.


그나저나 바람에 따라 떠돌다가도 방향성이 확실하면 속도가 붙는구나.

뭍이 어디이지요?





머무는 동안 축제가 열렸던 함덕 바다.  

다시 만나요. 제주


큰 바다 있고 푸른 하늘 가진

이 땅 위에 사는 나는 행복한 사람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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