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유어 아이즈 앤 오픈 마이 아이즈
지난달에 봤다.
눈이 감겼다. 러닝타임이 거의 3시간이나 될지 몰랐다. 끝나고 평론가 님의 GV가 또 한 시간이 훌쩍 넘게 진행될지는 더 예상하지 못했다. (한 시간 즈음되었을 때 난 나와서 뒤에 얼마나 더 한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훌륭한 GV였겠으나 나름 씨네 키즈였던 나도 이날은 뭔가 모르게 아. 이제 그만. 하는 느낌이었다. 정신력으로 버티기엔 체력이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시간이 겹치고 겹칠수록 내 안에서 자꾸 하는 그 말을 곱씹기엔 현기증이 났다. 영화는 장면 장면 아름다운 부분이 많다.
너무 길어서 감동 느끼기도 전에 지침. 제가 그 영화를 이해하기엔 아직 모자란가 봐요. 마지막 장면에서 아 드디어 끝이다 싶었음
다른 날 이 영화를 본 한 동생의 평이다. 그녀는 평소 모든 영화를 섭렵하는 여인이나 그날의 영화는 그녀에게도 길었나 보다.
감독이 슬픈 왕이었어.
거기에 난 이렇게 답했었다.
영화 안에 또 영화가 나오는데 거기 실제 슬픈 왕이 나온다. 이름이 저마다 몇 개씩 있는 인물들은 각자 그 이야기를 산다. 그 이름을 사는, 영화 안팎의 그들은 정작 자신 앞에 지금 다가온 딸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지 못한다. 자신 안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그저 볼뿐이다.
그리고 얼마 전 봤다. 글레디에이터 2.
극 중에서 로마의 장군 아키시우스에게 패배하여 노예가 되어 끌려오던 루시우스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마크리누스에게 발탁된다. 마크리누스 눈에는 루시우스가 가지고 있는 분노가 아주 매력적으로 보였고 그는 그걸 자신의 자리를 위해 이용하려고 했다.
루시우스는 마크리누스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의 분노는 실제로 그의 남은 삶을 모조리 태울만큼 거셌다. 그러다 현타가 온 그는 자신은 무얼 위해 싸우는가. 에 대한 자각이 생기고 결심한다. 나는 권력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쇠망해 가는 로마에서 자신의 이름이 펼칠 이야기를 알게 된다. 이 영화도 긴 편인데 체감으론 그리 길지 않았다.
매번의 전장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순간이라면 눈을 크게 뜨고 자신 앞에 변화를 바라봐야 한다. 살려고 발버둥 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어떻게 잘 죽을 건가?를 고민해 봄 직도 하다. 죽으려고 하는 자 살지어다.의 비장함처럼.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자신 안에 과감히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도 요즘 그 질문에 대답해보고 있는데 새로운 결정을 할 때마다 과거의 것들이 내 안에서 시끌벅적하다.
며칠 전 나의 첫 책 안에 탐 아저씨로 나오는 탐에게 연락이 왔다. 7년 만이다. 영상을 하나 보내주었다. 산티아고 길 첫날의 아주 짤막한 풍경, 어제처럼 기억이 난다. 몸의 모든 세포가 요동쳤었다. 불안인지 설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내 눈에 보이는 저게 피레네야? 했다. 다소 현실감이 없어 막막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바닥이던 체력을 올린다고 동네 뒷산 돌기를 하던 수준인데 피레네를 마주하니 아. 저길 어찌 넘나 했다. 변화에 저항하려는 내가 나타날 때마다 이때를 되새긴다. 적어도 산을 넘고 난 후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으니까. 격정적인 환희와 감동의 물결이 칠 것 같던 길의 아주 끝은 납득할만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거기도 당연히 끝이 아니다. 이 즈음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그대로 참 환희였겠으나 그다음 길을 걸어야 하는 거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정복? 자체가 아주 큰 의미라면 길에 끝은 그 성취만큼 허탈했을지도 모르겠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지겹도록 이어지는 길은 묻고 있다.
당신은 그다음의 길을 볼 수 있는가. 어떤 이야기를 살고 싶은가.
매번 산을 넘을 때 어떤 마을이 나올까 궁금했다.
서로의 다름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소통하는 마을, 거기서 누군가의 기타 반주에 들었던 you belong to me. 다시 들어보고 싶다. 어디에도 소속되고 싶지 않다던 나마저 그 노래가 감미로워서 그 음률에 묻히고 싶었다. 그런 순간들이 길의 끝보다 좋았다.
오늘, '사랑, 모든 존재의 연결'이라는 주제로 요가 노래 정기공연이 있었다. 정기적으로 시간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노래한다. 매번 그때그때 참여 가능한 사람들이 하모니를 이루는데 그래서인지 세 번 참여하는 동안 매번 그 느낌이 조금씩 달라서 더 좋다. 나는 산스크리트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소리의 울림은 상대가 어떤 마음을 담고 있는지 알게 한다. 상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퍼트리면 그게 내 몸을 가득 울리고 지난다.
* 아칸다 끼르딴(Akhanda Kirtan): 요가와 음악, 만트라, 찬팅 등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가능하다. 국적, 종교, 나이. 성별 불문이다. 다음 공연에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힌두교 등 각 종교 단체에 계신 분들도 오셔서 함께 노래한다고 한다. 전국 여기저기서 돌아가며 열리니 관심있으신 분은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