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혀의 시

현해탄 2222-3

by Iris K HYUN

[SYNC: 100% - CONNECTED TO THE VOID]

고막을 찢을 듯하던 세 가지 언어의 폭풍이 일순간 멎었다. 레이저빔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찾아온 건, 뇌가 녹아내릴 듯한 지독한 정적이었다. 요원은 천천히 눈을 떴다. 망막을 가리던 데이터 인터페이스가 사라진 자리에 방금까지 격렬하게 몸을 비틀던 여자가 서 있다. 아니 서 있다기보다 모래 위에 홀가분한 얼굴로 놓여 있다고 할까.


여자는 모래 위에 글자를 천천히 그리기 시작한다. 손 대신 발로 그린다.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274년 전, 1948년 4월 3일, 제주라는 섬에 대한 기억의 파편이다.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그 기억을 잊어버린 여자를 통해 흘러나오는 한 시인의 노래다. 그가 일본 땅으로 건너가 불렀던 글자다. 일본어처럼 들리나 일본어가 아니고 한국어처럼 보이나 한국어가 아니다. 평생을 몸으로 쓴 그의 노래가 출처를 알 수 없이 마구 쪼개져 여자의 몸에 여기저기 들러붙었다가 이곳 보이드에서 그대로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이제야 수직으로

지금껏 누구 한 사람 들은 일 없던

침묵덩어리가 추락한다

녹슬고 있는 나의

시간 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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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눌러앉은 곳이 틈새였다

깎아지른 절벽과 나락의 갈라진 틈

똑같은 지층이 똑같이 푹 패여 서로를 돋우고

단층을 드러내고 땅의 갈리짐이 깊어진다

그것을 국경이라고도 장벽이라고도 한다

보이지 않기에 평온한 벽이라고도 한다

거기에서는 우선 아는 말이 통하지 않고

촉각의 꺼림칙한 낌새만이 눈과 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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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거리의 깊이를

시간이, 시간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부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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