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라라랜드'가 아닌 제가 접한 리얼 쿠바를 적어 볼게요.
쿠바를 떠난 지 두 달 정도 되었다. 다시 돌아와 본 몬트리올은 어느새 눈이 가득 쌓일 정도로 내렸고 이런 풍경을 보고 있자니 쿠바에서의 지난 일들이 마치 꿈처럼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딜 가면 늘 에피소드 공장이라는 지인들의 말처럼 나에게는 여행 중 유독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생겨났지만, 지금껏 쿠바만큼 예측 불가의 일들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나라가 있었을까 싶다. 적어도 나에게 상식이라 생각되는 것들이 수시로 깨졌고, 오만 감정이 널을 뛰듯 짧은 시간에도 왔다 갔다 했다. 한마디로 캐나다와 정반대의 나라다. 내가 난리를 치지 않는 이상 너무 별일이 없는 일상이 계속되는, 평온하고, 깨끗하고, 질서 속에 예의 바르고 친절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캐나다의 특징을 그대로 뒤집어 놓으면 쿠바 같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별일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시끄럽고(음악 외에도 갖은 소음이 일상이다), 더럽고, 무질서에 과도한 친절로 무장한 사람들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다가온다. 추운 날씨만큼이나 차가울 정도로 합리적인 퀘벡 사람들을 보다가 가서 그런지 늦은 밤 도착하여 불도 없는 아바나 거리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접한 쿠바의 첫인상은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숙소로 돌아가 생각했다.
'아 이래서 한 달을 어떻게 있나.'
거기 있을 때는 그렇게도 욕을 했다. 돌아와서도 쿠바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지닌 사람들과 같이 맞장구를 치며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지나고 보니 그것도 정인지 뭔지.. 우연히 이곳 도서관에서 보게 된 체게바라 사진에도 난데없이 가슴이 쿵쾅 뛰었다. 그 뜨거웠던, 그 정신없었던 그곳이 좀 그리웠다.
쿠바에서 지냈던 한 달 여의 이야기를 여기에 가끔 적어보려고 한다. 그간 겪은 캐나다 사회와 문화에 대해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쿠바를 다녀오고 나니 그 이야기들이 굉장히 단조롭고 재미없는, 그야말로 별일 아닌 것들로 느껴진다. 캐나다의 생활을 적는 것이 보기에도 근사한, 잘 요리된 생선을 그려보는 느낌이라면 쿠바에 대해 쓰는 건 마치 미친 듯 날뛰는 갓 잡은 생선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 같은 그런 스릴과 설렘이 있다. 적어도 쿠바 이야기를 할 때면 아직도 감정이 같이 요동을 친다. 그러기에 당분간은 캐나다 이야기보다 쿠바 이야기를 쓸 것 같다.
드라마, '남자친구' 거기 1화에 쿠바가 나온다고 했다. 쿠바를 떠난 지 한 달 반 여가 흐른 시점에서 역시 그곳을 경험한 한국인 동생과 일부러 찾아보았다.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있었던 곳이 저런 곳이었나.'
아무래도 드라마라 그런지 송혜교와 박보검만큼이나 그곳은 너무 예쁘기만 했다. (아. 박보검.. 햇살처럼 맑은 그 미소는 어쩔 건가. 대사의 오글거림에도 박보검이기에 참을 수 있었다) 노래와 춤,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는 그야말로 '라라랜드'였고, 낭만이 가득했다. 물론 쿠바는 그런 낭만이 있고, 어딜 가도 춤과 음악을 즐길 수 있으며, 시간이 멈춘 듯한 오래된 풍경과 올드카와 말레콘, 그리고 모히또가 있다. 무엇보다 그 속의 사람들은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그야말로 '오리지널'의 매력을 갖고 있다.
너무 뜨거워서 한낮에는 오만상을 지으며 걸었던 말레콘 역시 송혜교가 걸어서인지 참 여유로워 보였는데, 현실 같으면 아마 몇 걸음 못 가서 '치나'(중국 여자를 뜻하지만 동양 여자 전체를 지칭하는 거의 고유명사처럼 되었다)를 찾는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보니따(예쁘다)'는 소리는 지겹도록 들을 수 있고, 칵테일 한 잔 하며 음악 듣고 춤을 추고 즐기기엔 이보다 더 적합한 나라는 없을 것이나 그 안에 사람들을 접하고 일상을 보다 보니 더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가끔 단기로 다녀온 사람들이 주로 그리는 '라라랜드'의 쿠바가 다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 각자의 관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쓰려는 이야기는 주로 사람들을 통해 본 쿠바의 에피소드가 될 것 같다. 물론 주관적입니다!
결론적으로 쿠바에서 난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기도 했고, 또 너무 행복했고, 즐거웠다. 사람에게서 정말 진저리가 날만큼 실망을 하고 분노하기도 했고, 사람 때문에 또 따뜻했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그런데 쿠바는 그 감정의 폭이 상대적으로 좀 컸던 것 같고, 그야말로 이랬다 저랬다 했다.
멀쩡한 카사(숙소)에 혼자 쓰는 방 개인금고에 넣은 돈이 귀신같이 사라지는 일도 경험했고, 단순한 호의에도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 다짜고짜 남자 친구가 되고 싶은 쿠바노들, 틈만 나면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그만큼 가족처럼 따뜻한 쿠바노들도 만났고, 정말 즐기면서 춤을 출 수 있음을 배웠다.
앞으로 생각나는 대로 감정의 흐름에 따라 풀어볼게요!
가끔 나에게 일어날 일이 예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질 만큼 운명적인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뭐 지나고 나서 합리화하는 거일 수도 있다)
'쿠바'라는 나라도 캐나다에 있으면서 정말 준비 없이 가게 되었지만,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퀘벡시티에 머물던 초기에 일반 공공도서관인 줄 알고 들어갔던 도서관이 알고 보니 국가 자료, 통계 자료들이 주로 있던 입구부터 유별나게 소지품 검사까지 하는 곳이었다. 심지어 노트북을 놓고 작업할 공간도 별로 없어서 그냥 한 바퀴 휙 돌고 나오려는데 나에게 전혀 의미 없는 그 자료들 사이에서 한 권의 책을 우연히 집게 되었다. 그 시기가 쿠바 가기 딱 삼주 전이었는데(그때까지 심지어 비행기 표도 사지 않았었다),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그 책(아래 사진)을 뒤적여 보다가 커버 사진도 괜히 찍어 두었다. 그리고 난 여느 때처럼 알바를 마친 프랑스 친구와 한 카페에서 만나 추워 죽겠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따뜻한 곳 어디 없을까 하는 별 소득 없는 궁리로 끝을 맺었다. 그리곤 그날 집으로 오자마자 난 무슨 정신이었는지 난데없이 쿠바행 비행기 티켓을 덜컥 예매했다. 알바 때문에 시간을 뺄 수 없는 그 친구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그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간 쿠바, 난 그곳에서 나의 생사를 애타게 묻는 그녀의 왓츠앱 메시지에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여기 완전 미쳤어"
그리고 다음날 가게 된,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간 아바나 미술관에서 난 벽에 걸린 '그 그림'을 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ZBoqCDSrWi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