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난 무엇을 만들어 낼 것인가, 창작의 힘에 대해
현재 나는 퀘벡시티에 아티스트들이 거주하는 한 로프트에 들어와 있다. 원래 집주인은 밀라노에 주로 거주하는 댄서이고, 직업상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에 이곳 집을 나에게 내어 주게 되었다. 얼굴도 보지 않고 메일로 계약부터 소소한 문의사항까지 처리를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첫날 열쇠 주고 집 설명해 준 이는 그녀의 어머니셨는데.. 어머니도 3일 후에 밀라노로 돌연 떠나셨다;) 영화감독, 작가, 비주얼 아티스트, 음악 하는 사람 등이 내 윗집, 아랫집, 옆집 등에 사는 이웃이다. 오자마자 전시회에 오라고 초대도 해주고 살갑게 인사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이도 있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며 고독한 예술가처럼 눈빛으로만 인사하는 이도 있다^^;
여하간 창조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이곳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나만의 '창작'을 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첫째, 무엇이든 자기 방식대로 창작하는 것에 한계가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다. 달리 말하면 무엇이든 재료가 될 수 있고,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사실 창작자로서는 부적합할지도 모른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그렇게 자신감이 있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시키는 걸 잘하는 사람으로 한 평생 살아왔기에 어쩔 수 없다) 물론 그냥 누굴 잡고 내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건 아주 좋아하지만, 이게 글로 적히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대체 해서 뭐 할 거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등의 생각을 하면 그만 복잡해진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자기 검열과 과도한 의미부여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그러다 보면 '에이 쓰지 마, 뭐하러 써' 가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자기 이야기를 '제멋대로' 자신 있게 풀어내는 사람들을 보며, 일종의 짜릿함을 느낀다. 때로는 '저게 뭔 예술이냐'라고 생각될 것들을 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신 안에선 분명 어떤 맥락이 있어 탄생한 것일 테니.. 그대로 멋진 창작물인 것이다. 그걸 누가 평가할 것인가.
가끔 누군가의 창작물을 보고, '저건 나도 쓰겠다. 내가 발로 그려도 저거보단..' 같은 류의 평가를 우린 거침없이 쏟아낸다. 아마 나도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우리는 글을 제대로 한 번이라도 써 봤는가, 그림을 그렇게 치열하게 그려보았나, 책을 한 권이라도 내 봤는가, 자기 전시를 한 번이라도 해 봤는가. 그냥 앉아서 나도 하겠네 하는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있지만 직접 해보면 쉽지만은 않다. 나도 부족한 글이지만 책을 한 권 내고 나서는 남의 결과물을 이야기하는 일엔 더욱더 조심스러워졌다. 부족해도 힘들여 낳은 내 새끼인 것이기에 의미가 없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박수쳐 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더라도 일단 자신의 것을 이야기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창작자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자질이 아닐까 한다. 사실 의미부여도 본인이 하는 건데 스스로가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신감이 없다면 누가 내 창작물을 예뻐해 주겠나. 나라도 먼저 최고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함을 이들을 보며 느낀다. 내가 여기 작가인 친구에게 이런 내용 어때?라고 물어보면 그 친구는 늘 똑같은 말을 한다. "좋아. 그냥 써."
이젠 정말 좋아서가 아니라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러나? 싶기도 하다.
둘째, 날씨가 몹시 춥다. 10월인데 뭐 벌써 춥다고 엄살이냐고 하겠지만, 지난주 들어서면서 드디어 영하의 기온을 찍었고, 며칠 전엔 눈도 왔다! 이곳은 덥다가 바로 추워지는, 중간이 없는 극단적인 날씨를 보여주는데... 낙엽이 지천에 있다고 한국의 가을 날씨거니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친다. 어느 날 눈 떠보니 그냥 곧바로 한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는다. 지금부터 이렇게 추운데 12월, 1월, 2월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 리옹 친구는 너무 춥다며 어떻게 하면 현재 알바하는 곳에서 휴일을 최대한 빼서 남미를 갈 수 있을까.. 그 궁리만 몇 주째 하고 있다.
지금부터 퀘벡 오실 분은 그냥 한 겨울 옷 입고 오셔야 합니다! 드라마 도깨비의 여운이 아직 있는지 공유가 거기서 입었던 것 같은 다소 얇은 롱코트를 걸치고 샤또 프롱트낙 근처를 서성이는 남자(한국 남자인 것 같았음)를 보기도 했는데... 정말 추워 보였다. 아마 이 정도로 추울지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도 멋진 사진을 건지고 뿌듯한 표정으로 떠나는 걸 봐서는 덜덜 떤 보람은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가 또 다른 데로 가려고 하는데.. '날씨가 춥기에 창작이 된다!' 왜냐. 추워서 밖에서 할게 많이 없다. 그리고 추우니 정신이 바짝 든다. (보통 더운 날씨가 지속되는 곳에선 확실히 느긋하고, 나른하고, 축 늘어질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과거 러시아에서 대문호들이 그렇게 배출되었던 것일까;;
여기서 본 어느 다큐 인터뷰에서 아티스트라고 소개된 남자가 그랬다. 이곳은 자신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는 곳이자, 추워서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격한 공감을 했다. (그러나 내 실상은 그냥 추위에 떨고만 있는 듯하다;;)
이곳 날씨 체험을 잠깐 이야기 하려면 '그날의 몽모랑시 폭포'(위 사진)를 빼놓을 수가 없다. 퀘벡시티에서도 북동쪽으로 10km쯤 더 올라간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래서인지 어쩐지 내가 여기서 경험한 모든 추위를 통틀어 가장 강렬했다. 우스게 소리로 여기 사람들에게 '나 전생에 자크 카르티에나 샤플랭이었나 봐'(자크 카르티에가 제일 먼저 이곳에 왔지만, 실제 거주지로서 터를 닦은 인물은 샤플랭이다. 그런 이유로 몬트리올과 퀘벡에선 이들의 이름을 지겹도록 자주 본다) 라며 신대륙에 대한 넘치는 나의 탐험정신?을 이야기하곤 했다. 심지어 이누이트 족이 있는 저 위쪽 지역에 가보고 싶다는 열망을 '몇 주전만 해도' 떠들어 대곤 했는데, 몽모랑시에 다녀온 그날 이후 그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몽모랑시 폭포(내가 세상 태어나 간 곳 중 가장 북단이긴 했다)를 간 날 올해의 첫눈을 맞았고, 그 눈은 보송보송한 눈꽃처럼 낭만적으로 내리는 것이 아닌 얼음 결정체가 얼굴을 때리는 형국으로 강렬한 바람과 함께 내렸다. '뭐야 눈이야 얼음이야' 하며 걷는데 (약한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불어댔고, 폭포를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정말 폭포에 빠질까 봐 다리가 후들거렸다. 없던 고소공포증까지 오면서 아찔했다. 폭포고 뭐고 그냥 바람만 좀 막혀 있는 어디론가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졌다.
그 경험 이후 북극이니, 이누이트족이니 이런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았다. 한 겨울에도 이곳에 잘만 사는 사람들에게 나의 열망은 참으로 가소로웠을 것이다. 10월에 여기서도 덜덜 떨면서 어딜 가겠다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자 할 때, 지금부터 자 창조 시작-! 한다고 거저 생기지가 않는다. 백날 앉아 있어도 한 글자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저런 경험치가 쌓여 자신 안에서 터지는 시점이 언젠가 반드시 온다고 생각한다. 여기 한 친구가 내게 고맙게도 이런 말을 해주었다.
"무엇이 되었든 네 안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고, 넌 그걸 표현할 수 있어."
과도한 의미부여의 굴레에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창작자가 있다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인터뷰에서) 헤밍웨이가 했던 아래 말이 약간의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훌륭한 책도 작가가 미리 상징을 염두에 두고 쓴 적이 없다. 나는 진짜 노인과 진짜 소년, 진짜 바다, 그리고 진짜 물고기와 진짜 상어들을 그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만약 내가 그것들을 충실히 제대로 그려 냈다면 그들은 많은 것을 의미할 것이다.”
<헤밍웨이 인터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