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예의 바르고 친절한 그들에 대해
'이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더라' 하는 고정관념, 다들 하나 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몇몇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확인되기라도 한다면, '아 역시 그랬어..' 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기존 생각이 굳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국적으로 스테레오타입을 규정하겠나... 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큰 특징들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좀 산산이 깨어지는 사례도 가끔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이번 편에 적는 이야기는 제 고정관념이 강화된 사례입니다ㅋ)
그렇다면 캐나다 사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그런 고정관념에는 뭐가 있었을까.
난 지금껏 캐나다 사람을 만나 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일단 그런 스테레오 타입부터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 보니 예전에 아주 잠깐 언어교환한다고 만났던 캐나다 사람이 있긴 있었다. 그는 굉장히 예의가 바르고, 그리고 또 예의가 바르고, 아주 친절했다. 달리 말하면 친해지기는 좀 어려웠던 것 같다. 물론 그 사람의 성격이 그러했을 수도 있지만 내겐 유일한 캐나다 사람에 대한 기억이라 뭔가 유럽의 스위스 사람과 비슷한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었나 보다. (이것도 개인적인 편견이겠지용;;)
그런데 여기 와서 지내며 시간이 지날수록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이러한 캐나다 대표 사람 이미지는 내 안에서 점차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사람 성격마다 천차만별이겠으나(-땅 떵이도 또 얼마나 넓은가-) 내가 만난 캐나다 사람들은 대체로 온화하고, 예의 바르고, 상대가 불편한 이야기는 잘 안 하며 배려가 많고 친절했다.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경우도 거의 없는 것 같고 상대의 감정에도 잘 동화되지 않고 침착하다. (예외: 여기 쿠도 매장 매니저분;) 반면, 친해지기가 좀 힘들다.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나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기에 그럴 수 있다는 느낌도 든다. 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친해진 게 아닐 수도 있다;;
* 전장 공원, 현재는 아브라함 평원이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지만 이곳은 과거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치열하게 전투하여 많은 이들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우측은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이다. 갑자기 그가 왜 여기?라고 할 수 있겠으나, 1967년 그는 캐나다를 기습 방문하여 '자유 퀘벡 만세'라고 외치면서 캐나다 측엔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돌아갔으나 퀘벡의 프랑스인들의 가슴엔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고 가셨기에.. 기념비도 이렇게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 퀘벡에서 어째 친하게 지내는 이들을 보면 공교롭게도 캐나다 사람은 없고 다 프랑스에서 온 사람들이다. 리옹, 몽펠리에, 파리, 베르사유 등 출신지도 다양한데 우연인지 어쩐지 정말 캐나다 사람은 없다. (대체 나는 거기 왜 껴 있는 것인지;;) 외인구단 느낌의 우리들은 내 멋대로의 감상을 가끔 나눈다.
'그들은 너무 친절하고 좋은데... 뭔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느낌이야'라고. 그들이 들으면 섭섭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어떤 커뮤니티에 소속되지 않고는 겨울 왕국으로 위엄이 어마어마한 몹시도 추운 이곳에서 우울증 걸리기 딱 좋을 것 같다. (어떤 이는 10월인데 벌써 우울증이 온 것 같다고;;) 같은 퀘벡주에 프랑스어 권이지만 늘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느껴지던 몬트리올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아예 관광지로 특화된 구시가지 쪽은 가족 단위의 관광객으로 늘 들썩이는 반면 나머지 지역은 스산할 정도로 고요하다. 그 대비가 작은 구역 안에서 이보다 극명할 수 있을까 싶다.
여기서 친해진 리옹 출신의 한 친구가 본인은 리옹에서 살사를 취미로 했다고 했다. 나도 올해 들어 살사를 아주 맛보기로 접해 본 터라 괜히 더 반가웠다. (몬트리올에서 살사 배운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그 친구는 워킹비자를 받아서 지난달에 퀘벡시티로 왔는데 알바도 구했다며 내년 4월까지 여기 있는다고 했다. (서른 살이 넘었는데 워킹비자를 어째 받았냐고 하니 캐나다의 경우 프랑스 사람은 35살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들이 프랑스어를 해서 그런가?-.-' ) 그리하여 이 친구는 무시무시한 겨울 왕국이 도래하기 전에 그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살사를 찾아내고자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몬트리올은 밋업(Meetup)부터 다양한 이벤트가 많은데 이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와 같다며.. 학원 같은 사설 기관은 몇 군데 있긴 한데 관련 모임이나 이벤트가 거의 없다며 속상해했다.
그러던 그 아이가 며칠 전 '삼바 파티'를 찾았다며 내게 연락을 했다. 살사를 찾다 찾다 안 되니 삼바라도 찾았나 보다 하며 보내온 장소를 보니 세상에 우리 집 바로 코 앞이었다. 하도 동네가 조용해서 거기에 바가 있는 줄도 몰랐다.
난 삼바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못 갈 것 같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라며 집 앞인데 나오라고 했다. -.- 그리하여 강제 참석한 삼바 파티, 브라질 국기가 한 구석에 걸려 있고 뮤지션들이 속속 도착했지만 시작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하키 중계를 보고 있고, 어떤 이들은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있고, 주최자는 보이지 않고, 대체 삼바가 뭐람 하는 분위기였다.
여기서 삼바 하는 거 맞아? 라고 묻는 내게 좀 있으면 흥겨워질 것이라며 프랑스 친구들은 여유를 부린다. 약속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 연주는 어째 시작되었고 무대라고 하기엔 좀 많이 협소한 공간에 갑자기 한 둘이 나오더니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만 따로 들으면 신나기도 했는데 그들의 춤사위와 함께 보고 있자니 뭔가 모르게 흥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춤추는 사람들은 세상 즐겁다. 한참을 보고 있던 프랑스 친구가 말한다.
"이 음악에 저렇게 즐겁기도 쉽지가 않은데.. 신기하네."
또 한 명은 무대를 가리키며 "디스 이즈 캐나다"를 자꾸 외친다. 나는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하지 말라하는데.. 옆 테이블에 아저씨가 즐거워서 그러는 줄 알고 맥주잔을 우리 쪽으로 들어 보이며 "퀘벡 퀘벡" 하신다.
아뿔싸.
신나게 한바탕 뛰더니 더운지 한 사람이 에어컨 리모컨을 가져와 우리 머리 바로 위에 설치된 에어컨을 켠다. 가만히 앉아 있는 우리 머리 위로 찬 바람이 불어온다. 밖보다 더 추운 것 같다. (-요즘 패딩 입고 다니는 날씨임-)
"정말 재미없게 논다", "음악은 삼바인데 이상하게 다운이 된다", "할머니 생신잔치에 참석한 줄 알았다" 등의 총평을 각기 남기고 친구들은 바람처럼 흩어졌다.
이건 웃자고 한 얘기지만 외지인인 우리들이 비슷하게 느낀 건.. 너무 친절한데 친구가 되기엔 시간이 걸린다는 것, 다른 주는 모르겠지만 특히 이곳은 유독 가족 단위, 지인 단위의 기존 유대가 강해 외부인으로서 진입하기 좀 힘든 느낌이 든다는 것 등이 있었다. 아니면 친구가 되었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친절한데 묘하게 안 친한 느낌..;; 나만 느낀 것이 아니구나 하는 공감대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뭐 우리가 철저히 외인 구단일 수도 있지만ㅋ
개인적인 경험에서 느낀 것을 조금 덧붙이자면..
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내가 쓴 책의 내용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친하지 않을 경우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돌연 심각해지는 게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권에 따라 이에 대한 다음 반응이 좀 다르다. 우리나라나 주로 라티노들은 그럼에도 궁금해서 기회만 생기면 자꾸 물어본다. 그런데 여기 캐나다에서는 책 설명을 자세히 안 해도 괜찮은 경우가 많다. 한 번은 몬트리올 집주인이 책 내용을 묻길래(-그 친구는 책을 너무 좋아하는 친구기도 해서 모든 책에 워낙 관심이 많다-) 좀 개인적인 이야기라 시간 있을 때 우리 다시 이야기 하자라고 했다. 출근 시간이라 정신이 없어 보여서 그랬다. 이야기도 잘 통할 것 같은 사람이라 정말 나중에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끝내 묻질 않는 거다. 개인적인 이야기라 말하기 곤란할까 봐 배려를 했겠지만 그래도 끝내 묻지 않을 줄이야. 많이 친해졌다 생각했는데 확실히 우리랑 또 다른 차원의 배려심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배려심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를 느낀다. 어쩔 때는 배려가 세련되지 않아도 막 치고 들어와 더 챙겨주기도 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러도 더 표현하고 나누는 사람들에게 정이 간다. 난 라틴문화가 더 맞나 보다. 내가 심각해질 때 야 뭘 그렇게 생각해하면서 한대 툭 치고 들어오는 친구가 여기 겨울왕국에선 더 살갑게 느껴진다. 그게 더 귀하기도 하고.
이번 주부터 최저 기온은 영하를 찍는.. 그런 매서운 날씨가 시작되려 하는데.. 벌써 그 추위의 위엄이 슬슬 느껴지고 있다. 두둥!
* 첫 글에서도 밝혔듯이 이런 단상은 시간이 지나니 바뀌게 되네요. 또 바뀌면 적어볼게요;)
** 문학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이 이곳으로 이민 오게 된 아이들이 쓴 시를 묶어 놓은 것이었는데,
추운 날 이곳에 와서 느꼈을 감정들이 어린아이들의 글로 담담하게 쓰여 있어서.. 더 뭉클했네요. 한국 아이들이 쓴 시도 있었는데 그중 몰도바에서 온 디미트리의 글을 옮겨봅니다.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 공항
주변은 온통 낯설었고 새로운 것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바람이 불었고,
사람들은 지나갔다
나는 깨닫지 못했다
나의 운명이 바뀌게 될 것임을
무엇이 여기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일까?
어떤 길이 내 삶에 펼쳐질까?
Dimitri Dogot(몰도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