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통신사에 얽힌 부정적 경험+ 떠오르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캐나다 물가는 우리와 비교할 때 체감적으로 비싸다. 특히 교통비, 통신비, 식비는 우리보다 비싼 편이며, 매일 외식을 했다간 순식간에 가진 돈을 거덜내기 딱 좋다. 또 따로 고지되는 텍스 덕에 더 지출하는 느낌(퀘벡주 텍스는 좀 더 쎄다-.-) + 팁 문화(레스토랑은 서비스가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프랜차이즈 커피집 말고 그냥 카페의 경우 가끔 계산대 앞에 Merci라 쓰인 팁 박스가 있기도 한데.. 좀 놀랐다. 스벅은 이름이라도 물어주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더 있다고-.- 커피도 내가 갖다 마시고 가져다주고 하는구만)
* 여기서 스벅 여담 하나! (스벅을 잘 가진 않는다. 정말 갈 데가 없으면 간다. 여기선 세컨 커피를 주로 가는데 물론 지점별로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집중해서 뭘 읽거나 쓰기가 더 잘 된다. 참! 커피 값은 여기 캐나다가 더 싸다!)
스벅에서 이름 물을 때, 외자인 내 이름 '현'을 한 번에 알아듣는 경우는 드물고, 더군다나 불어에서는 'h'가 묵음이기 때문에 hyun으로 적어 놓았다 해도, 실제 커피 나올 때 '현'으로 불러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커피 하나 먹는데 소피면 어떻고 제시카면 어떻겠는가. 그럼에도 내 이름을 꼭 듣고 싶은 건지... "에이치 와이 유 엔, 현"이라고 고집스럽게 철자를 한 번씩 더 말하곤 한다.
여기 퀘벡에 와선 불어로 알파벳을 말하려고 "아쉬 이그렉...(Hy..)" 하며 여느 때처럼 하나씩 읊어가는데 무척이나 경쾌해 보이는 흑인 직원이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오케이~" 한다. 뭐지 하고 쳐다보는데 그는 이렇게 적고 나에게 보여준다.
Ash Igrek.
내가 이번 편에 말하려고 하는 건, 커피집 이야기가 아니라 통신사에 얽힌 부정적 경험에 관해서이다. 다행히 좋은 경험들을 주로 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껏 유일하게 속이 터지는, 지속적으로 분노를 유발케 한 경험이다.
한번 들어 보시렵니까.

캐나다의 통신비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와 비교할 때 비싼 편이다. 그러나 돈 아끼겠다고 전화를 안 쓸 순 없지 않은가. 난 토론토에 도착한 다음 날, 여러 가지 통신사를 포괄하여 상품을 팔고 있는 '베스트 바이 모바일'에 가서 Koodo라는 회사의 한 달 단위 플랜을 계약하고 sim을 받았다. 이날 토론토 근처에 사는 지인인 언니 부부가 나를 보러 와서 함께 갔었고, 로컬과 함께 간만큼 뭐 대체로 저렴하게 잘 구입했다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계속 발생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도 수시로 'NO sim' 사인이 뜨질 않나, 첫 달 요금을 내려고 하는데 카드 등록이 안 되질 않나... 이런 문제들로 토론토, 몬트리올 곳곳에 있는 쿠도 매장들을 심심하면 들렀던 것 같다. 계약할 때 그들이 카피해 간 내 마스터 카드는 단지 보관용이었던 것일까. 딱히 페이먼트에 대한 언급이 없길래 난 그 카드에서 요금이 매달 알아서 빠져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온라인 상에서 계정 등록시키면서 카드 정보도 거기에 다시 넣어야 했다. 것도 대신해주면 돈을 청구하는데, 어렵지는 않으나 문제는 '내 카드로 결제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잘 만 사용하고 있는 카드인데, 왜 쿠도만 안 되냐고 하니... '마스터 말고 비자 카드여야 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 611(쿠도 서비스센터)에 문의해봐라... 나는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이다;;' 등의 답변을 들었을 뿐, 명확한 해결책을 위해 나서는 이는 적어도 내가 들른 매장에선 없었다. 그나마 한 군데에서 네가 여기 사는 사람도 아닌데 힘들었겠다며 위로를 먼저 건넸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현금으로는 결제할 수는 없으니 이를 위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몇 가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 옵션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은행에서 가서 캐나다 계좌를 만들고, 네 쿠도계정으로 입금해라. 둘째, 캐나다 계좌가 있는 친구에게 부탁하고 현금을 줘라. 셋째, 프리페이드 카드를 사서 나에게 오면 그걸로 결제해 주겠다.
여기에 대해, 난 캐나다에 눌러살 것이 아니므로 계좌를 만들 필요는 없으며, 아무리 간단한 일이라도 지인을 수고스럽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프리페이드 카드를 사련다 라고 말하고,
근처 약국으로 냅다 가서 프리페이드 카드를 무려 100$ 어치(첫 달 개통비+통신비가 99.xx이기에 이를 커버하기 위한 금액만큼)를 샀다. 여기엔 당연히 또 택스로 약 20$ 정도가 더 얹어진다. 그리고 다시 곧장 쿠도 매장으로 갔는데, 웬걸 그 카드는 내 빌을 처리할 수 있는 프리페이드 카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핀 번호가 부여된 카드라 환불도, 교환도 할 수 없고, 쓸 수도 없다. 이런 젠장할... 너무 열 받는데 이 사람은 자신은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며 슬픈 표정만 지어 보인다.
아니 그럴람 처음부터 나한테 비자 크레딧이 따로 있다고 제대로 알려줬어야지. 난 당연히 '쿠도'만 쓰여 있는 카드만 찾았고, 결론적으로 약국 직원도 쿠도에서 왔다고 하니 내게 그걸 내줬던 건데.
이 값이면 처음부터 로밍을 했지... 왜 이 개고생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시간 낭비, 돈 낭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더 이상 열을 낼 기운이 없어 돌아서는데 이 분 더 답답한 소리를 한다.
"611에 전화해봐. 그게 제일 빠를 거야"
그놈의 611, 그들에겐 만능키인 611. 그러나 전화하면 한 세월이다. 좀처럼 누가 받질 않는다. 받아도 가끔 인도식 억양이 가득한 사람이 받아서 그럴 땐 당최 무슨 말인지 안 들어온다. 그런데 카드 하나 등록하는데 생년월일, 한국 집 주소, 카드 회사 연락처.. 별걸 다 물어본다. 아니 카드 정보만 제대로 받으면 되지 대체 왜 이런 게 필요하지? 스피커 폰으로 생중계되는 쿠도 직원과 나의 대화를 옆에서 듣다가 집주인의 남친인 맥스가 더 열받아서 "너희 서비스 개선해야 할 것 같다. 돈을 지불하겠다는데도 이렇게 힘드냐." 라며 중간중간 끼어들어 도와준다.
삼십 여분의 열띤 취조 끝에 겨우 카드 정보+ 개인 정보를 탑재시켰고, 별 일 없으면 며칠 안에 결재가 된단다. 그런데 며칠 후, pending 문자가 온 것이다. 아니 또 왜? 그게 카드 한도 조회를 마쳐야 정상 결제가 되니 기다리란다. 나참. 그리곤 여태껏 감감무소식이다.
여기에서 나는 그 영화가 생각났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2016)'
다니엘 할아버지는 어느 날 심장에 문제가 생겨 일을 쉬도록 권고를 받는다. 일을 하기엔 몸 상태가 위험하다는 의사 소견을 토대로 실업수당을 받으러 가지만, 어마 무시하게 비효율적이며 무엇보다 비인간적인 행정절차 앞에 절망한다. 단순히 느려 터진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인간'이 사라진 모습을 이 영화는 숨이 막힐 만큼 잘 담고 있다. 영화에서 할아버지는 일을 해결하려고 수차례 보건당국에 전화를 걸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기계음만 나올 뿐 사람 한 명과 제대로 통화하기가 힘들다. 어쩌다 통화를 해도, 그의 입장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인간'은 없고 시스템 안에서 앵무새처럼 똑같은 소리만 하는 기계 같은 인간이 있다.
나 역시 쿠도에 전화할 때마다 '오늘은 특별히 통화량이 많사오니 기다려달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 걸어도 그 소리만 해댄다. 아예 스피커 폰을 켜놓고, 밥을 차려먹고 양치를 다했는데도 여전히 그러고 있는 적도 있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통신사의 서비스는 눈물이 날 지경으로 훌륭하다!
다시 영화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정부를 대상으로 실업수당을 악용하는 사람을 거르기 위한 장치가 아닌 정당한 사유로 도움을 요청하는 다니엘 할아버지 같은 사람에게마저 그들은 서슬 퍼런 잣대를 들이대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징글맞다. 평생 정직하게 일하며 꼬박꼬박 세금 다 내며 살아온 할아버지가 정말 아파서 의사의 권고를 받았는데도 집요하게 넌 일할 수 있다며 구직활동을 증명해 오란 개소리나 한다. 나이 많은 사람이 처리하기에 터무니없이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행정절차와 나무토막보다 더 뻣뻣한 그 속의 사람들, 그럼에도 다니엘 할아버지는 인간으로서 남은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심지어 그 와중에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까지 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심장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거의 승리가 확실시되는 소송을 목전에 두고 죽음을 맞는다.
이 영화에는 정말 한 대 패주고 싶은 사람이 여럿 등장한다. 시스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매뉴얼이라는 게 있다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과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분노의 마음이 들끓는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보지 않은 분들은 한 번쯤 보셨으면 좋겠다. 화가 나고 슬프지만 다니엘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있기에 따뜻함도 느낄 수 있다.
물론 다니엘 할아버지가 처한 그 상황의 답답함과 심각성을 내 쿠도 상황과 감히 비교할 순 없다. 쿠도의 경우는 어쩌면 나 같은 케이스를 잘 못 봐서 본인들도 해결 방법을 몰라 헤매였던 것이고, 확신이 없어 명확한 해결책을 주지 못 했던 것일 수 있다. (지금와서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듣지도 않고 무조건 611만 외쳐대는 일부 쿠도 매장 직원, 그리고 이미 다 아는 비슷한 매뉴얼만 지겹도록 말하던 (마치 또 다른 쿠도 직원과 같았던) 사람들.. 그 영화 속 행정 직원마냥 짜증 난다. 친절한 척 요래요래 다 해보고 그래도 정 안 되면 자신에게 말하란다.
내가 통신사 문제로 경험하게 된 일련의 사태에서 그 영화와 닮은 씁쓸함이 느껴진다.
* 이 글을 발행하려다가 어제 업데이트된 사항이 있어 추가한다. 여기 퀘벡 시티에 있는 쿠도 매장에 왔다가 놀라운 사실을 들었다. 이 매장 매니저라는 그는 내게 대뜸 "캐나다 사람이냐고" 물어본다. "당연히 아니지" 하는 내게 그는 "그럼 대체 어떻게 월정액 플랜에 가입한 거냐"고 묻는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
토론토에 있을 때 거기 베스트 바이 직원이 추천해서 구매했다고 하니, 걔네들이 잘못한 거란다. 외국인은 원래 쿠도 월정액 플랜엔 가입할 수가 없단다. 그러면서 네 집주소는 주었냐길래.. 영구 거주지는 아니고 그냥 그때 머물던 곳 주소 줬지.. 하며 오랜만에 다시 그때 일을 브리핑했고, 그는 듣더니 걔네가 잘못한 거니 거기에다가 따져야 할 것 같단다. 갑자기 잊고 있던 답답함+짜증이 폭풍처럼 밀려온다.
"외국인 가입 안 되는 거였으면 날 왜 가입시켜서 이 개고생을 하게 하니. 난 이제 따지기도 귀찮고 그냥 쿠도 월정액 지금이라도 당장 끊고 싶어. 근데 난 네가 무슨 말 할지 안다. 611에 전화하라고? 611 말고 딴 번호는 없니? 기다리다가 짜증 나서 매번 끊는다. 저번에 그 오랜 시간 요청해서 겨우 등록한 카드, 그거도 결국 결제 안 되는 거 같은데."
이런 요의 넋두리를 막 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화나거나 위급한 상황이 되면 영어고 불어고 더 잘 된다. 사람의 생존 본능은 참으로 강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생각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쿠도 ask 온라인 서비스에 내 번호를 남겼고, 10분 안에 너에게 전화가 갈 거라고, 이게 더 빠를 거라며 도와주더니. '베스트 바이 직원, 그 멍청한 놈, 일을 그따구로 처리하냐.. (F 워드를 마구 써가며;;) 나만큼이나 진심으로 화를 내준다. 그 덕에 내 화가 많이 풀렸다. 그리고 프리페이드 카드 백 달러어치나 샀는데 날리지 말고 쓰려면 전용 심을 구매해서 쓰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그건 본인이 기쁘게 도와주겠단다.
기분이 한결 나아져 나왔는데 5분 걸었을까. 정말 바로 쿠도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기다릴 때는 안 받더니.. 사람들과 차가 막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에서... 어찌나 타이밍도 잘 맞추는지. 엄청난 소음을 이겨내며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미 여러 차례 했던 지루한 정보 확인 과정을 거쳐 난 드디어 캔슬을 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전달했다. 캔슬하는 이유를 묻고 끝난 줄 알았는데, 절차상 캔슬 처리 직원과 한번 더 통화하라며 연결해주겠다고 하고 참 오래 기다리게 한다. 보통 이 정도 기다렸으면 (한국 같으면) 안 되나 싶어 끊었겠지만, 이게 어떻게 연결된 귀한 통화인데 하는 마음에 거리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을 잊을만큼 무척이나 친절했던 이 두 직원의 도움에 힘입어 쿠도로부터 드디어 캔슬이 되었다는 메일을 한 통 받을 수 있었고, 최종 수정된 빌은 웨스턴 유니언에 가서 내면 될 거라는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바이 바이 쿠도, 우리 다신 월정액으로 만나지 말자. 그럴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늘 그렇듯 안 좋은 일에서 더 많이 배운다. 고..맙다. 쿠도야.
Pain is inevitable but suffering is optional. (The book of Joy, Dalai Lama/Desmond Tutu/Douglas Abram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