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이야기 2

사람 편 1/와이파이와 쿠바 아저씨> 1쿡만 줘

by Iris K HYUN





쿠바는 그 흔한 와이파이 사용부터 예사롭지 않은 나라다. 보통 데이터 단위로 상품을 파는 전 세계의 흐름을 가볍게 무시하듯 이들은 '시간' 단위로 카드를 판다. 이 인터넷 카드는 에텍사라는 곳에서 구입하는데(-호텔에서 팔기도 하고 길거리에 서 있는 사람에게 웃돈을 주고 살 수도 있다-) 나 역시 첫 카드는 두 시간 넘게 기다려 구매했던 것 같다. (-늘 문 앞에 지키고 서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일정 인원만 순서대로 안으로 입장시킨다. 고로 에어컨이 있는 안에서 기다릴 수 없고 입장 사인을 줄 때까지는 땡볕에 하염없이 서 있어야 한다. 줄이 길어 보이지도 않는데 카드에 개인 이름이라도 새겨주는 건지 속도가 어지간히도 느리다. 실제 같이 줄 서 있던 외국인과 기다리다 지쳐 이런 류의 넋두리를 했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제야 제작을 하고 이름까지 써서 주는 걸 거라고-)


아바나는 아니고 여긴 트리니다드 에텍사, 에텍사 입구에는 지루한 표정의 사람들 무리가 늘상 이렇게 있다.



카드를 장만했다면 이젠 이걸 쓰기 위해 특정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주로 공원이나 호텔로 가야 에텍사 와이파이가 잡힌다. 그럼 카드에 가려진 비밀번호를 흡사 복권처럼 살살 긁어서(-'살살' 긁어야 한다. 난 또 이걸 파워풀하게 긁었다가 비번이 같이 지워지는 참사를 몇 차례 겪었다-) 거기에 넣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많이 이용할 때는 이마저도 계속 튕겨 나오고 접속이 잘 안될 때도 많다. 쿠바에선 뭐든 인내심을 요한다.



더운 쿠바 날씨에는 개도 지친다. 곳곳에 저렇게 널부러져 있다. 길거리 소음이 엄청난데도 잘도 잔다.




그런데 처음 카드를 산 나는 이걸 어디서 이용하는 건지 몰랐다. (-나중에 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너도나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냥 거기가 와이파이 존이다-) 당시 쿠바에 대해 사전 조사를 별로 하지 않고 간 탓에 카드를 손에 쥐고 어벙하게 그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다가왔다. 쿠바에선 약간의 빈틈만 있으면 누군가 어김없이 다가온다.


"도와줄까?"


지금껏 도와주겠다며 세상 다정한 얼굴로 다가와 막판에 돈을 요구했던 것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아바나에서 단지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이런 일들을 하도 겪으니 작은 호의조차 순수해 보이지 않았다. 한 발자국 떼기가 무섭게 이런 사람들을 만났다. 시가를 사라고 하거나 춤을 추자고 하거나 앞뒤 없이 남자 친구가 되겠다고 하거나 등등의 일들이 있었기에 나중에는 길 물어보기도 망설여졌다. 그들은 돈을 요구하면서도 늘 당당했다.


"1 쿡만 줘. 너희한테는 1 쿡(=1달러) 그거 아무것도 아닌 돈이잖아."


이 말을 정말이지 지겹도록 들었다.


"여봐 나도 아끼고 아끼며 여행하는 거야."라고 아무리 말해도 너네가 쓰는 돈은 차원이 다르니 잔말 말고 어서 내놔하는 식이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남의 돈 귀한 줄 모르는 뻔뻔함이 진짜 밉상이다 싶었지만 집안의 어려움까지 토로하며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또 약해졌다.



쿠바 어머니의 파워워킹, 여긴 결혼도 일찍 해서 이십대 초에 이미 애가 있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만큼 이혼률도 높고, 재혼도 흔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나 그거 다 개수작이에요. 무슨 자선단체에서 나왔어요. 누나도 돈 별로 없으면서. 그렇게 한 두 푼 주다 보면 끝이 없어요. 아닌 건 안 된다고 강하게 말하고 웃지도 말고. 그리고 먼저 다가오는 사람은 백 프로 사기니까 절대 믿지 마요."


아바나서 만난 한 동생은 내가 어설퍼 보였는지 이런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순수하게 도와주려는 일부 쿠바노들까지 싸잡아 사기꾼으로 몰아가기도 싫었고 쓸데없이 인상을 팍 쓰고 다니기도 싫었다.



쿠바노들은 늘상 문에 서서 혹은 앉아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와이파이 장소 알려 주겠다고 다가온 이 아저씨는 돈 달라고 할 거 같지는 않았다. 영어는 잘 못했지만 자신을 플로리디타에서 일하는 셰프로 명확하게 소개했다. 고맙지만 도움은 괜찮다고 사양하는 나에게 어차피 가는 길이니 거길 데려다주는 건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헤매는 걸 보고 그냥 도와주고 싶은 거구나 하는 확신이 들어 아저씨 뒤를 따라나섰다. 아저씨는 함께 걷는 동안 한국에 대해서 본인이 아는 이야기들을 유쾌하게 늘어놓았고 아바나에서 가보면 좋을 곳들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래 이렇게 좋은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하는 생각을 하며 아저씨를 따라 걷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심지어 아까 본 거리를 또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따라가며 mapsme(*쿠바는 구글 대신 이걸 사용해야 한다. 참고로 사용할 앱은 쿠바 들어오기 전에 다 받아와야 한다. 와서는 다운 안 된다-.-)를 들여다보니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는 게 아닌가.



결국 도착은 했다. 그런데 400m 떨어진 거리를 거의 1km는 족히 넘게 돌아온 것이다. 뭔가 기분이 께름칙했지만 고맙다고 인사하고 공원에 앉아서 와이파이를 쓰려는데 아저씨는 가지 않고 내 옆에 앉아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 이제 괜찮으니 가셔도 된다고 하는데도 자신은 시간이 많으니 신경 쓰지 말고 볼일을 보란다.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 어찌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있나. 그래서 대강 중요한 것들만 체크하고 후딱 일어나는데 아저씨가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를 하신다.


"1쿡만"


아, 깊은 빡침!이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결국 또 돈이었어? 그놈의 1쿡. 아니 내가 도와달라 그랬냐구요. 됐다고 하는데도 따라와서 도와줬잖아요. 처음부터 그럼 돈을 달라고 하던가. 다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셰프도 아니죠? 쿠바 진짜 싫다. 이게 사회주의냐. 정말 돈에 미쳤어 다들."


지금까지 아바나에서 겪었던 짜증나고 화났던 모든 상황들이 이걸 계기로 한꺼번에 터졌다. 주변 사람들이 뭔 일이 생겼나 쳐다볼 정도로 난 그 아저씨한테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물론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아저씨는 대충 내가 화났다는 것만 감지하고 스페인어로 대체 왜 화났냐고 물어본다. 이 더위에 나만 미쳐 날뛰고 있고 아저씨는 쟤가 왜 저래 하는 평온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보니따 세뇨리따 좀 웃으라고.


아. 장난하나.


이 아저씨는 진심으로 그냥 날 도와주고 싶은지 알았다. 그리고 나에게 쿠바노 조심하라고 했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 모든 상황이 짜증이 났다. 이 와중에도 아저씨는 가지도 않고 1 쿡을 자꾸 달란다. 스멀스멀 계속 올라오는 짜증을 누르며 "1 쿡이면 되죠?" 하면서 지갑을 열었는데 지폐밖에 없었고 나는 그에게 잔돈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 아저씨.. 문제없다며 조오기 편의점? 같은 데 가서 바꾸면 된다고 한다. 씩씩거리며 거기 앞까지 가니 아저씨는 1쿡 대신에 돌연 팩에 든 주스를 가리키며 저게 먹고 싶다고 한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1.5 쿡이란다. 빨리 그거 하나 주세요. 해서 받아 든 주스를 건네니 아저씨는 "그라시아스"하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이거 주스 하나에.. 자존심도 없어요?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데도 웃음이 나오나 보네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빨대가 꽂힌 주스를 쪽쪽 빨아먹고 있는 아저씨에게 이렇게 쏘아대는데도 못 알아듣는 건지 웃고만 있다.


정말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아저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해피해요?"


그런데 아저씨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선 화난 나를 등지고 돌아서서 걸어간다. 미친 듯 막 화를 냈는데 분이 풀리긴커녕 슬퍼졌다. 주스를 들고 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를 낸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올드 아바나(위), 아바나 센트로(아래)

베다도 지역에 있는 쿠반아트팩토리, 젊은 쿠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적 가치를 담은 상업광고, 영상 등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 영상 전엔 미셸 오바마가 나와 랩을 하셨다.

* 쿠바는 내국인(CUP)/외국인용(CUC)으로 나뉜 서로 다른 화폐 시스템을 갖고 있다. 보통 1 CUC=24 CUP 정도인데, 이 격차가 좀 크다 보니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허탈감이 존재한다. 사실상 국가에 고용되어 벌어들이는 그들의 수입(소위 전문직에 속하는 의사, 변호사, 교수 등의 연봉 수준도 정말 낮다)에 비해 관광객을 상대로 짧은 시간에 버는 돈의 가치가 훨씬 크기에 이들을 이용하여 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하다.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체계화하였지만, 그들이 사회주의라는 국가 체제 안에서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 앞으로 그들이 해결할 과제가 정말정말 무겁게 느껴진다. 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다음에 쓰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