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이야기 3

사람 편 2/쿠바노의 사랑> You are so complicated!

by Iris K HYUN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말라!"


아바나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유리 씨의 책에 따르면, 쿠바 사람들에게서 많이 듣게 되는 말이라고. 이 말을 직접적으로 들은 적은 없지만,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단적으로 잘 나타내는 말 같다.

(참고) 올드 아바나에 위치한 일식집 '사유 크레페'는 협소한 공간이지만 간단한 일식을 먹기에 좋은 곳이며 가격도 굉장히 저렴하다. 내국인용 화폐인 모네다 사용도 가능하다. 이곳에는 사유 씨가 한국 출판사를 통해 출판한 그녀의 책, '작은 나라 큰 기적' 도 있다. 난 그곳을 들를 때마다 그 책을 조금씩 읽었다. 쿠바 사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쿠바에 대한 그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가시는 분들은 책도 한 번씩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쿠바인들은 그야말로 오늘을 산다. 나중을 대비해서 아끼거나 저축하는 개념도 별로 없다. 모든 이가 같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그러하다. 참 대책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순간의 행복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오늘 돈이 생기면 칵테일을 마시고 춤을 출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난 가끔 그런 그들의 배짱과 호기로움? 이 부럽기도 했다.


이들은 연애도 그렇게 한다. 상대방이 좋으면 앞뒤 없이 들이댄다. 아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렇다고 많이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엔 쿠바가 한 수 위인 것 같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연애나 성에 대해서 아주 오픈되어 있기에 이들은 이성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일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며 상당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말은 또 어쩜 그렇게 잘하는지. 정말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 오글거리는 칭찬을 상대에게 거침없이 쏟아붓는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몸매를 가꾸는 일에도 열정이 많고,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캐나다와 영국에서 온 어느 커플이 내 옆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쿠바 사람들의 몸을 '칭송'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몸인 것 같아. 영양 상태도 그다지 안 좋은데 몸이 어쩜 저렇게 다 근육인지."


그런데 사실 그들은 몸매를 가꿀 필요도 없는 것 같다. 타고난 측면도 무시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주 어린아이들도 팔다리가 쭉쭉 길고,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S자 굴곡의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다. 남녀가 다 그렇다. 아이들을 보고 우리는 확신했다. 그래. 타고난 거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작 그곳에 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멕시코에 가보니 아.. 같은 중미인데 너무나 다르구나.. 새삼 느꼈다.



CUBA, 어딜가도 음악이 있고, 칵테일이 있고, 춤이 있다.



쿠바에서 촬영한 드라마 '남자친구'의 1화에 보면 송혜교랑 박보검이 조그마한 수송선을 타고 말레콘 건너편 모로 카바냐에서 야경을 본다. 나도 거기를 가봤다. 쿠바 박보검...은 아니고 그냥 쿠바 사람과.


이 친구를 처음 본 건 쿠반 아트팩토리에서였다. 당시 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중국 출신의 내 또래 여성과 그곳에서 정신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쿠바 청년 무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아시아에 대한 엄청난 궁금증을 가진 친구들로 폭풍 질문을 쏟아내며 우리 근처를 맴돌았다. 자리를 옮겨 춤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고, 안 그래도 살사 배우고 싶다던 중국 여자는 좋다며 당장 추러 나갈 기세였는데 내가 여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팩토리를 나올 시점이 이미 12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나는 캐나다에서 온 이후로 컨디션이 그리 좋진 않아서(-춥다가 갑자기 더워지니 그랬는지 며칠은 비실거렸다-) 집에 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중국 여자는 춤을 배우러는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는 무섭고 하여 자꾸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결국 나는 거절했고, 그 여자는 진심으로 나에게 섭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노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날 밤 쿠바 남자와 중국 여자 양측 모두에게 거의 역적 수준의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



쿠반 아트팩토리/ 갤러리, 바, 공연장 다양한 공간을 한 번의 입장으로 모두 즐길 수 있다.



다음 날 원 없이 아주 푹푹 자고 일어난 나는 눈이 퉁퉁 부은 채 숙소 발코니에서 바깥을 보고 있는데 어디서 본 듯한 남자가 길에 보였다. 자세히 보니 어제 그 무리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계속 그 이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다. 어제 숙소가 어딨냐고 물어봐서 얘기해줬고 택시 잡아주면서 기사에게 그쪽으로 내려달라고 부탁해주었지만 뭐 일부러 여길 기억하고 온 건 아니겠지 했다. 아침을 대강 먹고 나갈 준비를 해서 밖으로 나왔는데 이 남자 아직 거기 있었다.


"올라" 하고 인사하며 내가 아는 척을 했는데 그는 정말 못 볼 사람이라도 본 거 마냥 펄쩍 뛰며 놀란다.

"믿을 수가 없네. 너를 여기서 다 보네. 지금 여기 지나가고 있었는데.."

아니 한 시간 째 여기 있어놓고 뭐 하는 거야.. 싶었지만 그냥 모르는 척했다.

"그러게 또 보니 반갑다."


오늘은 노는 날이니 잘 됐다며 자신이 아바나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다. 고맙지만 혼자 잘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하니 관광객은 잘 모르는 현지인만 아는 장소들이 있다며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구구절절 설명을 했다. 이 친구는 영어를 할 줄 알았는데 보통 현지인들과 대화가 안 돼서 손짓 발짓하는 상황이 많았기에 이 정도로 소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너무 감사했다. (스페인어 구글 번역기라도 다운받아 왔어야 했는데..쿠바에선 그조차도 다운받을 수도 없으니.. 진즉에 스페인어 공부 좀 해 올 걸 싶었다. 생각보다 영어가 안 통한다. 나중엔 답답해서 불어도 막 던져보고 그랬다. 혹시 비슷한가 싶어서;;) 여하간 대화가 되고 있다는 벅찬 마음으로 그 친구의 반나절 투어에 그렇게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코스 중 하나가 수상선 타고 말레콘 건너 모로성 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드라마에서 박보검의 햇살 미소와 함께 그 장면을 보는데 그 친구가 생각났다. 같은 장면 너무 다른 상황이었다.



아바나에서 수상선 타고 모로성 가기



한낮에 더워도 너무 더웠다. 처음엔 구름이 잔뜩 껴 비라도 올 거 같더니 배에서 내리자마자 해가 보란듯 다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 어디론가 올라가서 브라질 예수 동상 같은 것도 보고, 시골 마을 같은데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고, 탱크랑 포가 있는 공원도 가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모로성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친구는 여기가 아바나에서 제일 로맨틱한 곳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핸드폰에서 음악도 선곡하여 틀어놓으며(-가끔 말레콘에 엄청나게 큰 앰프 스피커를 들고 다니며 음악을 재생하고 듣고 하는 청춘들을 보았다. 절대 휴대용으로 보이지 않는데 그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도 "여기 진짜 로맨틱하지 않아"를 반복했다. 그냥 말 안 해도 그 로맨틱을 내가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이 친구는 이곳은 관광객이 정말 잘 모를 거라고 했으나 나중에 보니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듯했고, 하물며 바로 우리 옆에 앉아 있는 외국인은 관광객이 아닌 것인가. 그때부터 쿠바인의 말에 섞인 약간의 허풍과 사기의 기운을 감지했던 것 같다.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그는 갑자기 춤을 추자고 했고(-쿠바 사람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디서든 춤을 출 수 있는 민족이다, 잘 못 춰도 따라서 추다 보면 배울 수 있다-), 옆에 앉은 캐나다에서 오신 노부부와 유럽 어딘가서 온 청년이 박수를 치는 바람에 그들 앞에서 되도 않는 춤을 췄다. -.- 그는 춤을 추며 또 말한다.

"로맨틱하지?"

"응 로맨틱하네." 나는 영혼 없이 대답했다. 사실 뒤로 떨어질까 그게 더 신경이 쓰였다. 뒤는 망망대해다. 이 친구가 흥에 겨워 나를 뒤로 밀어 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쿠바에선 다양한 올드카를 본다. 거의 폐차 직전의 차도 잘 굴러간다. 차 뿐만 아니라 그들은 무엇이든 고쳐쓰는데 거의 달인이다.



"내가 너 남자 친구 해도 될까?"


초면에 밑도 끝도 없이 결혼하겠다, 한국에 데려가 달라 이런 쿠바노들도 종종 있었다. (아마 쿠바에 혼자 여행하는 여자 분들이라면 이런 에피소드 하나쯤은 다들 있을 거다.) 대체로 크게 반응하지 않거나 안 된다고 하면 또 바로 간다. 말도 쉽게 건네고 단념도 빠르다. 이 정도면 거의 인사 아닌가. -.-

그런데 가끔 이런 모습이 우스워 농담이지? 하고 물어보면 세상 진지한 얼굴로 자신은 지금 굉장히 진지하다고 말한다. 말이나 못 하면ㅡㅡ'


여하간 이 친구의 물음에 난 이렇게 대답했다.

"나 사실 결혼했어."

쿠바노 닮아가는지 거짓말이 술술 잘도 된다.

그랬더니 이 친구 이런다.

"나도 결혼했는데 뭘"

"뭐? 너 스물여섯 살이라며? 벌써 결혼을 했어?"

"응 애도 있는데."

"뭐야. 그럼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니가 좋으니까."


이런 식이다. '하.. 너무 당당하신 거 아닙니까'


난 정신을 수습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도 애가 둘이나 있어. 그러니까 새로운 남자친구는 필요 없고 있어서도 안 될 거 같다. 너도 결혼했다면서 이런 말 하는 게 정상이야?"


나의 이 말에 그 친구 정확하게 이렇게 말했다.


"You are so complicated!"


나는 그 이후로도 쿠바 있으면서 이 말을 몇 번 더 들었던 것 같다.



'그래 너넨 심플해서 참 좋겠다.'



* 하지만 가끔 쿠바노의 충고가 복잡한 여자?인 내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뭘 그렇게 심각해. 그런다고 해결이 될 거 같아? 그냥 오늘을 즐겁게 지내. 해결될 일은 다 되게 되어 있어." 남의 일이라고 거 되게 쉽게 말하네.. 생각했지만 그러고 보면 실제로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 어쨌든 어찌어찌 다 해결이 되어 있었다.



늘 이런 흥이 넘친다! 이들이 즐겁고 속 편해서 춤추고 웃는 게 아니라 춤추고 웃기 때문에 그 일상이 조금은 가벼워 지는 것 같다. 새해엔 우리 웃고 즐길 여유, 남겨 놓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