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야기 5

5편/ 크리스마스와 홈리스>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가?

by Iris K HYUN




경제가 어렵고 각자 먹고사는데 바쁘다 보니 세상은 더 각박해지고 각자의 위치에서 미치도록 '안정'을 추구하게 한다. 좁디좁은 코딱지만한 나라 안에서도 이해관계로 종교로 이념으로 편을 가르고 '내가 맞네 니가 틀리네' 한다. 나와 다른 사람은 틀린 사람이고 누군가 어떤 실수나 잘못을 하면 죽자 사자 달려들어 죽일 듯 비난한다. 내 밥그릇을 사수하기 위한 이기와 처절함만이 남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여유는 점차 사라진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타인의 길마저 그 틀에서 훈수를 두려고 한다. 한 사회에서 소위 기득권 층은 특히나 그들이 가지는 안정감 속에서 그 너머를 보고 살기란 쉽지가 않다. 이들이 얼마나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가, 얼마나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가는 생각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진다. 그들의 신선한 행보가 종종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좋은 자극을 주는가.



재산의 사회환원을 실천하는 워런버핏, 빌 게이츠/ 많은 재산의 기부 자체보다 거기에 담긴 가치가 더 큰 의미를 갖는 게 아닐까. 사진 출처: www.worldincanada.com
얼마 전 전 재산 8,100억 원을 기부한 주윤발 따거, 쏘 쿨!




일이 바빠서 휴가도 제대로 못 쓰고 있는 한 친구는 요즘 내가 싸돌아 다니는 것에 대리만족을 한다며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어디가 제일 좋았는데? 살 거면 어디서 살고 싶어?"


글쎄.. 요즘 드는 생각은 어디에도 완벽한 파라다이스는 없는 것 같다. 여기는 요런 요런 부분 때문에 너무 좋은데 그런 만큼 불편하고 부족한 부분도 분명 있다. 밖에서 볼 때는 엄청 좋아 보였는데 막상 안에서 보면 아니었구나 실망하는 것들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이래서 저래서 싫다고 욕을 해도 얼마나 많은 장점이 있는지는 나가 보면 알게 되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어디 살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파라다이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도 평생 혼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면 슬프다.


여하간 이런저런 물리적인 것을 제외하면 나는 그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사람이 생긴 대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곳이 좋다. 교육 시스템, 생활 속에 이런 다양성의 가치가 잘 스며들어 있는 곳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캐나다가 좀 (많이) '노잼'이지만 그래도 멋지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다양한 사람들이 비교적 잘 섞여 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오래 살아보지 않아서 함부로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다양성에 대한 관용 수준이 높다고 생각했다. 다름을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차이가 자연스럽다. 그리고 또 하나는 비록 자신이 주윤발 따거나 워런 버핏이 아니라도 서로 나눌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가끔(여기도 자주는 안 보인다ㅋ) 감지될 때 좀 괜찮은데 생각했다.




위) 가을 토론토/ 아래) 겨울 토론토





그런데 캐나다에서 놀라웠던 것 중 하나가 생각보다 홈리스가 많다는 것이었다.(나는 캐나다는 길거리에 홈리스가 없을 줄 알았다. 재교육이나 취업 장려 프로그램 등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왠지 이들을 수용할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만약 있다 해도 아주 소수일 것 같았다. 너무 파라다이스를 생각했나;;)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였다.

보통 어느 나라나 길거리에 홈리스를 보면 동전을 주고 가는 풍경이 익숙한데, 캐나다에서 나는 몇 차례 색다른 장면을 보았다. 이것이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아닐지라도 몇몇 사람들의 행동에서 나 역시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자신이 집에서 요리한 음식을 나눠 주거나 안 입는 옷가지나 생활 용품을 가져다주는 모습, 그리고 잘 아는 사람처럼 안부도 묻고 한참 이야기하다 가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이벤트처럼 생색을 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친구에게 필요한 거 갖다 주고 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또 한 번은 몬트리올에서 퇴근하는 길처럼 보이는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포장 피자를 들고 가다가 그중 몇 개를 꺼내 그들에게 주고 가는 거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지금 가진 것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나누는 '마음의 여유'가 멋져 보였다. 워런 버핏이나 주윤발 따거가 아니라도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허나 쉬워 보이지만 실천이 잘 안 된다. 마음은 있지만 그냥 지나치게 된다. 혹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몰라서 그저 피하게 되기도 한다.




위) 가을 몬트리올/ 아래) 겨울 몬트리올





12월 크리스마스 무렵에 나는 다시 토론토에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일색의 길거리에 여기저기 누워 있는 홈리스들이 많이 보였다. 보통 건물 기둥이나 그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여기 토론토에서 본 홈리스들은 길 한가운데, 정말 사람들이 막 다니는 그 거리 중심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다. 단순한 구걸을 위해 잠깐 나온 것이 아니라 아예 조그마한 집처럼 박스로 붙여 만든 자신의 공간 안에 간단한 살림살이까지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걸 보니 거기서 계속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박싱데이에는 이튼센터 주변엔 사람들이 터져나갈 듯 많았다. 난 이미 무거운 짐 가방 때문에 더 사고 싶은 의욕도 별로 없었지만 그 안에 들어선 순간 마취총이라도 맞은 듯 뭔가 사야 할 것 같은 조급함에 좀비처럼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사고 싶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나오니 밖이 벌써 어둑어둑하다. 겨울 캐나다 동부가 또 오죽 추운가. 두꺼운 롱 패딩에 목도리를 칭칭 감아 눈만 겨우 내놓고 걸어가면서 춥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그 차가운 거리에 얇은 상자 박스 위에 누워 있는 아저씨를 봤다. 길 구석도 아니고 정말 사람들이 이리저리 다니는 거리 한가운데 점퍼 하나를 걸친 채 똑바로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토론토의 크리스마스, 이튼센터&허드슨 베이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이거 저거 내가 필요한 걸 담아 와 계산하는데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진열장에 있는 조각 피자를 몽땅 다 달라고 한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고 열 조각 정도 남아 있었다. 하나에 다 넣을 거냐고 직원이 물으니 아저씨는 홈리스 나눠 줄 거라고 미안하지만 하나씩 따로 넣어달라고 했다. 난 이 아저씨를 보는데 몬트리올에서 자신의 피자를 나눠주고 쿨-하게 떠나던 직딩남이 떠올랐다. 이런 훈남들 같으니.




베트맨의 격려, 한 해 동안 수고 많았네, 멕시코시티




난 그날이 토론토에서 마지막 날이었다. 집 떠나온 9월의 어느 날부터 해서 그간 많은 추억과 생각들이 머리를 지나는 밤이었다. 더 추워지는 날씨에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들어가는데 어떤 여자가 불쑥 나타나 잔돈 있냐고 내게 물었다. 홈리스였다. 그냥 스쳐 지나려다가 멈췄다. 앞선 훈남들의 영향이었는지 나도 마음이 좀 말랑해진 상태에서 그녀를 쳐다볼 여유를 냈다.

그녀는 5달러 정도 줄 수 있냐고 했다. 그런데 지갑을 보니 동전은 없고 10달러 두 장이 있었다. 그게 현금으로 내가 가진 전 재산이었다. 앞서 그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했다.


"나 오늘 여기서 마지막 날이야. 내일 아침 일찍 공항 갈 거긴 한데.. 보니까 이제 20달러 남았네."

"아. 정말? 여행 즐거웠어? 난 5 달러만 있으면 되는데."


마지막인데 통 크게 그냥 10달러를 건넬까 잠시 망설이는 내게 그녀는 자신은 오 달러만 있으면 된다며 바로 앞에 세컨 컵에 가서 바꿔줄 수 있냐고 한다. 그녀는 내 시간을 뺏는 것을 미안해했다. 그리고 세컨 컵까지 가서는 문 앞에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싫어할 수도 있으니 그냥 밖에 있을까 묻는다.

"뭐 어때 들어가자."

같이 들어갔다. 그냥 돈만 바꾸긴 그래서 머핀을 하나 샀다.

그녀는 내게 머핀 먹으려고 하냐며 웃는데 앞에 이가 모조리 없다. 계산을 하는 동안 그녀가 말한다.

"나 예전에 여기서 일했는데.."

"아 그래?"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다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젊은 나이인데 왜 이러고 있냐. 일을 안 하냐. 오 달러로 뭘 할 거냐 하는 것들은 묻고 싶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가족도 없이 홀로 있는 그녀에게서 비슷한 마음의 상태를 느꼈다. 돈이 있어도 없어도 똑같이 외로운 것이다.


5 달러와 머핀 박스를 그녀에게 같이 건넸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녀는 빠진 이가 다 보이도록 정말이지 활짝 웃었다.



박싱데이, 이튼 센터 앞에서 버스킹을 하던 Toshi,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