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허우적거리고, 가만히 들여다보자.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온 나는 자전거를 한 달 빌렸다. 이곳에선 누구나 잘만 타고 다니는 스쿠터를 용기 있게 시도해 보았으면 좋았을 걸, 자전거를 빌리고 이틀 만에 후회가 밀려왔다. 자전거 도로가 따로 없기에 차와 모터바이크가 뒤섞여 막 내달리는 곳을 사이좋게 함께 가야 하는 것쯤은 금방 적응이 되었다지만(여기 친구가 그랬다. 주변에 어떤 위협이 와도 '난 그저 내 갈 길을 가련다'는 마음으로 본인 페이스대로 가면 알아서 다 피해 간다고;;) 극심한 더위에 자전거를 타려니 죽을 맛이었다. 여행 다니면서 각종 무더위와 강렬한 햇살은 다 경험해 봤지만 4-5월의 치앙마이는 좀 많이 덥다. 살이 아주 지글지글 굽히는 느낌이다. 나가자마자,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땀이 줄줄 난다. 너무 더우니 밥맛이 없고 물만 자꾸 찾게 된다. 자동으로 다이어트가 되는 거 같다.
하루는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수업이 있어서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페달을 저어도 속도가 생각만큼 나지 않고 너무 힘든 거다. 허벅지가 파열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아니 운동을 해도 거꾸로 체력이 안 좋아질 수도 있나.. 아무리 덥다지만 체력이 이렇게 밖에 안 되나.. 이런 복잡한 심경에 휩싸였다. 나를 앞질러 쌩쌩 잘 가는 모터바이크에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끼며 급기야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짜증이 났다. 매연을 대놓고 뿜고 가네.. 아 옆으로 가면 되지 꼭 내 앞에 끼어들었다가 가야 하나.. 수업은 하필 왜 이 시간으로 정해서 이 땡볕에 고생하게 하나..
그간 이곳에 고마운 사람들 덕에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흘러넘치는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온갖 부정적 감정이 폭풍처럼 찾아왔다. '거봐, 넌 아직 멀었어' 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여기서 사서 입은, 밑단이 넓어 치마처럼 펄럭이는 바지 자락 한쪽이 자전거 체인에 걸려 말려 들어가기까지 하자 짜증은 극에 달했다. 다행히 바지가 찢어지는 참사는 막았지만 그간 성실하게 내 두 다리가 되어준 자전거를 버리고 싶었다.
그때 어떤 가게에 아저씨가 나를 향해 다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난 그 가게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아저씨는 내 자전거를 가리키며 알 수 없는 수신호를 자꾸만 보내셨다. '죄송하지만 뭔 말인지 이해 못 하겠어요.' 하고 그냥 가려는데 아저씨가 황급히 달려 나오시더니 내 자전거 바퀴를 잡고 바람을 넣어야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바퀴가 많이 꺼져 있었다. 바퀴가 이모양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을 못하고 그저 미친 듯 페달만 밟고 있었는데, 허탈해서 웃음이 났다.
보통 때보다 속도가 확연히 떨어진 걸 알면서도 나는 왜 자전거를 들여다볼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했던 걸까. 이렇게 느낀 지가 벌써 며칠은 되었는데도 나는 내 체력이 안 좋아졌다고만 생각하고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더운 날씨에 자전거를 몰 때마다 힘들고 짜증 나는 감정에만 온통 사로잡혀 있으니 다른 것을 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아마도 아저씨가 지적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더 오랜 시간을 바람 빠진 바퀴로 영문도 모른 채 씩씩거리며 다녔을 것이다. 가게에서 나오셔서 이렇게까지 직접 알려준 아저씨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샘솟았다. 햇살에 한껏 인상 쓰던 얼굴을 피고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아저씨께 '컵쿤카' 하고 인사했다.
우리는 살면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진창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해결책은 도무지 모르겠고, 이 상황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어떤 다른 것도 인식할 수 없을 때 말이다. 이런 상황엔 어떤 다른 이의 충고도 들어오지 않는다. 빠져나오긴 엄청나게 아주아주 힘들 것이라는.. 이미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결정해 버린 확고한 신념이 두려움과 불안을 더 강하게 증폭시킬 뿐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에서 비롯된 의미 없는 휘적거림? 만 반복하고, 그럴수록 더 깊게 빠지고, 더 필사적으로 같은 패턴에 집착하고, 더 깊게 빠지고 이런 악순환만 경험하게 된다.
내가 언젠가 걱정에 사로잡혀서 이렇게 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저렇게 할까 하며 난리를 치고 있을 때 여기서 만난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일단 잠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숨이라도 한번 크게 쉬고 잠시만 거기에서 떨어져 있어 봐. 그 난리 난 감정에선 넌 니가 원하는 해답을 못 찾을 거야."
예전에 '왓칭'이라는 책에서도 말하 듯 엉망진창이란 생각이 들 땐, 때로는 자신과 거리두기를 해 볼 필요가 있었다. 어렵겠지만 그냥 남의 일인 양, 한동안 가만히 들여다 보는 것이다. 어쩌면 매몰된 감정 상태에서 보지 못했던 해답이 저절로 찾아질 수도 있다. 그리고 주변의 충고에서도 생각지도 못하게 새로운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사실 최고의 답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말을 오늘도 믿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