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내버려 둬
"Enjoy" <즐겨>
아마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고 역시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하다. 이 단어를 들을 때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혹시 (-무의식의 저 밑바닥에선-) '정말 인조이' 하기엔 난 어딘가 준비가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거나 쓸데없이 타인에 대한 죄의식이 들거나 주변의 모든 환경이 이모양인데 뭘 즐겨라는 생각에 부정적 감정만 드는가. 만약 현재의 상황을 너무나 잘 즐기고 있기에 이런 거부감 따윈 전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굳이 이 글을 읽으실 필요도 없겠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행복하고자 한다. 자신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이가 누가 있을까. 일부러 고통을 자처하여 불구덩이로 홀연히 걸어 들어가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겸손된 우리는 자신의 행복과 기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말하는 것에 인색하다. 현실의 스트레스와 부정적 감정을 나누는 것만큼이나 '이런 걸 했더니만 미친 듯 좋더라. 행복하더라' 이런 감정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가?
그럴 일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정교하게 잘 짜인 현실의 메트릭스 안에서 착하게 잘 굴러가며 그 안정감이 주는 얕은 만족감을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승진을 하고, 집을 사고, 결혼을 하면 정말 행복해질까. 그게 내 영혼이 진짜 원하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가장 솔직한 대답일 수도 있다. 한평생을 해야만 하는 것들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갑자기 적극적으로 생각해본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바로 알아채긴 쉽지 않다. 그저 대다수의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들이 아마도 나도 원하는 건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쩔 땐 '나의 행복' 그 자체가 너무나 거대한 성취의 대상처럼 느껴진다. 이조차 열심히 노력해서 달성해야 할 것 같은 또 다른 과제처럼.
'Happiness' (행복) '와 'Joy' (기쁨) 이 두 단어 중 자신이 더 추구하는 것을 골라 본다면?
둘 다 비슷한데 뭘 골라.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굳이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 더 많은 분이 전자를 고를 것 같다. Happiness는 뭔가 상위 단계의 좋은 것들을 몽땅 포함하고 있는 추상적 개념으로 다가오는 반면 Joy는 다소 일차원적인 것 같은, 너무 막 추구하기엔 어린 사람 취급받거나 괜히 욕을 먹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닌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 일반화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기쁨', '즐기다'라는 단어에 결코 편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개인의 기쁨은 너무 드러내지 않고 다소 자제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질까. 각자 본연의 기쁨을 찾아 움직이는 별난 대중보다 대중매체 등의 일방적 자극을 즐기고 시스템 안에서 던져주는 보상에서 자신의 기쁨을 찾아보려는 착한 대중?... 을 원하는 전 지구적 사회구조는 논외로 제쳐두고... 순수하게 개인적인 상황에서만 몇 가지 생각해 보자.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즐길 수 있는 상황' 자체가 항상 조건부 상황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예를 들면 '이런이런 상황(-이번 프로젝트가 잘 끝나야, 시험에 통과해야, 좋은 성과를 내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결혼을 해야,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사야, 돈을 얼마만큼 모아야.. 등등-) 이 되어야만 비로소 내가 온전히 즐길 수 있다'라고.. 스스로 주입한 생각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 말이다. 우리는 늘 더 완벽한 상황 속에서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타이밍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타이밍 자체가 없다. 하나가 채워지면 또 금세 다른 것을 원하는 이 끊임없는 갈망을 살아생전에 과연 다 채울 수 있을까.
'정말 거지 같은 삶?'에서도 자신이 즐길 것 하나쯤은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여기 한 친구의 지론이다. 그가 정말 거지는 아니지만;; 소박한 그의 삶이 많은 것을 누리던 이전의 삶보다 어딘지 모르게 더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겉보기에 많은 것들이 채워진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보다 훨씬 안정되어 보인다. '이것이 정답이다, 정상이다, 이래야만 할 것이다' 하는 것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그 친구에게서 나도 잊고 있던 순간순간의 작은 기쁨을 발견한다.
"슬프게도, 우리의 기쁨과 행복을 약하게 하는 많은 것들은 종종 우리 마음, 감정적 반응의 부정적 경향 혹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자원을 감사하고 활용할 줄 모르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Sadly, many of the things that undermine our joy and happiness we create ourselves. Often it comes from the negative tendencies of the mind, emotional reactivity, or from our inability to appreciate and utilize the resources that exist within us.")
'The book of Joy', Dalai Lama and Desmond Tutu with Douglas Abrams.
또 하나는 주변에 사람들이 이렇게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데 혼자 즐겨서 되겠는가.. 하는 '착한 사람 병'도 순간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고군분투하는 지인을 일부러 무시하고 룰루랄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위한 기회가 왔는데도 이래서 저래서 난 안 돼라고 외부의 조건들에서 원인을 찾고 결국 그걸 누리지 못하는 못하는 것 역시 자신의 선택이고 책임이라는 것이다. 나도 이전에 종종 즐겁게 놀다가도 잘만 계시는 엄마 걱정을 자주 했고 이 순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지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본인도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상황이 아닌데도 왜 항상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참으로 쓸데없는 걱정들로 순간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지금 당신이 무언가 즐겁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맞이했다면 그건 당신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행복이나 기쁨을 뭘 더 열심히 해야 받을 수 있는 상처럼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지금 그 자리에서 그대로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행복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여전히 찾기가 어렵겠다면, 그럼 무엇이 당신을 기쁘게 하는지.. '나의 기쁨'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게 더 쉬울 수도 있다. 뭔가 대단한 걸 행복의 조건으로 말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도 낮춰주고, 더 솔직하게 날 즐겁게 하는 것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어쩌면 행복에 대해 적을 때보다 더 구체적이고 잡다한 것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자신의 'Joy'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추구하는 것이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어느 것도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음 나는 술 먹고 놀 때가 제일 즐겁더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주 아주 가만히 그 내면을 보면 술 먹는 그 행위 자체가 최고의 기쁨은 아닐 것이다. 술은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혹은 나 자신을 바로 보기 싫어서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일 뿐 그 본연에 무얼 원하는가를 바라본다면 다른 것이 보일 수 있다. 그러니 오늘을 살다 죽자는 쾌락이 아닌 자신의 기쁨이 무엇인지 잘 찾아보자. 그리고 본인 스스로 자신의 기쁨에 대해 잘 이해하자. 나도 이해해보려는 중에 있다.
여기서 만난 친구들과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세상 태어나서 이렇게 온전히 내 기쁨만 주구장창 떠들어댈 기회가 어디 있었겠나 싶을 정도이기에 참으로 감격스럽다. 그렇게 감격스러움에도 내가 젤 못 떠드는 편이다. 단지 영어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기쁨을 잘 아는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눈빛이 빛나고 삶의 활력이 있다. 아 나도 그러고 싶다.
나는 친구 따라 Ecstatic Dance 이벤트에 몇 번 참여를 했었다. 별 다를 게 없고 음악에 맞춰 아무런 제약 없이 그냥 느껴지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처음엔 이게 뭐야 싶었는데 금세 너무나 자유롭고 즐거웠다. 우리는 언제나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춤을 출 때조차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춤이 아니라 나를 놓아 버린 상태에서 느껴지는 해방감을 스스로 온전히 누린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지 몰랐다. 여기서 한 친구가 말한 "Let all flow naturally" 이 말이 참 좋았다.
나는 지금 코팡안이라는 섬에 있다. 해질 무렵 해변에 갔다가 춤추고 있는 한 아시아계 여성을 보았다. 이곳이 아시아이지만, 아시아 여성이 현지인 말고는 잘 없는 편이고(풀문 파티로 유명한 곳에서 좀 떨어진 곳이다), 게다가 혼자 춤을 추고 있기에 대체 뭐지 싶어 한동안 바라봤다. 누굴 의식해서 추는 춤이 아니라 그야말로 ecstatic dance였다. 굳이 예쁘게, 섹시하게 보일 필요도 없는 그런 막춤 말이다. 그녀의 주변엔 어느 누구도 춤을 추고 있지 않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그저 혼자 한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돌고 있었다. 우리나라 어느 해변에서 그랬다면 정신 나간 여자 아니야..라고 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석양이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동안 이 여자는 계속 춤을 췄고 그 그림은 참 조화로웠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