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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 Aug 27. 2022

내리사랑-몬트리올, 캐나다

여행에서 소환된 그리운 엄마

 

몬트리올, 퀘벡, 토론토, 그리고 나이아가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지명 아닌가. 나 역시 무척이나 가보고 싶은 도시들이었다.

 

딸은 열다섯 살에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났다. 물론 자신의 선택이었다. 유학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하기까지는 딱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행 캐리어가 닳고 닿도록 떠났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유학을 준비하며 가졌던 수많은 걱정들은 비로소 물러간 셈이었다.

'딸의 유학은 곧 우리 여행의 종말이 아닐까?’아쉬움조차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딸아이가 다니는 미국 학교에서 부활절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말까지 합치보름 정도나 되는 꽤 긴 방학이다. 2개월 전 겨울방학에 한국을 다녀갔기에 내가 아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 캐나다 여행을 생각해냈다. 딸이 있는 지역에서 가깝고, 내 여행 버킷리스트에도 항상 상위에 있던 곳이 캐나다였다. 역시 가장 큰 의미는 ‘우리 둘만의 여행’의 부활이었다. 하지만 부활된 여행은 내 생각과는 딴 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엄마, 이거 너무 화려한가?”

붉은 꽃무늬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딸이 피팅룸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처음 입혀보는 비키니가 왠지 너무 민망해 보이고 부담스러웠다. 내가 이럴 필요는 없는데......

몬트리올 한 쇼핑몰에서 하루 종일 패션매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미국에서 지낸 지 일 년이 지나니, 미국 또래 친구들의 옷 입는 스타일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고 했다.

필요한 아이템 목록은, 학교 스포츠 수업에 입을 탑과 레깅스, 비키니 수영복, 여름용 드레스, 하이힐, 화장품, 헤어 액세서리, 거기에 용도가 다른 서너 켤레의 운동화까지......

‘이걸 다 사려면 여행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몬트리올 가장 오래된 노트르담 대성당과 피카소와 렘브란트로 유명한 몬트리올 미술관, 그리고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는 명물 푸틴(감자튀김과 대충 썬 치즈에 그레이비소스를 듬뿍 얹은 환상의 음식)까지 이 많은 위시리스트가 순식간에 지워질 수도 있는 게 현실이었다.

‘어쩌겠는가, 아이에게 절실한 뭔가를 해주는 게 엄마의 역할이지.’라고 위안을 삼았다.

몬트리올 삼일 일정 중 절반을 바쳐가며 그래도 임무는 완수되고 있었다. 역시 발품의 수고로움은 조금이라도 싸게 살 수 있도록 우릴 배신하지 않았다. 딸은 본인이 원하는 아이템을 하나씩 손에 넣을 때마다,

‘고마워, 엄마.’를 반복했다. 새삼 그 말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쇼핑 목록은 미국 여고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Christmas Banquit’ 드레스였다. 한참을 둘러보다가, 레이스가 살짝 들어간 하얗고 고상해 보이는 것을 고른 후 딸은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닫고 들어간 피팅룸 문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려 있었다.

거울 속에는 딸이 벗어둔 외투를 들고 서있는 내 모습이 비쳤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내 엄마. 어릴 적 옷을 사러 가서 봤던 엄마의 모습이 거울 속에 서있었다. 중학교 때 엄마와 사러 갔던 무늬 수영복이 떠오른다. 그때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마는 처녀시절 명동 유명 의상실에서 옷을 맞춰 입을 정도로 멋쟁이셨다.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던 때에 킬 힐도 마다하지 않았고, 옛 사진에서 엄마의 요염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의상실에 나를 데려고 가서는 특별한 맞춤복을 해 주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넉넉지 않은 월급에서도 아주 가끔 여유를 부려서 내게 범상치 않은 옷차림을 해주곤 하셨다. 항상 예쁘고 좋은 것만 해주고 싶었던 엄마 마음이 내 어린 시절 사진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초등학교 때 주변 사람들은 나를 부잣집 딸이라고 착각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살뜰한 보살핌을 먹고 자랐다. 막내딸인 나를 예쁘게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이 내 엄마와 나는 많이 닮아있었다.

 

몬트리올은 4월이라는 날씨가 무색할 만큼 스산하고 추웠다. 창밖으로 겨울비가 추적추적 더해진다. 지독하게 엄마의 향수가 짙어진다. 아이가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이미 내 엄마가 되어있었다.

                          4월인데 너무 추웠던 몬트리올(2018년)

엄마가 그립다. 넘치도록 쏟아 주었던 사랑에 비해 난 엄마에겐 부족하기 짝이 없는 딸이었다. 나이가 드셔서도 엄마는 쇼핑 다녀온 날이면 어김없이 나와 손녀딸 옷을 샀다며 가져가라고 전화를 주셨다.  딸아이 유학 준비 분주해서 잊고 지냈던 돌아가신 내 엄마. ‘엄마’가 옆에 없다는 현실을 깨달으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 자체만으로 내게 커다란 산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 목소리가 오늘따라 이 먼 땅에서 생생해진다. 딸아이가 커갈수록 내 엄마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더 짙어지는 건 왜일까.


왜 나는 엄마에게 그 말을 못 했을까. 아이는 틈만 나면 하는 말을 나는 왜 하지 못했을까?

지금이라도 어딘가에서 들어주실까? 딸아이가 피팅룸에서 나오길 기다리며 나는 혼자 말했다.

“엄마, 고마워요."


                       여행노트에서 꺼낸 추억 이야기 7.

                          -2018년 열여섯 살이던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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