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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Apr 29. 2022

안 보인다고 없는 건 아니야

이 글은 2022년 4월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 정부 정신건강 정책제안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칼럼으로 다듬은 것이다.               


의학기자가 되고 난 이후 처음 관심을 기울인 것이 정신건강이었다. 그러니 지금도 이 분야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신건강 분야는 알면 알수록 복잡하다. 다층적이다. 정신장애인의 인권 개선과 사회적 편견 해소도 중요하고, 정부 차원의 예산 증원 등 더 많은 관심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정신장애인 사안은 매번 ‘사건’이 터져야만 후속 대책이나 제도 개선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나는 항상 이 부분이 아쉬웠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정신건강이 얼마나 중요성한지를 전 국민이 절감하게 된 계기였다. 정신건강에 문제를 겪는 층이 일부 소수가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유행 초기 확진자에게 쏟아진 엄청난 비난, 다들 기억이 날 것이다. 나는 감염자의 불안, 우울, 트라우마에 대해 유행 초기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기사도 여럿 쓰고 여러 토론회에서도 틈만 나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렸다. 계기가 있었다. 확진자 동선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 때문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그냥 죽으세요


확진자에게 그냥 죽으라는 말. 그 댓글에는 가장 많은 ‘좋아요’가 달렸다. 치명적인 감염병에 걸리는 것 자체도 괴롭지만, 감염 사실이 확인되는 즉시 죽일 놈이 되고마는 사회적 분위기. 그 숨막히는 상황에서 나도 그렇도 많은 사람들은 히스테리에 가까운 공포를 경험했을 것이다. 정부는 ‘심리방역’이란 해법을 내놨다. 


그런데 곧이어 또 다른 충격파가 폭발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온 곳이 정신병원이었던 것이다. 소위 ‘청도대남병원 사건’이 발생하자 정신건강 분야는 난리가 났다. 정신의료기관이 그토록 열악했었는지 사람들도 그제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정신건강 분야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입원 환경 변화, 치료시기에 따른 수가체계변화, 응급대응 등이 추진됐다. 보건복지부는 연구도 여러 건 진행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 안에는 정신병원 대응반이 만들어져 정신장애인 확진자 관리를 폈다. 이것은 확진된 정신장애인의 사망을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들을 위한 음압병동이 개소하기도 했다. 


자체만 놓고 보면 참 잘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앞에 쓴 것처럼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져야만 움직이는 시스템은 여전했다. 최근 몇 년 만 봐도 그렇다. 2018년 고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 2019년 진주 방화사건, 2020년 대남병원 발생 이후에야 겨우 ‘모기 뒷다리’ 만큼의 변화가 이뤄졌다. 사후약방문의 악순환이다.

 

20대 대선 중에 여러 정신건강 공약이 쏟아져 나왔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에는 ‘정신건강 복지서비스의 확대 강화’가 포함됐는데, 개략적인 내용은 이랬다. 


“직접 또는 디지털 기술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행하겠다”, “24시간 정신응급대응팀을 운영하겠다”, “극단적 선택 시도자와 가족에 대한 정보시스템 구축하겠다” 등. 


새 정부 출범 이후 이런 공약이 정책으로 어떻게 녹아들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사실 이것만으론 부족해 보인다. 정권 차원의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사실 정책의 연속성과 확대가 가능하려면 보건복지부란 단일 부처의 노력만으론 되지 않는다. 정권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충원된 인력과 예산 증액 등의 형태로 말이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정신건강 분야가 포함될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솔직히 회의적이다. 포함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아니, 희박하다고 봐야한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정신건강 분야는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크다. 정신건강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그렇게 급하지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정신건강 말고도 시급한 현안이 많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현대 정신건강은 전통적인 신경증 및 정신증 질환 말고도 제3의 멘탈헬스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원인은 다양하다. 신종 감염병, 인종, 성별, 세대, 직장 내 갑질, 성소수자 문제 등 복잡다단한 사회변화의 그늘은 결국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후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태까지 그래왔다. 


정신건강은 극소수만의 사정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문제다. 이걸 새 정부의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제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는 행태는 이제 정말 그만할 때다.  


새 정부가 ‘정신건강 국가책임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정신의학계를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제안 역시 궁극적으로 정부 차원의 정신건강 분야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요구일 것이다. 


묻고 싶다. 새 정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건강 분야를 보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가. 새 대통령은 이 질문의 답을 임기 내에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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