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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11. 2020

공권력이 멋대로
정신병력을 공개하면 안되는 이유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에게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는 ‘경찰의 사건관계자 정신질환정보 임의 공개에 대한 의견표명’을 결정했는데요. 


물론 인권위의 의견표명이 법적 효력을 갖지는 않습니다만, 공권력이 피의자 등 사건관계자에 대한 정신 병력을 당사자와 아무런 논의 없이 공개한 것이 매우 문제가 있고 재발을 방지하라는 강한 권고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공권력과 언론이 정신장애인 전체를 향한 혐오와 편견을 강화시키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강하게 목소리를 낸 것이니까요. 


원래 핵심만 추려서 전할까 했지만, 내용이 구구절절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어 브런치 독자들께 결정문 전문을 소개해 드립니다. 사건명은 이니셜로 처리했습니다.      





주 문

     
경찰청장에게, 개인의 민감정보에 해당하는 정신 병력이 사건관계자 동의 없이 언론에 유출하지 않도록 하되, 공공의 이익 등을 이유로 부득이 공개해야 하는 경우 내부 심의를 거치는 등 관련 절차를 마련하기 바란다는 의견을 표명합니다.     


Ⅰ. 의견표명 배경


경찰이 언론 브리핑 시 사건관계자의 정신질환 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대중에게 임의로 공개하여 당사자의 사생활을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정신질환이 범죄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부정적 고정관념과 편견이 강화되었다는 취지의 진정이 2020. 6. 30.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되었다.


이 진정에 포함된 3건의 언론기사를 중심으로 피진정인 및 참고인 조사를 실시한 결과, 2020년 ㅊ사건 언론 브리핑 과정에서 사건관계자의 정신병력 정보를 인지한 기자의 확인 질문에 경찰이 신중하지 못하게 답변하여 참석한 모든 기자들에게 사건관계자의 정신병력 존재를 공개한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한 진정에서 피해자의 신원 및 권리구제 의사가 파악되지 않아 해당 진정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7호에 따라 각하되었다.


진정은 각하하였지만 경찰의 개인민감정보 임의 공개에 대한 재발방지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판단되어,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9조 제1호 및 제25조 제1항에 따라 의견표명을 검토하였다.     


Ⅱ. 판단 및 참고 기준


이 의견표명은 「헌법」 제10조 및 제17조, 제21조, 제37조 제2항,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 및 제23조, 「형사소송법」 제198조 제2항, 「(경찰청) 경찰수사사건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제4조, 제5조, 제10조,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4항 등을 판단 및 참고 기준으로 하였다.    

 

Ⅲ. 판 단     


1. 관련 기본권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이는 타인에게 사생활을 공개 당하지 않을 권리와 사생활의 자유로운 형성 및 전개를 타인으로부터 방해받지 않을 권리, 자신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의미한다.


「헌법」 제10조에서 유래하는 인격권은 자신과 분리할 수 없는 인격적 이익의 향유를 내용으로 하는 권리이며, 「헌법」 제10조 및 제17조에서 유래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그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다 (대법원 2017. 4. 7. 선고 2016도13263 판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사생활과 관련한 사항의 공개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공표된 사항이 일반인의 감수성을 기준으로 하여 그 개인의 입장에 섰을 때 공개되지 않을 것에 해당하고, 아울러 일반인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서 그것이 공개됨으로써 그 개인이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가질 사항 등에 해당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6. 12. 22. 선고 2006다 15922판결 등).


건강에 관한 정보는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내밀한 정보로서 「개인정보 보호법」 제23조에 따른 ‘민감정보’에 해당하며, 현재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과거에 정신질환을 앓았던 사실의 공개는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과 사회 통념을 감안할 때 타인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정보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은바, 본인이 승낙한 범위를 벗어나 국가에 의해 임의적으로 자신의 정신 병력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상황은 불쾌감 그 이상의 감정을 불러오기에 충분하고, 그러한 이유에서 이 사안은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나아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와 관련된다 할 것이다.


또한 언론 보도가 가지는 광범위하고도 신속한 전파력을 감안하면 사후 정정보도나 번복보도 등의 조치에 의한 피해구제만으로는 사실상 충분한 명예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어서 보도내용의 진실 여하를 불문하고 그러한 보도 자체만으로도 피의자나 피해자 또는 그 주변 인물들이 입게 되는 피해의 심각성을 아울러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분명한바 (대법원 1999. 1. 26. 선고97다10215, 10222 판결 등), 이는 개인의 인격권 및 명예가 침해되는 문제와도 관련된다.     


2. 판단

모든 국민은 「헌법」 제21조에 따라 알 권리가 있고, 여기에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제반 범죄에 대한 알 권리도 포함된다(대법원 1999. 1. 26. 선고97다10215, 10222 판결).


그런데 「헌법」 제21조 제4항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알 권리가 제한된다고 명시하고 있고, 대법원은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한 사항의 공개가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해당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그 표현내용·방법 등이 부당한 것이 아닌 경우에만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하였으므로 (대법원 1996. 4. 12. 선고 94도3309 판결 등), 사건관계자의 정신병력 공개가 위법하지 않으려면 그 목적과 수단이 정당하고 사회상규에 위배됨이 없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경찰청) 경찰수사사건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제4조(수사사건등의 공개금지) 및 제5조(예외적인 공개)에서는 사건관계자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내용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사 중인 사건은 그 내용을 공표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공개할 수 없도록 하되, 신속히 범인을 검거해야 하거나, 유사 범죄 예방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로 인한 권익침해를 회복시켜야 하는 경우, 공공의 안전을 위해 그 대응조치 등에 관한 내용을 국민들에게 즉시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같은 규칙 제10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개인의 신상 및 사생활에 관한 내용”은 공개가 제한된다.


특히, 형이 확정되지 않은 형사사건의 피의자 입장에서 볼 때,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특정 정보, 즉 정신 병력에 대한 언론 공개는 당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및 인격에 대한 평가 훼손, 대중적인 비난으로 이어져 형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가족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가족구성원의 정신 병력은 주변에 알리고 싶지 않은 정보에 해당하거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고통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므로 더욱 두텁게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위 내용을 ㅊ사건에 비추어볼 때 피의자는 이미 신병이 확보된 상태여서 신속한 범인 검거나 공공 안전의 목적과는 무관하고, 피의자의 정신 병력을 공개한다고 하여 유사 범죄가 예방되거나 당사자의 권익이 보호될 가능성도 크지 않으므로, 정신질환 여부를 언론에 공개할 이유는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건관계자의 동의 없는 정신 병력의 임의 공개는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 보호 및 국민의 알 권리간의 이익형량에서도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ㅊ사건 관련하여 피진정인은 “「개인정보 보호법」의 보호법익이 되는 개인정보는 개인의 동일성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일체의 정보로 보아야 하는데, 정신질환 유무로는 개인이 식별되지 않으므로 「개인정보 보호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고, 사건관계자의 정신질환 정보는 이미 언론에 의해 공개된 것으로서, 수사기관은 사실에 대한 확인만 해 준 것이므로 수사기관이 별도 사건관계자의 정보를 제공한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ㅊ사건 및 ㅈ방화사건의 피의자와 같이 언론 및 대중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거주지를 비롯한 개인신상정보가 대부분 노출된 상황에서 추가로 결합하는 정보는 이미 식별된 개인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바, 이미 상당수의 정보가 노출되어 개인 식별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그 외 부수적인 정보 역시 보호법익의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경찰청) 경찰수사사건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제10조 제2항은 공개되는 정보의 조합을 통해 사건관계자의 신상 및 사생활에 관한 내용 등이 특정되지 않도록 유의할 것을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보호대상이 되는 개인정보는 (중략) 반드시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정보에 국한되지 아니하며, 공적 생활에서 형성되었거나 이미 공개된 개인정보까지 포함한다(대법원 2016. 8. 17. 선고 2014다235080 판결)”라고 하였다. 


이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보뿐만 아니라 이미 공개된 정보까지도 보호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하였으므로, 사건관계자의 정신 병력이 언론에 이미 공개되었다고 하여 경찰의 주의 의무가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나아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4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정신질환자 차별 및 편견 해소를 위한 적극적 조치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바, 경찰은 개인의료정보의 부당한 침해 또는 그러한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편견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경찰 개개인이 기자의 질문에 대해 사사로이 답변하거나 언론 브리핑 자료에 포함시키거나 언론브리핑 시 기자들이 인지한 정보의 사실 확인 질의에 대해 답변하는 등을 통해 정신질환자의 치료전력을 본인 동의 없이 제공 및 유출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부득이한 경우를 대비하여 (법무부)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와 유사한 절차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Ⅳ. 결 론


이상과 같은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9조 제1호 및 제25조 제1항에 따라 주문(경찰청장에게, 개인의 민감정보에 해당하는 정신 병력이 사건관계자 동의 없이 언론에 유출하지 않도록 하되, 공공의 이익 등을 이유로 부득이 공개해야 하는 경우 내부 심의를 거치는 등 관련 절차를 마련하기 바란다는 의견을 표명합니다)과 같이 결정한다.     


2020. 9. 21.

위원장 정문자

위원 임성택

위원 서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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