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Aug 11. 2022

간호사가 죽었다, 부상자를 돌보고 있었다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1부➆


의료요원 1명이 이스라엘군에 피살됐다.
사망자의 나이는 이십대로 알려졌다     


2018년 6월 국내 언론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소식이 전해졌다. 내용은 위 처럼 짧았다.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않은 이 사건은,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희생자는 라잔 알 나자르 간호사였다. ‘팔레스타인 의료구호협회(Palestinian Medical Relif Society, PMRS)’에서 의료자원봉사를 하던 고인은 가자지구에서 매주 금요일 열리는 집회에 참가해 부상당한 시위대를 돌보다 이스라엘 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제네바 협약은 ‘전투의 범위 밖에 있는 자와 전투행위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자는 보호를 받아야 하고 존중되어야 하며, 인도적인 대우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고인이 가슴에 총을 맞아 사망한 것을 두고 군이 조준 사격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이스라엘 군은 그녀가 생전 ‘전선에서의 인간방패 역할을 한다’고 말한 인터뷰 영상을 편집, 하마스의 일원으로 반이스라엘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인도주의 활동을 펴다 피살된 희생자를 모독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사진=TRT World

나는 2019년 8월 19일 오후 3시(현지시각) 라잔이 몸 담았던 ‘팔레스타인 의료구호협회’를 찾아갔다. 서안지구 라말라에 위치한 PMRS는 5층 규모의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센터 곳곳에는 아직도 라잔을 추모하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모하메드 아부시 총괄책임은 “희생된 의료인이 더 있다”고 했다. 최근에만 인도주의 구호 활동 중 사망한 소속 의료인은 두 명.  서안지구 베들레헴에서도 피살된 의료인이 있었다는 증언이었다.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만난 다수의 관계자들은 이곳에서 제네바 협약, 국제인권법, 세계인권선언 등이 무시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과거 가자지구에 대한 유엔특별조사위원회는 이스라엘에 국제인권법 이행을 권고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사실상 무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인권단체 ‘알 하크(AL-HAQ)’의 샤완 자브린 대표는 분통을 터뜨렸다.       


“국제사회에서 가장 많이 보고된 것이 바로 팔레스타인의 인권유린 사례입니다. 국제인권법의 이행여부는 국제사회의 여지에 달려있는데, 유엔 등은 이행의지가 없죠.”       


그는 내게 반문했다.      


“한국은 이스라엘의 인권유린에 대해 왜 침묵합니까?”     


난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치료 받을 권리

      

팔레스타인 의료구호협회(Palestinian Medical Relif Society, PMRS)는 현지 의사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인도주의 의료지원단체다. 단체는 팔레스타인의 여성·아동 보건의료, 지역사회에서의 장애인 의료접근 시스템 구축,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과 심장질환 등 중증질환의 치료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희생된 의료인들도 의료가 미치지 못한 곳에서 구호활동을 펴다 목숨을 잃는 일도 많다. 모하메드 총괄이 말했다.     

 

“의료인을 비롯해 다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일상적 위협에 시달립니다. 우린 의료서비스의 차별적 접근을 해소하자는 미션을 갖고 활동하고 있는 것이죠.”     
사진=TRT World


당면한 문제는 단절된 의료접근을 어떻게 높이느냐다. 가자지구를 비롯해 서안지구에서 예루살렘의 의료기관에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복잡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팔레스타인 각 도시에서 병원에 이르는 길은 체크포인트(검문소)에 의해 접근이 지연되거나 불허되기 일쑤다. 가까스로 예루살렘 병원에 가더라도 진료를 받으려면 까다로운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돈도 더 비싸다.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인보다 치료비의 3배를 더 내야 한다.      


“체크포인트에서 길이 막혀 출산을 하거나 총격으로 사망하는 등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의료접근권 제한에 대해 국제인권단체 알 하크의 샤완 대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고 있는데, 예산 확보가 어려워 변변한 의료시설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빈혈과 영양실조, 백혈병 등은 팔레스타인 여성·아동·노인 등 취약계층의 사망률을 높이는 주된 원인이다. 지역사회에서 풍토병 등 각종 감염병도 목숨을 위협한다. 모하메드 총괄이 설명했다.   

    

“소득 격차에 따른 사망률 차이가 큽니다. 팔레스타인 절반 가량(45%)이 극빈층인데, 특정 지역에서는 아동의 백혈병 발병률이 유의미하게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진=TRT World


이스라엘 정부의 수자원 강탈로 인한 상시적 물 부족 현상도 여러 질환 발생률을 높이고 있었다. 모하메드 총괄은 “물 부족 현상으로 인해 설사, 피부병, 탈모, 담석 등이 발병률이 높다”고 말해줬다.

      

팔레스타인의 기본 의료시스템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팔레스타인의 보건의료 실태는 자치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으로 가늠할 수 있다. 정부 건강보험의 가입률은 50% 가량에 불과하다. 보장률은 가입기간 5년 50%, 10년에 80% 등 보험 가입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4인 가구 기준 일 년 평균 보험료는 300달러(한화 35만원)이지만, 경제 사정이 녹록치 않은 탓에 일반인들은 보험 가입을 주저한다. 기간에 따른 보장률 차이는 환자의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모하메드 총괄은 “건강보험제도는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서 선호한다”고 했다.         


라말라내 팔레스타인여성위원회 소속 마날 활동가는 정부 보험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정부 보험은 경제 부담이 커 일반인은 잘 가입하지 않아요. 부정부패가 많고, 여성과 아이들은 제때 적절하고 동등한 치료를 받기 어렵거든요.”     


여성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방해가 되는 것은 치료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사회의 부인과 검진 현황에 대해 모하메드 총괄은 “어렵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팔레스타인 여성은 홀로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인근 병원까지 가려면 상당한 거리를 가야하죠. 가사로 바빠 검진을 위한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여성의 부인과 질환 예방 관리는 잘 안되고 있어요.”     


사진=김양균의 코드블랙


상황이 이렇다보니 PMRS는 이동진료소를 검진을 지원 중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진료소도 운영하고 있지만, 서안지구 전역의 의료공백을 메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하메드 총괄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여성과 아동처럼 의료접근이 어려운 이들을 돌볼
인프라 구축이 너무 급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스 팔레스타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