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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토리

증언

프롤로그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나는 2017년 당시 전남대병원이 발간한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시민군을 헌신적으로 돌본 의료인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전하고 싶어 병원의 허락 하에 책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독자들에게 전하는 연재를 시작했다. 후원금도 모아 전액 병원에 기부하였다. 저작권을 고려해 지금까지 브런치 채널에는 이 연재를 전하지 않았지만, 이제 당시 글을 다듬어 <증언>이란 연재글로 이 곳에 전한다. 보건의료의 눈으로 인권 유린과 인도주의 재앙을 조명하려는 본 채널의 운영 취지와 부합하다고 판단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18일 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서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있는 역사라고 했다. 또 말했다. 오월 정신은 지금도 자유와 인권을 위협하는 일체의 불법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할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다고. 윤 대통령은 오월 정신이 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세계 속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은 진상규명은 언급하지 않았다. 마흔 두 해가 지나도록 5·18 진실에의 외면과 왜곡, 폄훼 시도는 이어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나는 광주사태 치유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다. 수사와 재판에서도 내가 계엄군 투입과 현장 작전지휘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전두환의 유체이탈 화법이나 “북한 특수군이 5·18을 주도했으며 당시 광주에 있던 478명이 북한 핵심층 인물”이라는 극우단체의 주장이 여전히 득세하는 이유는 여전히 5·18 진상규명이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18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MZ세대에게 전두환이나 5·18은 낯선 ‘개념’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하나다. 80년대 말 한 시사주간지 1면 기사 제목, ‘남편 쏜 자들 떵떵거리고 산다’라는 피맺힌 호소. 질문은 계속된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적 비극은 현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보수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5·18에 대한 조롱섞인 시선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잘못된 정보는 대개 사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뒤섞여있다. 이는 진실보다 자극적인 탓에 쉽게 전파된다. 문제는 이 지점부터 시작된다. 나처럼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은 대체로 현대사에 밝지 않다. 이러한 오염은 너무 쉽게 전염된다. 그 과정에서 비극은 조롱으로, 진실은 거짓으로, 거짓은 진실로 뒤바뀐다.


집단살해(集團殺害, genocide)는 ‘고의성’을 전제로 한다. 유엔(UN)은 집단살해를 고의적이거나 제도적으로 민족·종족·인종·종교 집단의 일부 혹은 전체를 파괴하는 범죄로 규정한다. 5·18 당시 계엄군이 광주와 광주 시민을 향한 집요하고도 잔인한 린치와 살해는 제노사이드와 다름없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써내려 갈 연재글은 모두 전남대병원의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에 바탕을 둔다. ‘비교적’ 5·18에 낯섦을 느끼는 이들에게 계엄군의 총탄이 빗발쳐 목숨을 위협받으며 시민을 돌본 의료진의 이야기는 감동과 슬픔을 동시에 전달할 것이다.


5·18의 진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마지 않는다. 또한 의료인의 참된 자세가 무엇인지를 전하는 계기가 된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마지막은 고(故) 조영국 1980년 당시 전남대병원 병원장이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에 적은 글귀로 대신한다.


“5·18 당시 의사들이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후에 많은 이야기를 하고 했으나, 의사 본분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37년만에 증언


2017년 5월 전남대병원은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을 발간했다. 발간 작업은 2016년 8월부터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의 눈을 피해 조용히 진행된 발간 과정은 고통스럽고 지난했다.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조차 거부했던 정권 하에서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으리라 예상했다.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은 5·18 당시에 대한 의료인 증언집으로, 끝까지 한번에 읽기 힘들 정도로 가슴 아픈 내용이 담겨있다. 의료진의 증언은 생생하고 충격적이었다. 나는 2017년 당시 윤택림 전남대병원장을 만나 발간 배경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의료인들의 증언이 37년 만에 나온 것은 그간의 세월이 어떠했겠는가.”


사진=전남대병원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은 어떻게 발간하게 된 겁니까?”


“전남대병원은 숱한 역사의 질곡을 거쳐 왔습니다. 이번 책 발간은 그동안 채우지 못한 역사의 한 조각을 맞추게 된 것으로 평가합니다. 5·18 당시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선배 의료인들의 기록을 더는 미룰 수 없었습니다. 오랜 숙원이었습니. 당시 의료진들은 37년이 지나면서 정년을 맞아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리의 시간이 촉박했고 그들의 기억이 소중한 역사적 자료인 만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증언집은 어떤 과정을 통해 발간됐습니까?”


“2016년 8월부터 내·외부 자료수집과 증언 자료 검토를 시작했습니다. 6개월 동안 자료를 수집했고 2017년 2월 발간 및 감수위원 등 위원회를 구성, 교정 및 감수를 거쳐 5월 발행하게 됐습니다. 자료 수집은 증언자들이 직접 작성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정리하고 이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기존 일부 책자와 보고서 제출 내용을 발췌하는 방법도 겸해 이뤄졌지요.”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었습니다. 의료진들에게 당시의 기억은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깊은 상처로 남아있었지요.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일부 증언자는 그 날을 회상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여러 경험을 했던 증언자는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해 끝내 증언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5·18 바로잡기와 병원 역사 정리를 위해 아픔을 감내하며 증언에 임한 의료진들에게 감사와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까?”


“집단발포로 응급실은 총상환자들로 넘쳤으며, 쉴 새 없는 응급수술이 진행됐던 긴박한 상황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980년 5월 21일과 27일 이틀 동안 병원을 향한 무차별 사격이 진행되는 동안 의료진들이 느낀 두려움, 환자들의 참혹한 모습을 본 계엄군 진압에 대한 분노, 수술을 기다리다 안타깝게 죽음에 이른 부상자에 대한 좌절감 등 극한 상황에서 의료진이 맞닥뜨린 감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에는 의사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의사도 사람인데, 왜 가족들의 생사가 걱정되지 않았겠습니까? 개인의 감정보다 당장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에 집중한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겁니다. 간호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병원에 오는 행위 자체가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당시 간호부장은 간호사들에게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병원에서 치료에 전념했지요. 얼마나 치열하고 간절한 심정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의료진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그간의 자료집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분쟁지역에서 의료인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환자라면 누구나 돌봅니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의료진이 직접 경험한 증언은 객관적 사실과 감동을 전달합니다. 37년 만에 의료진의 증언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그동안의 세월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5·18 진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라 판단합니다.”


“증언집의 현대사적 의의와 가치를 평가해주십시오.”


“올해(2017년)는 여느 해보다 5·18이 뜨거웠습니다. 발포명령자, 헬기사격 여부 등 진실 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는가 하면, 전두환 회고록 파문 등 사실을 왜곡·펨훼하는 일도 집중적으로 발생했지요. 긴 세월이 흘렀지만 5·18은 끝나지 않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은 5·18 역사바로잡기를 위한 소중한 자료로써 국내의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당시 부상자를 치료했던 많은 병원들 중 단일병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발행하는 5·18의료 활동집이라는 의미도 지닙니다.”


“그럼에도 5·18 폄훼 주장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전두환 회고록에서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이번 증언집을 통해 거짓이라는 게 다시 한번 입증됐습니다. 증언집에는 참혹한 모습의 환자들에 대한 증언과 병원에 대한 무차별 사격 등의 목격담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은 한국 현대사 재조명에 소중한 자료이자 이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 진행된 작업입니다. 부담이 있진 않았습니까?”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때문에 정확하게 만드려고 했습니다. 결코 오류가 있어선 안됐습니다. 그래서 당시 의료진의 증언은 고증과 감수를 거쳐 사실 관계를 정밀하게 살려냈습니다. 기억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오랜 세월 5·18 폄훼세력이 득세하면서 참아온 시절이 자그마치 37년입니다. 그동안 일부 보고서가 있었지만 제대로 반영이 안되었지요. 현재의 자료와도 상이하고 축소하려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습니다.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건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아서 출간을 반대하는 세력이 끼어들까봐 책 작업은 조용히 진행됐습니다.”


①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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