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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토리

걔한테 왜 그랬어요?

루시와 릴리


책상을 사이에 두고 루시가 묻고 릴리가 대답했다. 루시는 릴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하는 것에 좀 놀라고 있었다. 놀라움의 감정에는 경계심도 있었는데, 릴리는 그런 루시가 감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루시는 릴리를 위로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녀는 동정이 아닌 위로를 어떻게 건네야 할지 알지 못했다.

릴리


“그때 당신이 겪은 일을 말해줄래요?”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었어요. 말이 어눌했고, 어린애 같은 퇴행 행동을 했었으니까요. 의사는 발음이 어눌하니까 말을 똑바로 하고, 어린애처럼 굴지 말라고 했지만, 그의 지시를 따르지 못했어요.”


“그가 당신을 어떻게 대했죠?”


“말을 똑바로 하라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어요. 제가 나아지지 않으니까 때리기 시작했어요. 허벅지를 때렸어요.”


“얼마나 계속됐나요?”


“한 시간 정도 계속 허벅지를 맞았어요.”


“주먹으로 때렸나요?”


“손바닥으로요. 세게 때렸어요. 퍽퍽 소리가 나게 한 시간 정도.”


“그가 지시를 당신이 따르지 못하면 징벌로 때리는 식이었나요?”


“전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그는 제대로 할 때까지 맞아야 한다면서 계속 때렸어요. 한 시간 정도를요. 전 한 시간을 빌었어요.”


“살려 달라고 말했나요?”


“살려달라고 했어요. 제 허벅지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어요. 그리고 며칠 뒤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다른 부위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나왔어요.”


“정신질환이 아니라 타부위에 문제가 있어서 이상 증세를 보인 건가요?”


“네. 정신과 문제가 아니었고 그게 검사 결과로 확인이 된 거죠. 그런데 제 허벅지에 멍이 들어 있잖아요.”


“그 일이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었군요. 항의를 했나요?”


“하지 않았어요.”


“환자가 항의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나요?


“네, 병원이 힘이 셌으니까 항의는 못했어요.”


목격자


“그 일 이후에 호출이 있었다고요?”

“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 환자의 일을 알고 있었나요?”


“모두 알고 있었어요. 전부를 호출해 모인 자리에서 그가 얘길 꺼냈어요. 어떤 환자가 몸에 멍이 들었다고 하던데 혹시 구타가 있었느냐고 험악한 분위기에서 묻기 시작했어요.”

“한 명씩 물었나요?”


“네, 혹시 구타 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기 시작했죠. 전 무서워서 듣지 못했다고 했어요. 모른다고 대답하면, ‘그렇지. 모르지? 그런 일은 없었지?’라고 되물었어요. 그러면 ‘네,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유도했습니다.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했어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던 분위기였군요.”


“그렇죠. 저도 그런 적은 없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폐쇄병동에서 있었던 일은 외부로 드러나기 어려워요. 환자가 증언을 해도 신빙성을 의심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부만 단속하면 되는 거였어요.”


“이후 어떤 문제제기는 없었나요?”


“환자에게 죄책감을 느꼈어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게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삼으면 그 사람만 바보가 되는 분위기였어요. 전 그럴 생각을 못했습니다. 찍히면 해고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는 위세가 셌나요?”

“위세가 셌습니다. 그의 뜻을 거스르면 중간에 찍혀 나갈 수 있었어요. 그러면 더 이상 의료인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어요.”

“잘리면 이직도 불가능했나요?”


“네. 그래서 그가 대답을 해야만 했고 이야기할 생각도 못했어요. 너무 충격적이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지 한탄하는 겁니다.”


“그 일을 떠올리면 어떤 감정이 드나요?”


“화가 많이 납니다. 정말 그건 아니었어요. 정의롭지 못한 일이었으니까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요.”


“불이익이 두렵진 않나요?


“목격한 사람은 몇 명이지만 대다수가 이 일을 알고 있어요. 신이 있다면 그는 언젠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후련하진 않습니다. 아직도 두근거립니다.”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기관


“그 일을 알고 있었나요?”

“처음 듣는 이야깁니다. 제 관할도 아니고요.”


“그럼 누구에게 물어야하죠?”


“위원회요.”


“이 일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입장 없습니다.”


위원회


“그 일에 대해 어떤 조치가 있습니까?”


“저도 그 사람이 싫어요. 그렇지만 증거는 없어요. 그러니 조치를 취하기도 어렵고요. 왜 과거 일을 들추는 거죠?”


기관의 변호사

“이런 일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의사가 환자를 폭행했다는 사건이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충격적이네요.”

“법적인 조치가 적용될 수 있나요?”

“그 일이 사실이라면 폭행죄가 성립합니다. 공소시효를 생각하면 처벌은 어렵겠죠.”


가해자


“그 일이 사실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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