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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30. 2022

분쟁 때문에 환자가 너무 많다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2부 ➇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보건의료체계 관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는 지난 1994년 오슬로 협정 이후부터이다. 서안지구의 의료서비스는 팔레스타인 보건부(Palestinian Ministry of Health, PMOH)를 비롯해 각종 국제구호단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사업 기구(UNRWA), 민간 분야가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플로리다 대학의 야라 아씨(Yara M. Asi) 교수는 팔레스타인이 의료 불균형 상태에 있다고 지적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제공하는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낮아 서민들의 자부담 비율이 높고, 의료 소비자의 지리적 위치 및 재정에 따라 보건의료 접근권이 불균등하다는 것이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이스라엘의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3.3명, 간호사 수는 5.1명이었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센터(Palestinian Central Bureau of Statistics, PCBS)는 2019년 기준 서안지구의 의료인력 현황이 ▲의사 8천386명 ▲치과의사 3천643명 ▲간호사 9천751명 ▲약사 5천59명 등이라고 보고했다. 인구 1천명 기준으로 보면, 의사 수가 3.25명, 간호사 수는 3.61명인데, OECD 회원국 평균이 3.58명임을 감안할 때 수치만 놓고 보면 의료인력의 수가 적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수치의 신빙성을 떠나 앞선 통계가 팔레스타인인의 건강권 보장의 척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서안지구에서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나블루스 북쪽에 위치한 발라타 난민 캠프(Balata camp)의 의료 실상은 통계와 현실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by 코드블랙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사업 기구(UNRWA)에 따르면, 발라타 난민 캠프는 서안지구 내 가장 큰 규모의 난민캠프로 난민의 수만 3만 명이 넘는다. 현지 난민을 통해 확인한 발라타 캠프 내 클리닉는 매우 열악했다. 클리닉에는 4명의 의사와 12명의 간호사가 근무하는데, 의사 한 명이 하루에 돌보는 환자의 수는 250여명이었다.      


진료 시간은 오전 8시에서 오후 2시까지로, 환자 수는 많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의사 한 명이 진료실 내에 각기 다른 질환의 환자 4~5명을 앉혀놓고 진료를 실시하고 있었다. 캠프 내 환자들은 클리닉이 끝나면 민간 병원에 갈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난민들이 그럴 경제적 여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환자들의 상태도 좋지 않아, 일차의료로 해결할 수준이 아닌 경우도 많다. 클리닉을 찾아온 한 유방암 환자는 고혈압과 당뇨를 함께 갖고 있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또 다른 신장암 환자는 당뇨도 함께 앓고 있었는데 환자의 빈곤한 경제 사정은 질환을 더욱 악화시켰고 정신건강 문제까지 발생시켰다. 내게 클리닉의 사정을 일러준 현지 난민은 이렇게 말했다.      


“캠프 내 클리닉에는 발라타 난민들뿐만 아니라 인근 난민 캠프 거주자까지 약 5만여 명의 환자들이 몰려오고 있죠. 클리닉을 찾아오는 이유는 클리닉의 진료 및 치료, 의약품을 무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죠.”     


유엔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난민 규모는 전체 인구 315만4천418명의 26.3%이나 된다. 나는 난민 캠프의 클리닉 관계자와 대화를 나눠보려 했지만, 그 시간 동안 환자들의 볼 피해를 고려해 만남을 취소했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센터(PCBS)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서안지구 내 의료기관은 국립병원 15개소와 민간 및 대학병원 38개소 등 총 53개소다. 병상 수는 3천950개로, 인구 1천 명당 병상 수는 1.3개로 나타났다. OECD 국가 평균 인구 1천 명당 4.4병상인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by 코드블랙


병원 문턱을 높이는 요인은 부족한 병상 외에도 더 있다. 현지 의료인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제공하는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률은 환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유엔에 따르면, 서안지구의 GDP는 4천197달러(약 600만원)이고, 상대적 빈곤율은 13.9%다. 남성 실업률은 12.4%이며, 여성 은 28.9%다. 특히 청년층(15~24세)의 실업률은 27.8%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나블루스에 위치한 안나자(An-Najah) 대학병원의 고위 관계자는 “정부(팔레스타인 자치정부, PA)는 암과 신장투석 비용을 감당하고 있으며, 2만 명의 공무원과 그 가족은 국가 의료보험의 수혜자”라며 “국가건강보험에 가입하면 질환에 대한 100%의 보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역 의료시설의 설명은 좀 달랐다.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Health Workers Community) 나블루스 지부의 나세르 나제(61) 총괄은 “공중보건 상황이 좋지 않다”며 “환자 수가 너무 많고 정부에서 커버하는 건강보험 환자가 적어 건강보험 적용 못 받는 사람은 의료비 부담을 너무 많이 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현지시각) 나블루스 남서쪽으로 7킬로미터 떨어진 부린마을(Burin village)에서 만난 갓산 나자르(32) 현지 활동가도 “대학병원은 비싸서 공무원들만 간다”며 “나블루스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갈수록 환자가 많아져 더 많은 병원이 필요하지만, 병원이 있어도 갈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농부인 갓산의 한 달 수입은 2000셰켈~3000세켈(약 81만원~122만원)이다. 그는 이 돈으로 가족 5명의 생계를 꾸린다.       


이보다 낙후된 서안지구 지역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마사퍼 야타의 앳투와니 마을의 경우 한 달 수입은 부린마을의 절반에 불과했다. 현지 주민인 하페즈 후레이니(52)는 “과거 300마리 양이나 염소를 가진 사람이 지금은 30~40마리밖에 갖고 있지 못하다”며 “앳투와니의 가구당 월 소득은 최대 300달러(약 43만원)”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소규모 일차의료기관은 건강보험이 필요 없고 진료비가 대학병원보다 저렴해 미가입자들이 주로 찾아온다.      


by 코드블랙


안보 명목 이동제한 시설만 수백개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에 따르면, 올해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은 아동 26명을 비롯해 최소 105명이다. 이는 지난해보다 57% 가량 증가한 것이다. 팔레스타인인 외에도 ▲이스라엘 민간인 10명 ▲이스라엘 군인 4명 ▲외국인 3명 등이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달 들어서만 팔레스타인인 15명이 이스라엘군과의 총돌 과정에서 사망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6명의 어린이와 제닌(Jenin) 난민 캠프의 외과의사 압둘라 아부 알 틴 박사(Abdullah Abu Al Teen)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안지구 내 도시 나블루스(Nablus)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지난 9일과 11일(현지시각) 각각 동예루살렘과 나블루스 검문소에서 두 명의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인에게 총격 피살된 이후 이스라엘 방위군(IDF)는 용의자 수색을 위해 광범위한 이동 제한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이동 제한이 지속되자 OCHA는 18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이동 제한 증가에 우려하고 있으며 2명의 이스라엘 군인 사망 이후, 이스라엘군은 광범위한 이동 제한을 실시해 많은 사람들이 의료·교육·생계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블루스에서의 이동제한이 계속되자 하와라(Huwwara) 지역에서의 이스라엘 정착민 폭력의 심각성과 빈도가 증가했다고 우려했다. 루시아 엘미(Lucia Elmi)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의 말이다.      


“이스라엘 당국은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보호할 법적 책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취해진 조치가 팔레스타인인에게 (의료 접근 등의) 불균형적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단계적 이동 제한 조치 완화는 추가 인명 손실을 방지하고 민간인을 보호하며 필수 인도적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ò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2017년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이후 군이 팔레스타인 마을 폐쇄 등의 조치를 내리는 것에 대해 “집단 처벌(collective punishment)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이스라엘 당국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West Bank) 주요 도로에 설치한 이동 제한 시설들은 ▲검문소(checkpoint) 71개 ▲지역별 부분 검문소(partial checkpoint) 108개 ▲개방 철문(road gate) 78개 ▲폐쇄 철문(road gate) 76개 ▲방어벽(road block) 68개 ▲흙더미(earthmound) 86개 ▲흙벽(earthwall) 20개 ▲도랑(trench) 3개 ▲도로장벽(road barrier) 49개 ▲기타 34개 등 총 593개다.      


내가 머물렀던 나블루스(Nablus)의 경우, 이동 제한 시설은 ▲검문소 6개 ▲지역별 부분 검문소 1개 ▲개방 철문 4개 ▲방어벽 1개 ▲흙더미 9개 ▲흙벽 3개 ▲도로장벽 3개 등 총 27개가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과의 긴장 정도에 따라 해당 지역을 빠르게 폐쇄하거나 개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긴장 발생 시 차량이 더 자주 정차해 지연이 발생한다. 특히 동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도로에서는 더 엄격한 검문이 실시되고 특별 허가를 받은 팔레스타인 보행자만 통과가 가능하다. 내가 현지에 있는 동안 긴장이 높아지면서 검문은 더 강화되었다.        


by 코드블랙


2022년 10월 15일(현지시각) 나는 팔레스타인 행정수도 역할을 하는 라말라(Ramallah)에서 예루살렘행 버스를 타고 있었다. 버스가 동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검문소에 다다르자, 이스라엘 무장 경찰 두 명이 버스에 올라 검문을 실시했다. 버스 양 옆에는 무장한 군인 두 명이 더 있었다. 경찰들은 팔레스타인 탑승객 한 명의 특별 허가증을 문제 삼고 강압적인 질문을 이어가자 버스 안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그 사이 더 많은 경찰들이 버스를 에워쌌다. 결국 해당 탑승객은 버스에서 강제로 끌려 나갔다.


이스라엘 당국은 안보를 이유로 이러한 이동 제한 시설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지만, 이러한 이동 제한 시설은 앞선 OCHA의 우려처럼 의료 접근권 등 인도주의 위기를 초래했다. 헬스워커스커뮤니티(Health Workers Community) 나블루스 지부의 나세르 나제(61) 총괄은 서안지구의 의료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이곳은 분쟁과 사고로 환자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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