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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30. 2022

나블루스의 의사들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2부➆


  

2022년 10월 11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 올드시티(Nablus old city in West Bank) 내 전통시장 2층 초입에는 초록색과 검은색으로 도색된 철제 계단이 있었다. 계단 위에는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Health Workers Community) 나블루스 지부 간판이 있었다.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 나블루스 지부는 일차의료기관으로 NGO가 운영을 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건부(PMOH)와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블루스 지부 담당자인 나세르 나제(61)는 공중보건의였는데, 이스라엘에서도 치료하지 못한 환자를 그가 돌봐 다시 걷게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종종 PMOH와의 협업 중이란 말을 여러 번 강조하곤 했다. 지부 이전을 논의하고 있어 PMOH를 의식한 발언이었던 것 같았다.         

“운영 예산은 어떻게 마련하나요?”


“나블루스 지부는 1984년 나블루스의 빈곤층 의료서비스 지원을 위해 설립되었어요. 이곳은 분쟁과 사고로 환자가 많습니다. 전체 예산은… 저희도 지부이기 때문에 알지 못해요. 예산 마련은 사업(프로젝트)과 소액의 진료비 수입으로 이뤄지는데, 전체 예산 통제는 라말라(Ramallah) 본부에서 하고 있어요.”


“이곳에서는 어떤 진료와 치료가 이뤄지죠?”     


“여성 건강, 산전(임산부의 위험인자를 미리 발견하고 조기에 치료·예방하는 것), 임신, 모자보건(母子保健, 모성 및 영유아의 생명·건강 보호해 건강한 출산과 양육을 위한 일체의 의료행위), 정신건강 치료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임신·출산·부인병 치료가 많이 이뤄지죠. ‘원만한 성생활을 위한’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환자들이 내원하나요?”     


“16세 이상의 환자들이 내원하면 20개 항목의 문진에 따라 정신과 진료 여부까지 결정하게 됩니다. 환자 상황에 따라 정신과 여성과 통합진료를 연계해서 치료를 하고 있죠.”


by 코드블랙


“환자들은 어떤 질환이 빈번한가요?”     


“계절성 질환이 가장 많아요. 겨울에는 인플루엔자, 여름에는 설사와 위장염(gastroenteritis) 등으로 내원하는 환자들이 많아요. 특히 여성 환자들은 산과(Obstetrics, 임신·출산 진료과)와 부인과(Gynecology, 산과를 제외한 여성 질환 진료)를 비롯해 모자보건 및 정신건강 진료를 받기 위해 옵니다.”     


“한 달에 내원하는 환자 수는 얼마나 되죠?”     


“약 1000~1200명입니다. 소아과에서는 생후 1개월 태아부터 5살 아동까지 진료가 이뤄집니다. 각종 백신 접종과 성장·발달을 위한 치료가 이뤄지죠.”     


“의료진을 포함해 지부의 의료인력 규모는 어떻습니까, 여성 환자를 위한 여성 의료진도 있나요?”     


“한 명만 남자의사이고 나머지는 다 여성 의료진입니다. 여성의사 1명, 간호사 3명, 연구소(영양관련, 여성교육) 2명, 안내데스크에 1명이 있고요. 다른 한 명의 의사는 비상근으로 일주일에 한번만 나옵니다.”


“환자 수와 비교하면 의료진의 수가 적지 않나요?”


“네, 운영을 위한 돈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곳에는 어떤 의료장비가 있죠?”     


“일차의료시설이라 혈압측정기 외에는 의료장비는 없어요.”


“의약품은 어떻게 수급합니까?”      


“자체적으로 구매하기도 하고 기부를 받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센터에서 기부를 받죠.”     


“의약품은 부족하지 않습니까?”     


“호흡기 환자를 위한 의약품이 부족합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로부터 보조를 받아서 의약품 확보에는 문제가 없어요. 정부가 의료교육에 큰 관심이 없어서 우린 교육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족한 의약품은 있지만, 확보에는 문제가 없다는 좀 이상한 대답을 했다. 어쩌면 팔레스타인 보건부(PMOH)와의 협력 관계를 의식한 발언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진료비 수준은 어떻습니까?”     


“질환별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진료비는 25세켈(약 1만158원)이고, 치료비는 20~40셰켈(약 8천원~1만6천원) 가량입니다. 약값은 환자 부담이죠. 정치 수감자 및 가족, 순교자(점령국인 이스라엘과의 시위·저항 등의 과정에서의 사망자)는 돈을 받지 않고 있어요.”     


“진료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국가건강보험 적용이 됩니까?”


“여기서 건강보험 여부는 고려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클리닉은 어떤 역할을 했죠?” 

    

“의료 교육과 마스크 착용 등의 위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세정제와 마스크도 나눠주었고요.”   

  

“여성 및 아동 확진자 가운데 사망 사례가 많았습니까?”     


“전 보지 못했습니다.”


by 코드블랙


“나블루스의 보건 의료상황이 어떻다고 생각하나요?”     


“여러 이유로 공중보건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환자 수는 너무 많은데 국가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환자가 적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의료비 부담을 너무 많이 지고 있죠.”


“수술이 필요하거나 클리닉에서 담당할 수 없는 환자는 어디로 보내죠?”   

  

“우리보다 높은 단계의 대형병원으로 전원시킵니다.”     


사실은 대형병원의 비싼 진료비 부담을 주저하는 극빈층의 이야기를 그에게서 끌어내고 싶어 이런 뻔한 질문을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미안해 서둘러 인터뷰를 마쳤다. 여성 환자들은 나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자꾸 구석으로 숨곤 했던 여의사의 사진을 찍느라 나는 고생을 했다. 사실 그 의사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지만,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서안지구에서 두번째로 큰 병원    


지난 2013년 나블루스에 설립된 안나자(An-Najah) 대학병원은 팔레스타인 의과대학에서 만든 첫 번째 대학병원이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어거스트 빅토리아 병원(Augusta Victoria Hospital) 다음으로 서안지구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 의료 인력은 의사 65명, 간호사 240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현재 120개의 병상이 운영되고 있고, 내가 방문했던 2022년 10월 11일(현지시간) 350병상이 들어설 건물 증축이 한창이었다. 연간 외래환자의 수만 1만5천명~1만6천명이었다. 병원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만나 이름과 직책을 들었지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무튼 이 ‘고위 관계자’는 병원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다. 


“2005년 안나자 의대가 신설됐는데 대학병원 필요했습니다. 의대생들이 공부와 수련을 할 공간이 있어야 했으니까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와 협정을 맺고, 현재는 일반의료와 신장 관련한 질환 등 모든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현재 산부인과 건물을 짓고 있죠. 


영국·요르단·유엔과 협력해 선진국의 의료시스템이 처음으로 적용됐습니다. 뼈안에 세포를 이식하는 수술은 250례 시행했어요. 뇌와 심장 등 이전에는 이스라엘이나 요르단에 가야만 가능했던 힘든 수술도 성공했습니다. 의대생들이 인턴과 전공의 실습을 거쳐 전문의로 길러내는 시스템을 갖췄고, 의과교육 수준도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환자들을 위해 방사선과와 병실을 증축 중이고, 방사선 치료는 서안지구에서 우리 병원에서만 할 수 있어요. 이스라엘군의 검문소(checkpoint)를 거치지 않고도 우리 병원에 올 수 있어서 접근도 쉽죠.”  

   

by 코드블랙


“병원의 규모는 어느 정도 입니까?”     


“입원병실에는 120병상이 있고, 현재 350개 병상을 보유한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100개의 인공투석기기도 있어요.”  

   

투석(dialysis)은 몸에서 노폐물과 과도 체액을 제거하는 인공적인 과정으로,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만성신부전 환자의 혈액에서 노폐물을 제거하는 것을 말하는데, 투석의 종류에는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이 있다. 특히 혈액투석은 혈액투석장치를 통해 혈액 속의 노폐물과 수분을 제거하고 전해질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팔레스타인에는 신장 관련 질환 환자가 많아 인공투석이 많이 요구된다.     

 

“암환자도 병원을 많이 찾아오나요?”     


“전체 환자의 38~40% 가량 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어거스트 빅토리아 병원을 제외하면 안나자 대학병원은 서안지구에서 가장 큰 암병원이에요.”


“이스라엘군과의 분쟁으로 발생한 총격 피해 등 중증외상 환자 빈도는 높습니까?”


“네. 중증의 상황이 많고 중환자실(IOU)에서 이들을 위한 수술과 의료지원이 이뤄집니다(고위 관계자는 구체적인 통계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중증외상 환자는 병원에 얼마나 내원하죠?”     


“부상자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고, 가끔 이쪽으로도 오는데 보통은 라피디아 외과병원(Rafidia Surgical Hospital)이 시위 중 부상환자를 주로 맡습니다.”     


1976년 설립된 라피디아 외과병원(Rafidia Surgical Hospital)은 나블루스에 위치해 있는데, 팔레스타인 보건부(PMOH)가 운영하는 국립병원이다. 200병상 규모로 의사와 간호사, 약사 등을 비롯해 620여명의 의료인력이 소속되어 있다. 


by 코드블랙


“중증환자 이송은 검문소 등 이스라엘군의 도로 통제로 지연되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가자지구(Gaza Strip)에서는 이스라엘 당국으로부터 허가증을 받아야만 안나자 대학병원에 올 수 있습니다. 나블루스 인근 거주 환자가 병원에 오지 못하는 경우는 이스라엘군이 도로를 막거나 검문소 때문인데, 최근에는 그런 경우가 적습니다.”     


의구심이 들었다. 나블루스와 제닌(Jenin)에서의 유혈분쟁으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고, 검문이 강화됐던 탓에 상식적으로 병원까지의 이송 지연이 다수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 것과는 다른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라피디아 외과 병원으로 주로 중증 외상환자가 주로 이송된다는 앞선 답변을 고려하면, 일견 이해가 되기도 했고, 검문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곳에 병원이 위치해 있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또 말이 되기도 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또 이해가 되질 않았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나블루스(Nablus)에는 이스라엘군의 이동 제한 시설은 ▲검문소 6개 ▲지역별 부분 검문소 1개 ▲개방 철문 4개 ▲방어벽 1개 ▲흙더미 9개 ▲흙벽 3개 ▲도로장벽 3개 등 총 27개나 있었다. 어쨌든 계속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최근 나블루스와 제닌에서의 유혈분쟁으로 병원에 내원한 환자 사례를 설명해줄 수 있습니까?”     


“환자가 있긴 한데, 구체적인 환자의 사례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안나자 대학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듭니까?”


“수술, 항암치료, 면역치료, 방사선치료 비용은 매우 비쌉니다(환자 1인당 평균 치료비용은 들을 수 없었다). 안나자 대학병원은 연간 1000건, 누적  5000건 이상의 치료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보건의료 서비스 재원 부족입니다. 전체 치료비를 충당하려면 PA는 300만 달러(약 43억 원)가 추가로 더 필요한 상황이죠.”      


by 코드블랙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암 치료와 인공투석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2만 명의 공무원과 그 가족들은 국가 의료보험의 수혜자이죠. 국가건강보험 가입하면 100% 치료비 보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매달 PA에 세금을 지급하지만, 암과 신장 질환은 이스라엘로부터 세금을 적게 받아서 감당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환자 이송 건수도 많지만 이송 과정에서 환자는 악화되는 상황이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이나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PA 차원의 공중보건 캠페인이 있다면 설명해주세요. 이를테면 금연과 같은.”


“팔레스타인 남성의 50%가 흡연자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안나자 대학병원을 비롯해 12개 기관은 PA와 합동으로 흡연율 감소를 위한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2022년 3월에도 했어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확진자 대한 격리병동 운영 및 치료 대응은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유행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물품을 환자, 의사, 병원 방문자에게 지급했습니다. 코로나19 전담 부서를 만들어서 산소호흡 치료(위중증 환자를 위한)를 실시했습니다. 우린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코로나19 가이드라인을 대중들에게 안내하고 교육을 시키기도 했죠. 우린 코로나19와 충분히 잘 싸워서 이겼습니다. 안나자 출신 의사들이 8개 의료기관에 파견돼 성공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안나자 대학은 코로나19 대응의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병원의 노력이나 자부심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고위 관계자의 ‘성공적인 대응’이나 ‘코로나19와 싸워 이겼다’는 발언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통계를 고려할 때 주관적인 해석으로 치부할 수 밖에 없다.    


존스홉킨스 코로나19 리소스 센터에 따르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누적 확진자 수는 70만3천14명이며, 누적 사망자는 5천708명이다. 참고로 서안지구의 인구는 315만 명, 가자지구 212만 명이다. 확진자 및 사망자 수만 놓고 보면 많다고 볼 수 없지만, 진단검사시설의 한계로 사각지대의 존재를 고려하면 이 수치는 더 증가할 수 있다. 총 374만8천571 회분의 백신이 투약됐고, 적어도 예방접종 1회분만 투여 받은 사람의 수는 201만2천767명, 1회 이상 투여 받은 비중은 39.46%에 불과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에 분쟁이 심각해지면 의약품 수송에 어려움을 겪습니까?”     


“이달에도 이송돼야 할 의료품목이 이스라엘의 유대 명절로 허가가 지연돼 수송이 늦어지고 있어요. 운송업체도 이스라엘 업체인데, 모든 의약품은 이스라엘에 사전등록을 해야 합니다. 사전등록의 어려움도 있거니와 분쟁 자체가 의료품 이송에 어려움을 주진 않지만, 이송 업체들이 이송을 거부하거나 이스라엘군의 검문이 강화돼 이송이 지연되고 있죠.”


“서안지구의 보건 상황을 어떻게 진단합니까, 개선을 위해 PA는 장기적인 해결책을 갖고 있다고 보십니까?”     

“PA와 보건부와 모자보건에 잘 대응하고 있습니다. 우린 치료와 개입은 가능한데 예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암 치료 환자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이 요구됩니다. 한 곳에서 예방, 진료, 치료, 회복이 이뤄져야 하고, 이것을 하려고 합니다.”     


by 코드블랙


나블루스 인근 부린마을(Burin village)의 갓산 나자르(32) 활동가는 이 말을 듣더니 “거짓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통역을 위해 병원에 동행했던 다른 활동가도 지인의 사연을 들어 “돈이 없으면 병원에서 어떤 치료도 기대할 수 없었다”고 꼬집었다.      


인터뷰 이후 고위 관계자와 병원 곳곳을 둘러보았다. 수련 중인 의대생들은 나를 신기한 듯 곁눈질했고, 환자들도 내 정체를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환자들과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거듭 전하자, 고위 관계자는 “도대체 왜 환자를 만나고 싶어 하느냐”며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환자들과는 대화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응급실 창 너머로 본 인턴 의사들은 환자를 돌보는데 열심이었다. 나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상황에도 노력을 하고 있는 이들의 성과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실적 한계와 PA의 무능을 꼬집어야 할지 돌아오는 내내 머리가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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