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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30. 2022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2부➅ 이중폭력


2022년 10월 9일 오전 11시28분(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나블루스 올드시티(Nablus old city)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여성 트라우마 힐링센터에 아이를 안은 여성이 찾아왔다. 하키마(36·가명)는 현지 여성들이 입는 푸른색 베일에 얼룩무늬의 히잡(Hijab)을 차림이었다. 그녀의 볼에는 가로로 긴 흉터가 있었다. 


나블루스 올드시티에 사는 하키마는 8년간 동안의 결혼 생활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결혼 첫 해부터 남편은 그녀를 때렸다. 남편은 알코올 사용장애로, 술만 마시면 주먹을 휘둘렀다. 하키마는 일주일에 1~2번씩 구타와 언어·성적 폭력을 당했다.


남편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고,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무직 상태였던 남편이 간혹 일용직 근로 등으로 돈을 벌어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식비 정도만 하키마에게 주곤 했다. 돈을 벌어오지 않을 때면 하키마는 친지의 도움으로 음식과 자녀에게 입힐 옷가지를 얻어 생활했다.  


하키마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음이 알려지게 된 것은 한밤중에 남편이 외부에서 하키마에게 발길질을 하며 구타하는 모습을 이웃들이 목격하면서다. 2년 전에도 하키마는 남편의 폭력으로 실신,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의료진은 그녀가 가정폭력 피해를 당했음을 눈치 채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경찰에 신고했다. 그 일로 남편은 한 달간 징역을 살았다. 


by 코드블랙


이웃의 소개로 알게 된 팔레스타인 트라우마 힐링센터 소속 변호사는 남편에게 양육비 청구를 할 것을 조언했다. 현지법은 가정폭력 피해를 당했을 경우, 이혼 여부와 관계없이 양육비 청구를 허용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법원이나 경찰이 접수해야 했다. 


하키마는 법원에 소송을 청구하고 싶었지만, 소송비용이 없었다. 법원 대신 경찰에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경찰은 피해를 입증할 병원 진단서 제출을 요구했다. 진단서 발급에는 100셰켈(약 4만원)이 필요했는데, 하키마는 그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남편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하키마는 이혼을 하고 싶지만, 지금도 남편과 한 방에서 지내고 있다. 남편의 알코올 의존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하키마는 낮에는 아이를 돌보고, 밤에는 수공예품 제작 교육을 받으며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하키마가 가정폭력 피해의 영향으로, 또 남편과 분리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아 폭력 재발 가능성 때문에 불안 등을 느끼고 있지 않은 지 물어보았다.      


“우울감을 겪고 있고,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저 같은 여성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by 코드블랙


나블루스에 거주하는 마리엠(38·가명)도 그날 센터를 찾아온 여성 가운데 한 명이었다. 8명(딸 2명, 아들 6명)의 아이 엄마인 마리엠도 가정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했다. 한번은 남편이 그녀의 머리를 가격해 그녀는 이주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집에 돌아와 보니 딸의 기색이 심상치 않았다. 이유를 묻자 딸은 삼촌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음을 고백했다. 마리엠이 경찰에 신고하려하자 가해자는 집에 불을 질렀다. 


“모든 게 다 타버렸어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죠.” 


이후 딸은 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았는데, 상담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충격을 받은 마리엠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심리상담의 도움 등으로 생각을 바꿨다. 자녀들에게는 본인 밖에 없다는 사실도 컸다. 두 살배기 막내딸에게는 엄마가 필요했다. 마리엠이 살아야 할 이유는 자녀들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자녀 외에 자살 시도를 멈추게 한, 다시 살아가게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나요?” 마리엠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마찬가지로 센터에 찾아온 파티마(26·가명)도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둔 엄마였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가정폭력과 학대 피해를 받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쪼들렸다. 남편은 툭하면 물건을 집어던지고 파티마와 자녀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참다못해 남편과 별거하기로 작정하고 집을 나왔다. 아이들은 남편과 지냈다. 자녀와 떨어져 지내자 슬픔과 우울증, 고립감이 밀려왔다. 결국 파티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남편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파티마는 “남편이 바뀌었고, 더는 폭력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남편이 또 그러면 어떡할 작정인가요?”


“그런 불안감도 없어요.” 파티마는 본인이 강해졌다고 믿고 있었다. 


“전 강해졌어요. 그리고 직업훈련을 통해 더 강해질 거예요.”     


아이린(37·가명)도 남편의 상습적인 가정폭력, 성적학대,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댁으로부터는 살해협박까지 받았다. 아이린에 따르면, 그녀의 남편은 평소 자신감이 없었고 여러 병도 앓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때릴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은 자신의 약함을 들키기 싫어했어요. 그래서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제게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았어요.”


가정폭력 말고도 아이린은 더 큰 위협에 놓여 있었다. 남편의 형은 아이린이 유산을 상속받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아이린은 법률 상담 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도리어 검찰에 신고할 것을 권고했다. 남편은 그녀가 검찰에 가지 말라고 위협하고, 살해 협박에 대한 증언을 거부했다. 결국 검찰 고소는 이뤄지지 못했다. 


아이린은 심리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감이 늘었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를 둘러싼 위협은 아직 남아있었다.      

에일리(37·가명)는 2022년 7월경 1년 반의 별거 끝에 이혼을 하였다.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과 정신적 학대 피해를 받았다. 결혼 당시 그녀의 나이는 29세였지만 남편은 50세로 나이차가 많았다. 남편은 이미 첫 번째 부인이 있었으며 자녀도 7명이나 있었다. 나이 차이로 인한 불화와 남편의 질투도 에일리를 힘들게 만들었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남편은 아랍인 이스라엘 시민권자였다. 아랍인 이스라엘 시민권자는 국적이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인을 뜻하는데, 이스라엘에 참정권을 갖고 있었으며, 제한된 지역이나마 이스라엘에 거주도 가능했다. 전 남편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화적 차이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이는 에일리와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 형법은 중혼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시 최대 징역 7년에 처해질 수 있었다. 물론 결혼을 관장하는 최고종교재판소가 특별한 허가를 한 경우는 예외이지만, 에일리의 경우처럼 남편처럼 아랍인이지만 이스라엘 시민권자인 경우, 공식적으로 중혼을 허락받기란 매우 어렵다. 때문에 남편은 첫째 아내가 자신의 중혼 사실을 신고할 것을 염려해 에일리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첫째 아내의 비위를 맞추려고 절 폭력적으로 대했고 결국 전 유산을 했어요.”


에일리는 별거 끝에 이혼을 결정했다. 당시 에일리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자신감이 저하된 상태로, 감정조절에도 문제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모친의 사망으로 그녀는 정신건강에 문제를 겪었다. 이제 에일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전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라고 느껴요.”     


점령이 만들어 낸 이중폭력      


나는 앞선 5명의 현지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가정폭력과 그로 인한 불안, 우울, 트라우마(Trauma) 등의 정신건강 문제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들의 사연 중에는 우리사회의 정서·문화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포함돼 있다. 가령, 폭력을 일삼은 남편에게 다시 돌아간 사연은 쉬이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피해 여성들이 몸을 피할 쉼터 등이 사실상 전무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여성 보호 정책이 부재한 상황, 또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이슬람 문화 아래 피해 여성들의 현실적인 선택지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위의 증언을 단초로 여러 문헌과 보고서를 통해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가정폭력 등 젠더 기반 폭력(Gender-Based Violence)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점령 폭력(Occupation-Related Violence)에도 노출돼 이중폭력의 환경에 처해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점령 폭력이 가정 폭력을 유발하고, 이것은 다시 여성의 정신건강의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이중, 삼중의 폭력이 가해진다는 이야기다. 


by 코드블랙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여성의 젠더 기반 폭력 경험: 정신 건강 전문가의 인식과 우려’(Gender-based violence experiences among Palestinian women during the COVID-19 pandemic: mental health professionals’ perceptions and concerns) 연구는 팔레스타인 여성을 향한 폭력은 법·가족·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부장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 이스라엘 점령 하의 삶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희생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취업 기회 부족은 가족 간 심리·사회 문제가 증가시켰고, 그 결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했다.” (심리상담사, 논문 중 인용)     


“여성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남성들이 불안해하며 그들을 공격했다고 지적했다.”(심리학자, 논문 중 인용).     


“이스라엘 군인이 남성에게 가하는 폭력은 집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유발한다.” (심리학자, 논문 중 인용)     


“이스라엘 점령 정책에 의한 폭력은 가정폭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임상사회복지사, 논문 중 인용)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트라우마(Trauma)는 개인에 따라, 상처·충격의 강도에 따라 몇 가지 종류도 나뉜다. 전쟁·테러·재난·사고 등 삶에 영향을 미치는 트라우마, 자신감·자존감 등 존재에 상처를 입히는 트라우마, 충격적 경험이 일회성 또는 반복적으로 발생해 이로 인한 상처와 충격으로 여러 심리 문제를 안기는 복합성 트라우마 등이 존재한다.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원인이 된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과 우울 등 정서적 문제도 PTSD로 접근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의 정신건강 분야가 어떤 실정인지 알아보기 위해 관련 연구를 뒤졌다. ‘정신과와 팔레스타인 연구’(Psychiatry and the Palestinian population)에 따르면, 1967년 이후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정신 건강 서비스는 이스라엘 정부가 주도해 이뤄졌다. 그렇지만 서비스는 만족스럽게 제공되지 않았고 저개발되었다. 


‘이스라엘 점령 하 팔레스타인의 정신 건강 시스템 구축’(Establishing a mental health system in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ies) 연구를 보면,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자원과 전문가가 매우 부족했고 비록 국제구호단체들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지원과 정신건강 서비스의 공백을 메우려 했지만, 정신건강 서비스는 정체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서안지구의 정신건강 분야의 관리를 시작했는데, 2004년 2차 인타파다(민중봉기) 이후 팔레스타인인의 정신 건강 관리는 매우 시급했지만, 당시 소요 사태로 관련 의료기관과 진료소는 상당부분 파괴됐다. 


by 코드블랙


세계보건기구(WHO)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정신 건강 시스템에 대한 보고서’(Report on mental health system in West Bank and Gaza strip)에 따르면, 지역사회 정신건강은 보건부의 재정 예산에서 우선순위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건부(PMOH) 전체 예산의 2%가 정신건강에 사용될 뿐이며, 2%의 73%는 정신의료기관에 병원에 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재정·관리 구조 및 인적 자원의 부족은 정신 건강 서비스의 질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WHO는 ‘WHO와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을 위한 국가 협력 전략’(Country cooperation strategy for WHO and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ies 2009–2013)을 통해 “더 많은  전문가 훈련 및 정신 건강 작업장을 개선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어쨌든 나는 여성들의 사연을 노트북에 받아 적으며 어떻게 여성 정신건강 문제를 다룰지 궁리하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도 참혹한 사연의 주인공들의 다음 챕터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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