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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27. 2022

시내는 축제, 외곽은 전투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2부 ⑤

  

2022년 10월 8일(현지시각)은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탄신일(Eid Milad Un Nabi)로, 오후가 되기 전부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나블루스 올드시티(Nablus old city)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새 옷을 입은 가족들과 멋을 낸 젊은이들로 거리는 북적였다. 시장 한켠에서는 젊은이들이 전통음악을 틀어놓고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상인들은 대목을 맞아 손님맞이에 바빴다.  


나블루스 지역시민사회단체 탄위르(Tanweer)의 와엘(57) 활동가는 나를 나블루스 올드시티 내 전통시장으로 데려갔다. 현지의 명물 크나페(Knafe)를 맛보게 해주려던 심산이었다. 시차 적응이 되질 않아 어서 숙소로 돌아가 쉬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자기 시간을 쪼개 시내 구경을 시켜주려는 성의를 외면할 수 없었다. 현지인들은 오전 8시~9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2~3시면 일을 끝낸다. 와엘은 이미 야근을 한 터였다. 


by 코드블랙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팔레스타인에서 나블루스의 크나페는 가장 유명하다고 했다. 크나페는 아랍 문화권에서 즐겨먹는 디저트인데, 치즈 페이스트리를 단맛이 나는 시럽에 담근 후 구워 만든다. 나블루스에서는 숯불에 크나페를 구워 만든다. 이방인인 나만큼 현지인들도 크나페가 익어가는 것을 신기해했다. 


와엘의 손에 이끌려 간 시장의 크나페 맛집은 이미 재료가 동이나 문을 닫은지 오래였다. 두 번째로 간 곳은 길 한복판에서 좌판을 펴놓고 크나페를 팔고 있었는데 이미 줄이 길었다. 일회용 접시에 담긴 크나페는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달았다. 길에 서서 크나페를 먹고 있는 내 모습을 와엘은 사진으로 찍으며 웃었고, 현지인들은 그 모습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by 코드블랙


시내는 축제, 외곽은 전투…삼엄한 검문이     


축제 분위기의 시내와는 달리 나블루스 외곽에서는 연일 이스라엘 방위군(IDF)과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 사회주의정당이자 미국·이스라엘 등은 테러단체로 지정하고 있음) 및 하마스(Hamas, 정당이자 준군사단체로, 가자지구를 실지배하고 있음, 테러단체로 지정돼 있음)간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실 나블루스에서의 IDF와 현지인 사이에서의 충돌은 계속 발생해왔지만, 2022년 8월 30일 유대인 종교인 5명이 나블루스 시내에 위치한 야곱의 우물(Jacop’s Well)에 방문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2명이 부상당하고, 3명이 체포되면서 충돌은 더욱 격렬해졌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숙소에서도 총소리가 종종 들렸다. TV에서는 연일 충돌 상황을 속보로 전했다. 


특히 2022년 10월 12일(현지시각) 나블루스 북서쪽에 위치한 데이르 샤라프(Deir Sharaf)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총격 중 사망하면서 긴장도는 더욱 높아졌다. 나블루스 올드시티를 근거지로 하는 라이언스 덴(Lion‘s Den)이란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은 자신들이 이스라엘 군인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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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닌에서도 이스라엘 방위군(IDF)와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세력 간에 유혈 총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제닌의 상황이 알려진 계기는 2022년 5월 11일(현지시각) 알자지라(Al-Jazeera) 소속의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시린 아부 아클레(Shireen Abu Aqla) 기자가 이스라엘군 작전 현장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국제 사회의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스라엘 방위군(IDF) 고위 관계자는 2022년 9월 5일(현지시각) “시린 기자를 언론인으로 인지하지 못한 군인의 오발에 의해 그녀가 사망했을 ‘높은 개연성(High probability)’이 있다”고 밝혔다. 군법원의 수사 결과에 대해 이 관계자는 “해당 군인은 만약 자신이 시린 기자를 쏘았다면 그것은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앞서 유엔(UN)과 다수 현지 언론들은 시린 기자가 이스라엘군에 의한 피격 증거를 다수 보고했고, 미국 정부는 해당 군인이 기자를 향해 오발을 ‘한 것 같은(Likely)’ 정황이 발견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지 상황이 급변하자 나블루스에서 외부로 통하는 도로의 통행 제한 및 검문이 강화됐다. 나블루스 지역시민사회단체 탄위르(Tanweer)의 와엘 활동가는 “언제 제한이 풀릴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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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2일에는 오전부터 도로 검문이 강화되면서 나블루스에서 외부로 나가는 길은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그날 나블루스에서 제닌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하와라 검문소(Huwwara Checkpoint)는 도로를 차단해 오가는 차량의 발목이 묶였다. 


주황색 바리게이트가 도로를 막고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팔레스타인들은 차에서 나와 상황을 살폈다. 자신이 하와라 검문소를 왜 지나야 하는지를 간청하거나 언제 통행이 재개되는 지를 묻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 모두 답은 듣질 못하고 나블루스 시내로 차를 돌렸다. 당초 제닌 취재 일정이 잡혀있던 나도 그들과 같은 처지였다. 도로 옆 황무지에는 양과 염소의 사체들이 쌓여 악취를 풍겼다. 썩어 뼈만 남은 사체에는 쥐와 파리가 들끓었다.  


2022년 10월 14일 하와라 체크포인트와 인접한 하와라 마을은 인근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정착민의 공격으로 한차례 소요가 일면서 긴장을 더욱 높였다. 이스라엘군은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원거주민들에게 최루탄을 쏘았다.   


by 코드블랙


2022년 10월 13일(현지시각)에는 나블루스 남서쪽으로 7킬로미터 떨어진 부린마을(Burin village)을 취재하고 돌아오는 와중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석재와 모래 따위로 도로를 막는 광경을 목격했다. 부린마을에 발이 묶일 뻔 했지만, 택시 기사의 기지로 흙더미가 도로에 쌓이기 직전 통과해 겨우 나블루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22년 10월 14일 나블루스에서 동서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베이트 다잔(Beit Dajan)에서 금요집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팔레스타인 현지 언론인 쿼즈 뉴스 네트워크(Quds News Network) 기자 두 명과 동행 중이었다. 베이트 다잔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도로에 있는 베이트 프릭 검문소(Beit Furik Checkpoint)에서는 오전부터 삼엄한 검문이 실시되고 있었다. 전면 도로 차단은 아니었지만, 베이트 다잔의 금요집회 참석을 통행 이유로 댈 수는 없었다. 적당하게 둘러댈 수는 있었지만, 여행 자제 구역을 이동하려는 외국인의 방문 자체가 문제를 만들 수 있었다. 어쨌든 12일부터 도로 통제를 겪은 현지인들의 불만은 가중되고 있었다. 


인근의 아와르타 체크포인트(Awarta Checkpoint)도 상황은 같았다. 군인들은 탑승자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하고 행선지를 물어본 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 시 통행을 허가했다. 한 대 차량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돼 시간이 갈수록 정체는 심해졌다. 검문소에 가까이 다가가 카메라의 줌을 당겨보니 세 명 이상의 군인이 있었는데, 한명은 아와르타에서 나블루스로 오는 차량에 대한 경계를 서고 있었고, 곁에 선 한 명은 노란색의 차단기에 몸을 낮추고 나를 망원경으로 보고 있었다. 그의 총구는 검문소로 향하는 차량을 향해 있었다. 


by 코드블랙


검문소와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팔레스타인인의 집 한 채가 있었다. 1차선의 도로를 끼고 집과 올리브 나무가 심어진 땅이 있었다. 올리브 나무 아래에는 조랑말이 풀을 뜯었다. 예닐곱 가량의 소년 둘은 목재 더미에 앉아 이방인을 쳐다보았다. 동행한 언론인들은 다른 차량으로 옮겨 타고 나는 나블루스 인근 도시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차를 돌렸다. 


나블루스의 북서쪽에 위치한 데이르 샤라프(Deir Sharaf)는 군인 사망 이후 이스라엘 군 당국이 흙으로 주요 도로를 막아 통행을 차단했다. 현지 청년들을 따라 흙더미를 넘어가니 원형 교차로가 있었고, 오른쪽 도로에는 150여미터 떨어진 곳에 흰색 승합차와 군용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트럭 조수석의 군인은 이쪽을 조준하고 있었다.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최루탄이 터졌다. 


몸을 낮추고 최루탄이 내뿜는 최루연기를 카메라로 찍고 있는데 최루가스가 퍼지면서 숨이 막히고 눈물이 나왔다. 현지 청년을 따라 옆의 식당으로 몸을 피했는데, 정작 날 데려가느라 최루가스를 들이마신 청년은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식당 뒷문으로 밖을 내다보던 청년은 내가 그를 따라 나오자 급히 손짓하며 속삭였다. 


“아직 근처에 군인들이 있어요.” 


우여곡절 끝에 취재를 마치고 떠나려는 내게 현지 청년이 날 향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by 코드블랙


최루가스를 뒤집어쓰고 틸마을(Till village)로 향했지만 중간의 체크포인트도 검문이 강화되어 정체 차량 행렬이 길었다. 언덕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올리브를 따던 팔레스타인 부자가 샤이차를 권했다. 황무지와 같은 땅에 올리브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그 강한 생명력에 감탄하면서 나는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나블루스와 제닌의 사태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의 견해가 궁금했다. 2022년 10월 6일 팔레스타인고용기금(Palestine Employment Fund, PEF)의 칼리드 알리 나세프(52)는 현지 상황에 대해 “높은 수준의 민감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그는 1948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이후의 ‘일반적’ 상황이라고 했다. 팔레스타인인 칼리드는 이스라엘의 점령이 이 상황을 만든 근본 원인이라고 믿고 있었다.

      

“현지는 매우 민감합니다. 이스라엘군은 제닌의 이슬람 지하드 그룹과 나블루스의 알 아크사 무장 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두 지역에 대한 공격을 매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야간에 도시 침입, 폭격, 발포 등을 하고 있고요. 이스라엘군은 유대 정착촌의 정착민들도 제닌과 나블루스 소재 학교와 원거주자에 대한 방화와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1948년 이스라엘 점령 이후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은 항상 이스라엘 공격 하에 놓여 있었어요. 2022년 10월 4일에도 이스라엘은 라말라에서 6명을 체포했어요. 충돌의 강도가 크고 작다는 차이가 있지만, 미디어가 나블루스와 제닌에 초점을 맞춰 현 상황이 더 커보이기도 하는 거죠.”     

by 코드블랙


이동화(47) 사단법인 아디 팀장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일련의 반복된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나는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교수에게도 분석을 요청했다.      


“최근 이스라엘 군인들이 제닌과 나블루스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 뿐만 아니라 기자, 구급차, 의료진, 유치원, 학교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2022년 9월에만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18명 이상 발생했습니다. 이번 공격은 2022년 4월 제닌 출신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유흥가에서 총기를 난사해 3명의 이스라엘인을 살해한 것에 대한 보복 성격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련의 군사 작전은 이스라엘인 살해에 대한 단순한 보복을 넘어섭니다. 장기적으로 이 군사 작전은 이스라엘  국가 건설 이후 계속된 팔레스타인인 축출 정책입니다. 이스라엘은 인구적인 부담을 덜기 위하여 서안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 인구수를 줄이려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언젠가 성취될 수도 있는 한 국가(one country) 해결안에 대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단기적으로 이러한 공격은 명목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관할지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PA를 더욱 약화시킬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인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지 못하는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이 물러나야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단기적 목표는 바로 팔레스타인 수반 교체일 수도 있습니다.”


by 코드블랙


실제로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총리는 2022년 9월 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질서를 유지 하지 않는 곳에서 이스라엘은 머뭇거리지 않고 어떤 행동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홍 교수는 이스라엘이 PA에 요구하는 것은 자국의 안보를 유지하는 역할이며, 역할을 하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위기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상황이 갈수록 엄중해지자 나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공항을 가려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차단되지는 않을지 몹시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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