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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토리

퇴사동화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최근 직장인 671명을 대상으로 ‘직장병’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응답자의 대부분(83.9%)는 입사 전보다 건강이 나빠졌다고 답했습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회사만 가면 아픈걸까요?


월요일 아침. 느낌이 왔다. 위가 아파온다. 가슴이 조여 오는 느낌. 월요병은 증상도 많다. 누군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가는 기분이라고 하던데 이것은 100퍼센트 실화, 월요일 아침 냐옹씨의 심정이란 그랬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처음 입사했을 때만해도 기대감이 컸다. 오랫동안 하고 싶던 일이었다. 기분 좋은 긴장이 좋았다. 적어도 냐옹씨가 기획한 프로젝트에 이런저런 태클이 걸리기 전까진 그랬다. 한번은 회식 자리에서 A씨가 술에 취해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냐옹씨, 끄윽 내가, 끄윽 입사 반대한 거 알쥐이? 냐옹씨가 나이가 너무 많잖아. 아하하하하”


“아, 네, 하하….”


그러고 보니 합격 통보를 받고도 입사일을 알려주지 않아 먼저 연락한 게 기억났다. 그게 나이가 많아서였음은 몰랐다. 충격이었다. 지금 냐옹씨는 회사에 사표를 내던질 이유를 100개라도 댈 수 있다.


퇴사를 고민하는 이들의 마음이란 엇비슷할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길 테니까. 그럼에도 회사를 나가면 더 끔찍한 상황이 기다린다는 겁나는 이야기 역시 잘 안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래도 관두고 싶었다. 딱히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운 삶이 기다리지 않을까. 그 고정적인 월급만 아니라면 말이다.


“냐옹씨, 제 파일이 열리질 않아요.”


아몰랑씨는 꼭 일을 두 번씩 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쪼르르 그의 자리에 가서 문제를 해결해줄때까지 아몰랑씨는 스마트폰을 보며 깨톡을 하고 있었다. 도움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물론 고맙단 말 따위도 그의 사전엔 없었다.


“이상하다. 내가 할 땐 안됐는데. 다음에도 부탁해요.”

이걸 죽여 살려. 사실 냐옹씨는 업계에서 아몰랑씨보다 선배였다. 냐옹씨는 그저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첫 출근부터 무리지어 나가는 이들과 함께 밥을 먹지 못했다. 끼워주지 않았다.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던 게 실수였다. 그런다고 각을 세운적도 없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은근히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회의를 할 때면 “냐옹씨, 목소리 좀 크게 하세요”라든가, 프레젠테이션에 대놓고 딴 짓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성과를 낼수록 따돌림이 더욱 심해졌다는데 있었다.


그래,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하고픈 일을 한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신입딱지를 막 뗀 직원보다 냐옹씨의 연봉이 더 낮다는 소릴 들었을 때에도 속은 상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냐옹씨를 무시했던 건지 그냥 기준이 없는 것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냐옹씨는 스스로 ‘난 괜찮아’라고 자위했지만, 실제론 괜찮지 않았다.



아무튼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그래, 퇴사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퇴사와 관련된 글을 써보자고 결심했던 건, 몇 달 전 짧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때 갑작스런 난기류로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을 쳤다. 기내 여기저기에선 비명에 가까운 고함과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그 순간 냐옹씨는
이상한 상상에 사로잡혔다


'비행기에 이상이 생겨 활주로에 비상착륙을 하기라도 한다면, 회사에 뭐라고 말해야할까. 이 말을 믿어주긴 할까. 인사고가에 불성실이라고 찍히는 건 아닐까.' 정신이 들자, 단지 회사가 싫거나 현실 불만족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수첩을 꺼내 만약 회사를 관둔다면 뭘 해서 먹고 살지 적기 시작했다.


작가로 데뷔할까? 굶어죽기 십상일 것 같았다.


책을 쓸까? 책을 다 쓸 때까지 월급 없이 버틸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신인 작가에게 책을 내줄 출판사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렇담 이직? 회사를 옮긴들 거기서 거길 것 같았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했을 때 냐옹씨는 조금 멍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그저 뭉개진 의욕을 되살리고 싶었다.

퇴사할 겁니다, 언젠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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