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03. 2019

4살 딸 죽은 이유 하느님은 아신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탐사대의 첫 도착지는 ‘밀러행성’이다. 영화에서 이 행성은 물이 많아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거대 블랙홀을 공전하는 탓에 기묘한 현상이 수시로 발견되는 ‘물의 불모지’로 묘사된다. 이곳에서의 1시간은 지구의 7년으로, 산만큼 높은 파도는 탐사대를 심각한 위협에 빠뜨린다. 


밀러행성을 죽음의 행성으로 만든 치명적인 블랙홀은, 그러나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면역력이 약한 유아와 산모를 공격하고 그 가족들을 고통의 시간 속에 영원히 빠뜨리고만 블랙홀, 가습기 살균제 이야기다. 

  

사진=영화 '인터스텔라' 장면 중 갈무리

   

하얗게 변한 폐     


오른쪽 폐가 하얗게 변해있었다. 아이는 검은 설사를 쏟아내더니 경기를 일으켰다. 2011년 9월19일 오후 5시 5분. 조현서양(당시 4세·가명)은 그렇게 허망하게 눈을 감았다. 응급실에 실려 온 지 불과 나흘 만의 일이었다. 그 모습을 본 부모는 넋이 나갔다. 창자가 조각나는 단장(斷腸)의 고통은, 그러나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 지원 확대가 진행 중이지만,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조중민씨(43·가명)는 둘째 딸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 정황과 증상을 볼 때 가습기 피해가 유력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는다. 


죽음의 연관성을 증명하라는 정부의 요구는 부모의 자책감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옥시 제품을 샀던 영수증과 집에 있는 제품 사진 따위를 제출하라는 이야기에 그는 분통을 터뜨렸다. 치졸하다. 비열하다. 딸을 먼저 보낸 아비의 말은 차가우면서 뜨거웠다. 숨겨진 죽음은 인정된 진실보다 잔혹했다. 때마침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보상금 몇 푼 따위는 중요치 않습니다. 제 딸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알아야겠습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2011년 추석 이틀 전 현서의 이마가 불덩이였다. 딸을 업고 동네 병원에 갔다. 의사는 “목이 부어서 열이 난다”고 했다. 이튿날도 병원에 갔지만 차도가 없었다. 의사 처방대로 약을 먹으면 나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9월10일 오전부터 열은 더 심해졌다. 동네 병원은 ‘인후염’이라고 했다. 밤이 되자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울었다. 이번에는 소아과의원으로 향했다. ‘환자를 잘 본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곳이었다. 이전에도 간혹 아이들이 아프면 들르던 곳이었다.  


“애들이 아프면 소아과에 와야죠. 이비인후과는 청진을 안 한다니까요.” 


의사가 나무라며 말했다. 기관지염과 장염, 장중첩이 의심된다는 말에 안심이었다. 수액주사에는 비타민과 항생제가 더해졌다. 딸은 기력을 찾은 듯 보였다. 밥도 곧잘 먹었다. 다 끝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12일 밤 아이는 열에 들떴다. 39도에 육박했다. 소아과의원은 닫혀 있었다. 이마에 찬 수건을 대며 열이 내려가길 바랐다. “대보름에 빌자. 빨리 낫자.” 다음날 아침 찾아간 소아과의원은 다시 항생제 섞인 수액 주사를 놨다. “‘폐렴’ 증상이 관찰됩니다. 인근 대학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던지 수액을 더 맞히던지 선택하세요.” 더 이상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14일 오전 4시 응급실로 달려갔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아니야. 다 괜찮을 거야.’ 엑스레이 촬영 결과 오른쪽 폐가 물로 꽉 차 있었다. 간 수치와 백혈구 수치는 엄청나게 올라가 있었다. 응급 상황이었다. 청진을 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던 소아과 의사는 도대체 무얼 한 걸까? “(완치까지) 한 달쯤 걸릴 겁니다.” 폐가 무거워지다보니 장기가 눌려서 배가 아픈 것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큰 병원에 올 걸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의 몸에 호스가 삽관됐다. 600cc가 넘는 물과 이물질이 나왔다. 열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힘들었을 텐데 대견하다”는 의사의 말. 이 말은 믿어도 될까.  


15일 밤 9시 아내가 사색이 됐다. 현서가 발작을 시작했다. 검은 설사를 쏟았다. 혀를 깨물까봐 아이 입에 손가락을 넣고서 발만 동동 굴렀다. 발작은 한 시간 이상 계속됐다. 결국 일반병동에서 중환자실로 급히 옮겨졌다. 주치의가 폐 사진을 보여줬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오른쪽 폐가 하얗게 굳어 있었다. 나머지 폐도 섬유화가 진행 중이었다. 


누가 이 작은 가슴에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하늘이 노랬다. 의사는 감염을 의심했다. “항생제를 복합해서 쓰겠습니다.” 세균 배양을 했지만 깨끗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항생제는 말을 듣지 않았다. 차도는 없었다. 점점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설마’라는 불길한 예감은 발을 적시고 가슴을 지나 턱 밑까지 차올랐다. 딸은 아무 잘못도 없었다. 건강했고 착한 내 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급격히 오른 뇌압과 뇌부종에 안구는 부풀어 있었다. CT 촬영은커녕 침대를 옮기는 것도 어려웠다. 똘망똘망했던 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눈을 떠도 이전 같지는 않을 겁니다.” 


“살려만 주세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추가 증상이 계속 늘어났다. 상태는 급격하게 악화됐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동안 한 평도 되지 않는 병상에서의 사투는 처절했다. 19일 오후 5시5분 결국 딸의 심장은 차갑게 식었다.     


사진=픽사베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딸의 폐는 이상했다. 왜 하얗게 변해버렸는지 조중민씨는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 주치의는 “모른다”고 했다. 의사도 알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디서 물어봐야하는 걸까. “사인을 밝히기 쉽지 않을 겁니다.” 


“중민아, 너 딸… 가습기 그거 아냐?” 


폐섬유화와 갑작스러운 사망. TV에서 가습기 살균 피해자들의 사례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와 아내 모두 알고 있었지만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지나간 옛일이라 묻어두려고 했다. 고통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아프고 답답해도 가장의 짐은 오롯이 그만의 몫이다. 중민씨는 부쩍 말수가 적어지고 하늘을 보며 담배를 피우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에서야 용기를 냈다. 가습기 살균 피해 사례 접수를 한 것이다. 현재 가습기 살균 피해자로의 인정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접수는 했지만 인정을 받는 게 두렵기도 하다. 그가 겁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자책감 때문이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는 금방 동이 나곤 했어요. 생생해요. 가습기를 소금물로 닦아내고 그 안에 살균제를 쏟아 부었어요. 제가 직접 했어요. 제 손으로 했어요.” 


가습기 살균제는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었다. 뉴스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권했다. 건강 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이에게 좋다고 하니까 썼어요.” 그러나 '아이에게 좋다'고 믿게 만든 건 옥시의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과 전략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마냥 퍼다 나른 미디어와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은 정부가 그는 원망스럽다.

이성과 부성은 시시각각 그를 무너뜨린다. 조씨가 기억하는 딸의 모습은 한결같다. “그 장면이 기억나요. 아이가 TV를 보고 있으면 함께 누워서 옆모습을 쳐다보는 거예요. 예쁘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래서 눈물이 나요.”


사진=픽사베이

                

사람이 사람을 부정하는 곳


2019년 11월1일 기준 정부 접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수는 6616명이며, 사망자는 1452명으로 확인됐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가족을 잃은 이들이 묻는다. 가습기 참사를 두고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있는가. 정부 산하 다수의 기관과 단체, 조직은 도대체 무얼 했을까. 기업의 돈을 받아 이른바 ‘청부 연구’를 떡하니 내놓은 학자들, 그리고 이를 용인한 대학, 정치인, 악의적 프레임으로 흠집내기에 일관하거나 ‘경제 논리’를 운운하며 가해자의 손을 들어준 언론까지 ‘치명적인 블랙홀’의 내부는 온통 시꺼먼 그을음으로 가득하다. 이곳은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밀러행성과 다르지 않다. 사람이 사람을 부정하는 곳. 부정당하는 나라.   


조중민씨의 막내딸은 언니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지나치듯 슬쩍 언니가 있었노라 말해준 게 전부다. 그러나 보름달이 뜨면 아이는 한번도 본 적 없는 ‘현서 언니’를 찾는다. 그런 막내딸이 올해 여섯 살이 됐다. 이제 산 아이는 죽은 아이보다 나이가 많다. 매년 6월20일은 죽은 딸아이의 생일이다. 세월이 흘러 막내딸이 성인이 되었을 때, 매년 이 날일을 어떻게 기억할지 나는 두렵다. 국가가 언니를 지켜주지 않았다는 분노가 남아있을까봐 걱정이 된다. 


아직은 견고한 블랙홀이 그때쯤이면 쪼그라들어 더 이상 흔적도 남아있지 않길 희구한다. 블랙홀이 피해자들에게서 빼앗아가 멈춰버린 시간도 다시 흘러가길 소망한다. 어른이 될 아이가 살아갈 곳은 ‘물의 불모지’ 밀러행성이 아닌...


사람의 땅이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전 10화 열심히 살지만 행복한건 아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