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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토리

지옥동화

아이가 죽었다


재일한국인 양석일 작가의 <어둠의 아이들>은 태국을 배경으로 아동 인신매매와 인신매매를 고발하는 사회소설이다. 동명의 영화는 ‘가격표가 붙은 생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가격표가 붙은 생명. 이어질 글은 한 아이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것이다.


2014년 2월 1일 미국 쉐디그로브 어드밴티스트 병원 응급실에 의식불명 상태의 유아가 이송됐다. 아이의 머리 앞과 뒤에서는 피가 흥건했고, 코와 귀로 뇌척수액이 흘러 나왔다. 입은 옷은 피와 진액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이튿날 아이는 워싱턴DC의 국립아동병원으로 이송됐다. 아이의 미국 이름은 메덕 현수 오캘러한, 우리나라 이름은 현수였다.


당시 세 살이었던 아이는 전원 후 이틀 동안 뇌사 상태에 있다 결국 사망했다. ‘부모’는 장기기증을 결정했고 현수의 장기는 미국인 4명에게 전달됐다. 이 과정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상히 전한 남자(양아버지)의 글에는 ‘슈퍼 히어로’라는 댓글이 달렸다.


양아버지 브라이언 패트릭 오캘러한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한국 책임자였다. 해병대 출신인 그는 1997년부터 7년간 해군에서 복무했다. 2003년 이라크 전에서 미군 포로 제시카 린치 일병 구출 작전 등에도 참여한 베테랑 군인이었다. 미국 현지에서 한국인 아이를 입양하려면 여러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오캘러한은 수년간 봉사활동을 하며 공을 들였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찾아와 결국 아이를 입양했다.


2013년 10월 세 살 현수가 탄 비행기가 태평양을 건넜다. 아이가 도착한 곳은 미국 몽고메리 카운티 다마스커스. 아이는 오캘런 부부의 막내아들, 매덕 현수 오캘러한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네 살 터울인 형 에이런도 생겼다. 세 번째 생일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미국에 온지 석 달 만에 벌어진 의문의 죽음에 현지 언론도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헤드 투 토


국립아동병원 의료진은 아이의 머리, 목, 등에서 멍과 긁힌 자국을 발견했다. 의사는 진료기록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헤드 투 토’(head to toe), 즉 온몸이 상처로 뒤덮인 상태. 이것은 아동학대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 경찰은 아이의 살인 용의자로 병원에 함께 내원했던 오캘러한을 체포했다.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동생을 사랑했어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에이런)


“아들(오캘러한)은 현수를 입양하기 위해 오랫동안 애를 써왔습니다. 입양한 순간부터 지난 4개월 동안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오캘러한이 그럴 리 없습니다.” (오캘러한의 부모)


“남편을 믿습니다.” (아내 제니퍼 오캘런)


2월 18일 오캘러한의 첫 공판이 열렸던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카운티 법원. 검사는 부검 결과를 토대로 구타에 의한 살인을 주장했다. 머리·목·등의 멍과 함께 둔탁한 무엇인가로 수차례 가격을 당해 두개골 골절과 타박상, 내부출혈로 사망했다는 법의학적 소견도 검찰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오캘러한은 아이가 욕실에서 뒤로 넘어지면서 바닥에 어깨를 부딪쳤고, 수영센터에 다녀올 때까지 특별 징후 없었지만, 이후 구토, 코에서 점액이 흘러 응급실에 데려갔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진술에 의거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아이의 상태가 나빠지자 오캘러한은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지켜봤다. 병원에 내원하기 전 아이를 씻긴 점도 석연치 않았다. 검찰은 침대시트가 세탁되었던 점도 의문을 제기, 일반적인 행동 패턴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후 2년여의 지리한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은 매켈러한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국내 가정법원은 입양여부의 최종 판단 주체다. 가사조사관은 입양기관의 조사보고서와는 별도의 조사를 해야 하지만, 당시만 해도 입양기관의 조사보고서를 별다른 검토 없이 인정하는 관행이 많았다. 당시 입양기관의 보고서가 객관성을 답보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에서 입양기관이 예비부모에게 요구하는 금액이 최대 5만 달러에 달했고, 이중 절반이 우리나라의 입양기관으로 넘어오는 구조였다. 나는 조사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당시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TRACK)’ 관계자는 “미국에서 돈만 있으면 백퍼센트 입양이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적잖은 세월이 흘렀지만, 이 사건을 되새기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인생을 시작도 해보지 못한 아이가 잔인한 구타에 스러진 사건. 당시 장기간 취재하면서 글로 내어놓은 부분보다 채 공개하지 못한 취재파일이 더욱 많았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이 죽음의 행렬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친부모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현재도 우리사회에서 어른의 손에 꽃같은 생명을 잃는 아동학대가 날마다 일어난다. 아이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 아이가 맞아죽는 사회. 피멍 속에 스러진 아이에게 세상은 연옥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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