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지만, 감동은 과정에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전력투구하는 그녀들의 이야기 <오리지널스>입니다. 두번재 주인공은 이자스민 정의당 비례후보입니다.
4월 9일 오전 11시20분 국회의사당 본관 213호실. 약속시간에 맞춰 나타난 인터뷰이는 상기된 얼굴에 활짝 웃고 있었지만, 전문가의 아우라도 뿜뿜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인가. 20대 유권자라면 누구나 고등학교 문학수업시간에 한번쯤 보았을 후보자, ‘완득이 엄마’. 이자스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는 9번을 달고 21대 국회에 출사표를 던졌다.
영화 ‘완득이’에 출연했었잖아요. 캐스팅은 어떻게 된 거에요?
“그 전에 ‘의형제’에도 출연을 했어요. 처음에는 영화에 출연할 외국인 배우의 캐스팅을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연을 맺었죠. ‘의형제’ 촬영 당시 베트남 이주여성을 연기할 배우가 필요했거든요. 베트남 국적에, 한국어 구사가 유창해야 하고,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는데, 그런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 감독님이 ‘그냥 이자스민씨가 해주세요’라고 해서 출연까지 하게 된 거예요. 이후 완득이 엄마가 됐죠(웃음).”
이번 총선 어때요, 자신 있으세요?
“자신 있다면 이렇게 열심히 하겠어요?(웃음) 이번만큼 ‘깜깜이’ 선거였던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정말 결과를 모르겠어요. 코로나19 때문에 거리에 시민들이 없어요. 사람 만나기 이렇게 힘들다니!”
19대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에, 지금은 정의당 소속인데 ‘잘 맞는 옷’은 어딘가요?
“지금이 훨씬 편안해요. 이주민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매우 진보적인 아젠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정의당이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거든요. 정의당 입당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 사람들이 많이 말을 걸어와요. 과거 새누리당 의원이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의정활동 보고를 위해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악성댓글이 너무 많았죠. 어느 날 한 이주여성이 메일을 보내 국회의원인 저조차 이렇게 욕설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상처라고 했어요. 전 결국 댓글창을 닫아버릴 수밖에 없었어요. 정의당에 온 후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악플이 달리면 지지자들이 절 감싸주고 저 대신 싸워주더라고요. 환영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든든해요.”
그렇지만 모두에게서 환영을 받은 건 아니었을 텐데요?
“입당을 결정할 때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겠죠. 조직도, 지지 기반도 없이 (정의당에) 새로 들어왔으니까요. (새누리당 소속이었다는) 이력 때문에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요. 하지만 경선을 통과한 것을 보면 절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게 증명된 거겠죠.”
공약 상당 부분에서 이주민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선거판에에서 좀 부담스럽지 않았아요?
“우리사회 저변에는 ‘왜 이주민을 위해줘야 하느냐’는 인식이 있어요. 그럼에도 이주민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죠. 정의당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에서도 이번 총선에 도전한 이주민들이 적지 않았어요. 결국 다들 경선에서 미끄러졌지만, 핵심은 이주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도전을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것은 이주민 스스로 자신들의 응축된 힘을 자각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죠. 앞선 지적처럼 이주민 아젠다는 국민정서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주민은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가장 하층에 있어요. 최약자를 배려한 법이 마련된다면, 결과적으로 모든 약자들을 포용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딴지를 거는 것 같긴 하지만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를 내건 정치 구호는 많았어요. 이자스민의 차별점은 뭐라고 자평하세요?
“우선 ‘당사자주의’로 설명할 수 있을 거예요. 또 이미 4년 동안의 정치 경험을 해서 바로 실전에 투입될 준비가 돼 있고요. 지역에 가면 다양한 이주 현안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들은 제게 어려움을 호소하고, 전 그 지역구 의원에게 민원이 전달되도록 도왔죠. 정말 황당한 것은 뭔지 아세요?”
무어라 하던가요?
“아니요. 지역구 의원 왈 ‘이자스민에게 가세요’라고 말한다는 거죠. 감당이 안 되니 저와 상의하라는 거였죠. 말인즉슨 이주민 문제를 잘 알고, 관심이 있고, 해결 의지에 있어 제가 강점이 있다는 말이죠.”
최근 선거 홍보영상 구호가 마음에 들었어요. ‘차별의 선을 넘겠다’라는 슬로건 말이죠.
“모든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한계(혹은 편견)을 뛰어넘겠다는 슬로건이예요. 전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이 극복되도록 돕고 싶어요. 의원 시절만 해도 국회에서 한참 대화를 나누다 상대가 그래요. ‘이자스민씨, 제 말 다 알아들었죠?’라고요. 이주민 2세, 다문화가정 자녀 정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편견을 허물고 싶기 때문입니다. 훗날 다문화가정 자녀 중에서 김연아와 박태환이 나와 차별의 선이 저절로 사라지게 될 때까지요.”
현재 우리나라의 이민자 제도, 어떻게 보세요?
“이주민 구성원은 다양해지고 있는데, 정책은 여전히 다문화가정에만 집중돼 있습니다. ‘이민’에 대한 법률적 정의도 아직 없어요. 19대때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법무부 관계자를 만나서 이주노동자가 이민자인지 아닌지를 물어본 적이 있어요. 여가부, 고용부는 이민자라고 하는데, 법무부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민자 소관부처는 바로 법무부이죠. 규제기관인 법무부가 이주민 제도 운영을 맡고 있는 건 아이러니합니다.
이 후보의 다문화가족 공약과 관계부처인 여가부 정책과의 차별점이 뭐죠?
“여가부는 전국에 200여개의 다문화가정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센터마다 불만이 많아요. 이주여성들의 니즈와 처한 환경은 다양해지고 있는데, 여가부가 펴고 있는 사업은 한글교육 등 초기 정착지원이 전부거든요. 그래서 저처럼 한국에서 10~20년가량 오래 거주한 이주여성들은 센터에 가질 않아요. 이주여성들은 무역, 관광, 이중언어강사 등 역량은 있는데, 센터의 직업교육이란 건 네일아트와 바리스타가 전부에요. 지역 특화 사업을 하기 어려운 것은 부족한 예산 때문이기도 하고요. 여기에 부처 실적주의도 작용하죠. 인식개선 사업 등이 절실하지만, 성과를 도출하기 어려우니까 시도를 안 한 겁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사회진출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가난의 대물림인 거예요. 대책이 없어요.”
선거판에서 사회적 약자를 내건
정치 구호는 차고 넘친다
이민 당사자로서 이민 정책을 내건 그의 공약은 강점과 동시에 지엽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내걸고 표를 원하는 이들은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국회에서 이주민 아젠다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람은 드물다.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적어도 이주민 문제에 관해선 이자스민 만큼의 인지도와 존재감을 가진 사람은 없다. 나는 선거 후 다시 한번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도 그러겠노라 했다. 1년 후가 될지, 4년 후가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과 그때, 그의 말과 궤적은 같을지 다를지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