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문준 일산백병원 신경외과 교수의 아프가니스탄 이야기
최근 손문준(53) 일산백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SNS로 DM 메시지를 받았다. 발신자는 아프가니스탄 사람인 사다트(가명)였다. 메시지에는 사다트 가족의 딱한 사연이 절절히 담겨 있었다. 사다트는 과거 손 교수가 치료했던 소아 수두증 아동 환자의 부모였다. 그는 자녀의 병을 치료해줄 의사를 수소문하고 있었다.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이후 카불 시내는 이전과 달라졌다. 병원은 문을 닫았고, 의사들도 몸을 숨겼다. 국경 너머 가까운 나라로 치료를 받으러 떠날 수도 없었다. 이미 아프간을 떠나려는 피난민으로 국경은 인산인해였고 무장한 탈레반 단원들도 도처에 깔려 있었다. 사다트 가족은 막다른 길에 놓였다.
손 교수는 이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사다트 말고도 그에게 도움을 바라는 현지인의 연락은 이어진다. 그들의 요청은 일개 의사인 손 교수가 들어줄 수 있는 것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손 교수는 지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아프간 현지의 바그람한국병원에서 병원장으로 활동했다. 병원장이라고는 해도 움막 수준의 보건소에 벽을 세우고 수술 장비를 들여놓아 병원으로 역할을 하도록 주춧돌을 놓는 ‘생고생’이 그의 역할이었다.
그와 동료, 현지 의료인들이 고생해 만든 병원은, 그러나 지난 2019년 12월 탈레반에 의해 폭파돼 사라졌다.
아프간의 보건 시스템은 손 교수가 현지에서 활동할 때보다 나아졌지만, 운영을 국제 원조에 기대고 있던 탓에 자생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지난달 말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자 원조 및 의료 시스템에 도움을 주던 국제 NGO 활동도 모두 멈추고 말았다. 우려했던 의료 공백이 현실로 된 것이었다.
“비록 10년 동안 의료 인프라가 발전하긴 했지만, 전 정권의 부패와 원조에 의존한 보건 분야는 허약했습니다. 원조가 중단되면 곧장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거죠.”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이후 국경없는의사회(MSF) 등 극소수 NGO만이 남아 현지인에게 필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MSF는 탈레반 집권에 따른 현지 불안이 고조되고 있으며 대규모의 실향민 발생은 긴급 의료 제공 수요를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내게 말했다.
특히 여의사의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여성·아동·소녀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어요
2021년 8월 26일 아프간 현지 협력자와 가족 390명이 한국 땅을 밟았다.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우리나라에 체류하게 된 이들 가운데는 35명의 현지 의료인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손 교수가 아프간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었다.
손 교수가 알던 한 현지 의료인은 탈출 과정에서 피격을 당하기도 했다. 그 의료인은 결국 탈출에 실패했다. 일하던 병원이 문을 닫고, 은행도 문을 걸어잠근 상황에서 아프간 의료인들은 빈손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수중에 옷가지 몇 벌만을 들고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던 그 참담한 심정을 생각하면 손 교수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미군과 연합군 멤버로 참여한 한국과 협력했다는 거죠. 의료인 남편은 탈레반에게 ‘벌’을 받고 부인은 탈레반 단원과 강제로 결혼해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누가 그런 상황에서 탈출을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손 교수에게 아프간 의료인들은 형제나 마찬가지다. 그가 아프간을 떠난 지 십년이 넘었지만, 현지 동료들과 연락을 이어온 것은 의료의 불모지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함께 환자들을 돌봤던 경험 때문이다.
손 교수가 아프간에 도착했던 2010년. 아프간은 오랜 전쟁으로 의료시스템이 전무한 형편이었다. 2006년까지 미군 주도로 기초 의료 가버넌스가 구축되기 시작해 이후 2009년부터 병원 시설을 향상시키는 재건 사업이 진행됐다. 손 교수가 현지에 도착한 2010년그와 팀에게는 의료질 향상이 요구됐다.
당시 아프간 정부군을 위한 의료시설은 있었지만 민간인 대상 의료기관은 턱없이 모자랐다. 인근 도립병원의 수술실은 창고와 다름없었다. 바그람 한국병원은 옛 사령부 2층 건물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손 교수가 아프간에 온지 석 달째가 되어서야 간단한 수술을 할 수 있었고, 2011년부터는 전신마취가 가능한 수준으로 향상됐다. 입원실에 환자를 받기 위해 미군 기지에서 환자식을 받아와 제공하기도 했다.
현지 환자들의 상태에 대해 손 교수는 '종합병원'이라고 묘사했다.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부터 산악지대에 거주하며 생긴 관절염을 앓던 사람, 암환자도 병원을 찾아왔다. 함께 간 대여섯 명의 의사들만으론 역부족이었다. 미군 소속 의사에게 부탁해 그들이 쉬는 날을 쪼개 진료를 봐주는 식으로 치료가 이뤄졌다. 미군 통역을 맡던 현지 산부인과 의사는 병원에 내원한 여성들의 부인과 질환 치료에 투입되기도 했다.
한 번은 보행장애가 있던 환자가 그를 찾아왔다. 검사를 해보니 척수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수술용 램프가 없어 미군 PX에서 팔던 산악용 램프로 대체해야 했다. 척수 수술은 환자가 엎드린 자세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의료기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물리치료기기로 대체해 간신히 수술이 이뤄졌다.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손 교수는 이번에 한국에 온 현지 의료인으로부터 환자가 보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이러한 경험을 손 교수와 동료들 모두 잊지 못한다. 손 교수는 SNS로 줄곧 안부를 묻고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전에도 손 교수에게 추천서를 부탁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7월부터 요청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군 철수 결정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요청받은 경력증명서가 떼려니 병원을 탈레반이 폭파시켜서 외교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행히 김일응 아프간 공사참사관과의 인연이 있던 손 교수는 김 참사관을 통해 경력증명서 발급을 해주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손 교수는 이제 자리를 잡아가던 아프간 의료인들이 고국을 탈출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제가 그들을 트레이닝 시킨 건 훗날 현지인들을 돌보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런 사람들이 한국과 협력한 ‘죄’로 고국을 탈출해야만 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