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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토리

루시와 릴리가 누구지?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루시와 릴리가 누구지?


나오코

병원에 이송된 소녀는 온전한 구석이 없었다. 나오코(가명), 열다섯. 구마모토현에서 사라진 소녀는 도쿄 신주쿠의 한 지하실에서 발견됐다. 공안경찰이 문을 뜯어내자 쾌쾌한 악취와 먼지가 진동했다. 그 안에는 나오코와 다른 소녀들이 약에 취해 얼룩진 매트리스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영양실조와 성병, 마약 중독 재활 치료는 꽤 오래도록 이어졌다.


퇴원 후 나오코는 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이모가 출근을 하면, 그제야 나오코는 식사를 하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직행. 짙은 커튼으로 창을 가리고 침대에 웅크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그 고요함이 좋았다. 두꺼운 커튼을 통과한 빛의 변화로 아침과 밤이 지나감을 알 수 있었다.


이따금 창문 밖에서 들리는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왔지만, 그들은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불속에서 나오코는 메신저와 SNS로 세상을 흘깃거렸다. 어두운 방과 세상을 잇는 끈은 스마트폰이 전부였다.


히토미의 시선

등교길.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 그리고 하교길. 히토미는 커튼이 쳐진 나오코의 방 창문을 쳐다봤다. 오늘은 작은 돌멩이를 던져보았지만,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커튼이 울렁울렁한 것을 보고 히토미는 나오코가 숨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히토미가 손을 모으고 소릴 질렀다.


“나.오.코. 나.오.코!”


숨을 고르고 히토미가 다시 소릴 질렀다.


“내일 구마모토성에 갈거야! 아침에 찾아갈게!”


커튼은 여전히 열리지 않은 채 였다.


시부야

시부야의 번잡한 거리. 건널목 옆 전신주에 서 있던 소녀에게 넥타이 차림의 중년 남성이 다가가 무어라 말을 건넸다.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자, 이들은 이내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자를 따라나설 때 나오코의 가방에 매달린 토토로가 좌우로 흔들렸다. 잠시 후 나타난 소녀는 피곤한 기색이었다.


소녀의 우울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때 하필 2층 카페에 있었던 건 그곳에서 시부야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였다. 나는 야간비행으로 피로가 뭉친 어깨를 주무르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그러면서 남성들이 지폐 몇 장으로 소녀의 성을 사는 광경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들의 목적지가 시부야 뒷골목의 싸구려 러브호텔이라는 것은 뻔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더 정확히는 참견하고 싶지 않았다. 여행자, 혹은 방관자는 이내 다음 여행지로의 여정을 찾는데 정신이 팔렸다.


퍼뜩 인기척에 고갤 돌리자 그 소녀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카페에 손님은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였다. 소녀는 나에게는 관심이 없이 메신저로 누군가와 한창 대화중이었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히토미, 히토미. 항상 너가 문제라니까.”


“쓰는 메신저가 ‘라인’인가요?”


왜 나는 소녀에게 말을 걸었을까. 지금도 의아하다. 사촌 여동생이 떠올라서였을까. 아니면 한때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르쳤던 학생이 기억나서였을까. 그 즈음 나는 사회부 기자로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여러 번 취재한 경험이 있었다. 소녀에게 관심을 두었던 이유가 후자가 아니었음은 분명했다.


어쨌든 소녀와 난 메신저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나와 한국어를 모르는 소녀 사이의 대화는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가능했다. 그리 대단치 않은 수다가 전부였지만, 상대를 마주보고 번역기로 대화를 나누는 게 소녀나 나나 퍽 재미있었다.


서울에 돌아온 후에도 종종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녀는 시시콜콜한 수다를 늘어놓는데 재미를 들인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는 소녀의 사정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소녀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엄마의 새 남자친구는 늘상 주먹을 휘둘렀고, 엄마는 그걸 보고만 있었다. 방관과 폭력은 나날이 더욱 심해져 14살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날 밤 사내는 소녀를 덮쳤다. 소녀의 입을 틀어막은 짐승은 숨을 씩씩거리며 속삭였다.


“엄마한테 이꼴을 보여주고 싶진 않겠지?”


이후의 이야기는 그렇다. 견디다 못한 소녀는 가출해 무작정 도쿄로 왔다. ‘전화’가 오면 소녀는 ‘구매자’를 만나러 갔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어때요? 도움을 줄 곳은 많을거예요.”


나는 집에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소녀는 그럴때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소녀에게는 돌아갈 집도, 반길 사람도 없었다. 단짝 친구는 한 명 있었다.


“히토미에게 김짱 이야기를 여러번 했어요. 아참, ID 알려줘도 돼죠?”


대화는 어느 날부터 갑자기 끊겼다. 다시 연락이 이어진 건 한참이 지난 후였다. 또 다른 소녀, 히토미였다. 소녀는 나오코와 연락이 끊어졌다고 했다. 걱정이 됐지만, 한국에 있는 나로서도 딱히 방법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연락처를 뒤져 일본 현지의 A에게 사정을 말했다. 그는 기자였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구매자’를 소개해주고 수수료를 떼는 식으로 시작돼. 그러다 강제로 주사를 놓아 중독을 시킨다고. 원조교제의 끝은 마약이야. 약에 취한 애들을 가둬놓고 ‘손님’을 받게 할 거야. 그러다 아이들은 사라져. 그렇게 끝.”


우여곡절 끝에 소녀는 이모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현지 시민단체와 공안, A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소녀는 구출되었다. A는 기적이라고 했다. 2014년으로 기억한다. 출장차 오사카를 방문했던 나는 소녀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을 찾아갔다. 소녀는 헬쓱해진 얼굴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루시와 릴리

짐승의 밤 이전, 엄마의 남자친구라는 작자가 집에서 살기 전. 영어 수업 시간이 끝날때즘 선생님이 말했다. “조용! 다음 시간부터 영어이름을 지어오세요.”


“영어 이름을 어떻게 지으라는 거지?” 나오코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난 생각해둔 게 있어.” 히토미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난 루시, 넌 릴리.”


“에에. 그게 뭐야. 난 싫어.”


“루시와 릴리. 흐흐흐 좋아, 좋아.”


어쨌거나 둘은 그날부터 서로를 루시와 릴리라고 불렀다.


다시 여름

한참을 지나 다시 여름이 되었다. 퇴원 후 첫 여름이었다. 나오코는 히토미의 성화에 못 이겨 구마모토성에 함께 올랐다. 성에 오르는 가파른 언덕 길을 걷다말고 숨을 헐떡이며 나오코가 말했다. “이 날씨에 여길 오기로 한 건 정말 멍청한 생각이었어.”


히토미가 지지 않고 말했다. “난 너가 커튼 뒤에 있는 걸 바로 알았다니깐.”


그 말에 나오코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윽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손을 잡고 걷던 소녀들의 뒤로 햇빛이 눈부셨다.



루시와 릴리는 돌아온다


소녀들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루시와 릴리는 지금도 웃고 있을까? 수년 전 구마모토성을 오르던 두 소녀의 뒷모습에서 언젠가 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논픽션을 써보겠다고 결심했다. 기록은 수년에 걸쳐 조금씩 연결되어 갔다. 이 프로젝트를 계속 마음에 둔 이유는 희미하게 웃던 루시와 기뻐하던 릴리의 미소를 내가 아직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과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두 소녀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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