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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Feb 02. 2021

나는 예수님이 싫다 영화 리뷰

종교와 우정이 뭘까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예수님이 싫다(2018)

드라마 일본 2019.08.08 개봉

76분, 전체관람가

감독: 오쿠야마 히로시 

주연: 사토 유라, 오오쿠마 리키

네티즌 평점: 8.3

- 다음 영화 참조 -


처음에 제목을 보고 이게 뭐지 싶었다. 예전에 읽은 오강남 교수 책 '예수는 없다' 같은 도발적인 내용인가? 하지만 이 영화는 전체 관람가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왜 예수님이 싫다고 이야기하는지 알게 된다. 


이 영화를 22살 감독이 만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각본 촬영 편집 감독까지 혼자서 다 했다고 한다. 천재인 거 같다. 찾아보니 역대 최연소 신인감독상도 받았다. 감독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면 시골마을로 전학 온 소년에게 나타난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예수 그러나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순수했던 그때 추억 속으로 빠지는 시간이 된다. 아름다운 겨울 눈 풍경과 함께 말이다.


이 글은 줄거리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한적한 시골 마을로 전학 오게 된 12살 소년 유라(사토 유라). 그가 앞으로 공부할 학교는 가톨릭 미션 스쿨이다. 


아침에 출석을 확인한 후에 반 친구들은 다 같이 예배당으로 달려간다. 처음 예배를 접해보는 유라이지만 금세 적응하고 지낸다.


새로운 학교에 낯설기만 한 유라는 예배당에서 혼자 기도를 한다.

이 학교에서 친구가 생기게 해 주세요

그러자 유라 앞에 아주 작은 예수님이 나타난다.


며칠 지나자 같은 반 카즈마(오오쿠마 리키)와 친하게 되면서 단짝 친구가 된다. 카즈마는 축구도 잘한다. 


돈이 생기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비는 유라, 그런데 신기하게도 천 엔이라는 돈이 생긴다. 유라는 별거 없네 라고 혼잣말을 한다.


유라에게만 보이는 작은 예수와 함께 목욕도 하고 놀이도 하면서 아주 특별한 일상을 보낸다. 


유라 단짝 친구 카즈마는 별장이 있는데 그곳으로 카즈마 엄마와 크리스마스이브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는 식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다 같이 기도를 하는 유라, 카즈마, 카즈마 엄마이다.


하얀 눈이 쌓인 별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친구 엄마가 만들어준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면서 흔들의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라는 카즈마 엄마가 항상 웃고 있어서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학교에서 축구 경기를 하는 날, 카즈마가 이끈 팀이 우승을 한다. 먼저 집에 간 유라를 만나러 공을 차면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카즈마. 


공이 언덕 아래로 굴러가서 그 공을 주우러 가는 순간, 갑자기 트럭이 카즈마를 덮쳤다. 그리고 카즈마는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유라는 카즈마를 살려달라고 작은 예수님에게 기도를 간절히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작은 예수님은 나타나질 않는다. 결국 카즈마는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 


예배당에서 카즈마 장례미사를 드리는 중이다. 유라는 카즈마와 마지막 이별 편지를 읽는다. 나중에 꼭 다시 축구를 하자고 말한다. 그 편지를 듣고 있는 카즈마 엄마는 울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여태 보이지 않던 작은 예수님이 나타난 것이다. 자신에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지 않아서 화가 난 유라는 작은 예수님을 손으로 내리친다. 


성경책 위에 쿵 소리가 난다. 당황한 신부님은 다 같이 묵상을 하자고 말한다.


유라는 방에 앉아서 예전에 카즈마와 하얀 눈이 쌓인 운동장에서 축구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마지막에 죽은 친구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자막이 나오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어린 시절에 누구나 예수님이나 부처님에게 소원을 빌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은 소원들이 이루어진 경험을 몇 번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유라가 정말 원했던 카즈마가 죽지 않는 소원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님도 부처님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카즈마가 죽는 날, 유라 마음에는 다른 소원들은 들어줬던 작은 예수님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싶다. 정작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예수님이다.


어린 시절 노트와 연필을 준다는 이유로 교회를 처음 다니기 시작했다. 유라처럼 소원을 빌지는 않았지만 교회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데 정신이 팔렸던 거 같다. 놀기 위해서 종교를 믿었던 거 같다.


어린 시절에 종교를 접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부모님 때문에, 유라처럼 학교에서 접할 수도 있고, 친구 따라갈 수도, 우연히 전도되었을 수도 있다.


유라는 소원을 들어주는 종교로 접했지만, 결국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그런 예수님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더욱더 죽은 친구와 게임하고 축구했던 모든 추억이 애틋하고 보고 싶고 그립다.


만약에 우리가 원하는 소원이 전부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죽은 사람이 살았다가 살은 사람이 죽었다가 왔다 갔다 아수라장이 될 것 같다. 갑자기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순수한 소년 유라에 마음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잘 보여서 내 마음도 그렇게 깨끗하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주명리학에서 친구는 십성에 비견으로 비유된다. 나와 비슷한 모습이고 나와 나란히 어깨를 겨누는 존재이다. 친구라는 존재는 나에게 힘이 되어주지만 한편 질투심이나 경쟁심에 대상이 된다.


영화 속 유라는 친구와 관계에 이런 점이 작용한 것 같다. 서로를 이해해주고 든든한 존재이지만 한편 별장이 있는 친구에 대한 약간 부러움, 질투가 있었던 거 같다.


카즈마는 키도 크고 축구도 잘하고 별장도 가지고 있었다. 카즈마와 어울려서 놀고 좋은 추억도 있지만 한편 마음에 경쟁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영화 후반에 살짝 나온다. 유라가 한 가지 소원을 빌었는데 그 소원을 말하지 않는다. 그 소원은 끝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렴풋이 추정해보자면 좋은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유라는 친구에 죽음을 더 괴로워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친구 교통사고가 자신과 연관이 되어있어 죄책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비견이라는 존재는 나와 같이 힘을 합쳐서 일을 이루어내고, 백지장도 맞들면 낮다는 속담처럼 내게 힘을 더해주는 존재로 작용할 때가 많다. 


하지만 시기심이 생겨난다면 그 합쳐진 힘에 균열이 생겨나서 화를 입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비견이라는 존재에는 음과 양이 있는 것이다.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나 역시 친구에게 과연 질투하고 시샘하고 그런 적은 없었는가? 반성하게 된다. 


학생들이 봐도 어른들이 봐도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옛 추억에 빠져볼 수 있는, 하얀 눈 풍경에 순수한 소년들에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종교에 대한 생각을 할 수도 있는, 우정을 떠올릴 수도 있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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