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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Mar 13. 2021

개 같은 것들 영화 리뷰

아동 성폭행범, 한 번쯤 상상했을 복수


개 같은 것들(2019)

드라마/스릴러 2020.12.17 개봉

99분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최종학

주연: 지대한, 설지윤, 김승현

네티즌 평점: 5.9

- 다음 영화 참조 -


청소년 관람불가이고 아동 성폭행 사건을 다루는 영화라서 무서울 거 같아서 보기가 꺼려지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작성한 네티즌 평점이 굉장히 높아서 믿고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동 연쇄 성폭행범을 끝까지 추적해서 결국 단죄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개연성이 살짝 부족하고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후에는 속 시원한 마음이 든다.


뉴스에서 터져 나오는 아동 성폭행범, 하지만 현실에서는 인권이라는 테두리 아래, 가해자는 처벌이 약하거나 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잘 산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의 고통은 어디에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일반인들은 그런 성범죄 판결 뉴스를 접하고 고구마를 먹고 목이 메는 듯한 느낌을 어디에도 풀 길이 없다.


이 영화는 그 지점을 정확하게 해소를 해준다. 통쾌하게 성폭행범에게 벌을 준다. 피해자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도록 그에게 복수를 한다. 현실에서 제대로 주지 못하는 죗값을 받게 해 준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왜 제목이 개 같은 것들이라고 감독이 지었는지 알게 된다.



이 글은 줄거리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작은 집에서 종구(지대한)가 한 여자를 강간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사채로 빌려 간 돈을 받으러 다니는 해결사이다. 종구가 강간한 여자는 사채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의 딸이었다.


종구


종구는 강간한 여자와 같이 살고, 그녀가 몸을 팔아 벌어온 돈으로 생활비를 쓴다. 그녀는 딸 시아를 낳고 살다가 시아가 5살 때, 도저히 이런 삶을 살 수 없다고 한계에 이르자 혼자 집을 나가버린다.


엄마가 사라진 시아는 아빠가 인생에 전부이다. 하지만 아빠는 온갖 집안일을 시키고 기분이 별로일 때면 시도 때도 없이 때리고 학대를 한다. 아빠에게 기댈 수밖에 없지만 제일 무서운 존재이다.


종구가 살고 있는 동네에 계속 여자아이들이 강간당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심지어는 여학생이 죽는 사건도 발생하게 된다. 경찰들은 연쇄 강간범을 추격하지만 전혀 진전이 없다. 뭔가 현실 속 경찰에 무능력한 면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영화 속에는 개 같은 것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그중에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동네 정육점 주인, 미용실 원장, 약국 주인이자 약사들이다. 그들은 호시탐탐 어린 여학생들이 지나갈 때마다 성희롱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수진


종구 동네에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회복지사 수진(설지윤)이 있다. 그녀는 동네에서 시아처럼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다. 시아가 학교 공부를 계속하도록 종구를 설득한다.


전혀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시아에게 관심을 주고 있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성폭행이 연일 일어나고 사회복지사 수진은 그런 피해자들을 병원에서 보살피고 있다.


어느 날, 시아가 연쇄 성범죄자에게 납치된다. 그 범죄자는 시아가 한 번도 남자에게 더럽혀지지 않은 신성한 여자라고 흡족해한다. 시아를 강간한 후 쌀자루 포대기에 묶어서 밖에 방치한다.


시아


시아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딸을 찾는다. 결국 포대기에 싸인 딸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는 시아이다. 사회복지사가 옆에서 간호를 하고 있다.


종구는 딸이 좋아하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주려고 병원에 방문한다. 그런데 시아가 아버지의 손목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경기를 일으킨다. 종구는 영태와 의형제를 맺고 같이 손목에 문신을 한 것이다.


영태

         

시아를 성폭행한 개새끼는 종구와 의형제를 맺은 영태(김승현)인 것이다. 영태를 찾으러 돌아다니지만 그는 벌써 동네를 떠났다.


하지만 영태는 시아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입원 중인 시아를 몰래 납치해서 자신의 은둔처로 데리고 간다. 구는 딸을 찾으러 가고 싶지만 어디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런데 사회복지사 수진이 주소를 알려준다. 종구는 영태가 있는 곳을 찾아간다.


영태를 마구 때리고 딸을 내놓으라고 말하는데, 영태는 자신은 정신병 환자라는 서류를 보여주면서 정에 호소한다.


결국 방심한 사이 영태는 종구 배를 여기저기 칼로 찌른다. 종구는 배에서 나오는 피를 움켜잡고 신음하고 있다. 이때 영태의 집에 찾아온 사람이 있다.


바로 사회복지사 수진과 그의 아들이다.


알고 보니 수진의 딸이 영태에게 성폭행당해서 트라우마로 고통받다가 죽었다. 하지만 영태는 사법부에서 죄를 가볍게 처벌했고 곧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런 영태를 수진은 개인적으로 계속 추적하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수진은 드디어 딸의 원한을 갚을 기회를 만들었다. 손발이 묶인 채 바닥에 누워있는 아동 연쇄 성폭행범 영태를 위에서 쳐다본다. 그리고 가위의 날카로운 부위로 허벅지를 찌른다. 고통스러워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영태.


하지만 수진은 영태에게 너를 쉽게 죽일 수 없다면서 내 딸이 받은 고통을 그대로 느끼라며 여기저기 계속해서 찌른다.


나중에는 영태의 성기를 잘라내고 그것을 믹서기에 갈아버린다. 그리고 그 주스를 영태 입에 부어주면서 마지막 길에 너의 것을 가지고 가라 말한다.


이 장면을 피를 흘린 채 지켜보는 종구이다. 종구는 수진이 이런 일을 미리 계획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현장에 묻은 가위를 자기 손으로 움켜잡고 숨을 거둔다.


마침 경찰이 들여 닥쳐서 종구와 영태의 피범벅이 된 시신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얼마나 감독이 답답했으면 이런 영화를 만들었나 싶다. 그만큼 법이 일반인들 정서와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 두 명에 개새끼 캐릭터가 존재한다. 한 명은 시아 아버지 종구, 그리고 연쇄 성폭행범 영태.


종구는 한마디로 누가 봐도 나쁜 놈이다. 강간과 폭행, 아동을 학대한다. 자신에 본능을 제어하지 못하고 꼴리는 대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연쇄 성폭행범은 아니다.


반면 영태는 겉보기에는 누가 봐도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는 행동을 한다. 철저하게 자신에 본능을 숨긴다. 아동 성폭행이란 목적을 위해서 그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인내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자신에 본능을 드러내고 범죄를 저지른다.


현실에서 종구에 행동은 쉽게 사람들에게 눈에 띈다. 그러다 보니 그가 아동 성폭행범으로 몰린다. 영태 역시 그에 그런 약점을 이용하여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작전을 짠다.


경찰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지만 거의 범인을 잡는데 부족한 모습으로 나온다. 현실에서 경찰들이 범인 추적 능력에 실망스러운 면을 반영한 것 같다. 경찰은 범인을 빨리 잡으려는 욕심에 쉽게 눈에 띄는 종구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현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바로 수진이다. 성폭행으로 억울하게 죽은 자신에 딸 사건에 범인을 제대로 사법부가 죗값을 물었다면 그녀가 이런 복수를 꿈꾸었을까 싶다. 경찰과 사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가 직접 나선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범인을 추적하고 연구했다. 비로소 그녀가 범인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에 한이 서린 복수가 시작된다.


그녀가 메시지를 던져준다. 사회에서 개 같은 놈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사적인 영역에서라도 복수를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아동 성폭행범을 잡지 못하고 내버려 둔다면 제2, 제3에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복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상상 속으로나마 영화는 무방비로 돌아다니는 아동 성폭행범을 단죄하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사주명리학으로 보자면 종구 캐릭터는 두뇌를 사용하지 않는 유형 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인성의 기운이 약하거나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영태는 두뇌를 잘 사용하고 자신의 의도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숨길 수 있는 그런 편인이라는 인성의 기운을 활용한 것은 아닐까 싶다.


편인의 기운은 어떤 방향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극명하게 나뉘는 기운은 아닌가 싶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사회적으로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숨겨진 검은 욕망을 차근차근 실현하려는 것인지?


하얀 거짓말과 검은 거짓말 차이가 아닐까 싶다. 상대방과 좋은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서 기분 상하지 않게 조심해서 말하는 것과 내 어떤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 주려고 말하는 것과는 천지 자이 아닐까 싶다.


결과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편인의 마음을 쉽사리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나를 위해서 잘해주는지? 나를 이용하기 위해서 잘해주는지? 특히 인성의 기운이 약한 사람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현실에서는 3종류에 사람이 있다. 선한 의도에서 친절한 사람, 악한 의도에서 불친절한 사람, 악한 의도에서 친절한 사람. 종구 같은 캐릭터가 바로 불친절한 사람이고 영태 같은 캐릭터는 악한 의도를 가진 친절한 사람이다.


여기서 젤 조심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악한 의도를 가진 친절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주팔자에 무인성인 사람들은 이것을 파악하는데 에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도 가정할 수 있다. 무인성은 보이는 그대로 믿으려는 순수하면서 멍청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사주팔자에 무인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경험이 쌓이면서 친절한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경계심은 생겼을 것이다. 그래도 꺼진 불도 다시 본다 했듯이 항상 약간에 의심을 해야 한다. 왜 나에게 친절한 것인가?


아름다운 영화를 원하시는 분,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는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쯤 상상해본 것을 영화에서 어떻게 풀어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면 나름 괜찮은 시간이 될 수 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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