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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Jun 28. 2021

로망 영화 리뷰

치매 걸린 노부부에 로망은 무엇일까?

로망(2019)

로맨스/멜로 한국 2019.04.03 개봉

112분, 전체관람가

감독: 이창근

주연: 정영숙, 이순재

네티즌 평점: 8.5

- 다음 영화 참조 -


로망은 프랑스 말로 소망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로망을 가지고 살았던 부부가 있다. 그들은 지금은 현실에 퍽퍽함에 벅찬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치매라는 겁나는 소식이 두 부부에게 찾아온다. 그러면서 이 부부는 다시 꿈꿨던 로망을 찾으러 떠난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로망이라는 단어와 안 어울리게 현실에 삶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영화 제목이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이순재와 정영숙 두 배우 덕분에 노후에 삶을 미리 엿볼 수 있고 내 미래도 상상해볼 수 있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쏙 빠진다. 우리네 인생과 다를 바 없는 부부에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다독여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 글은 줄거리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꼬장꼬장한 성격을 가진 75세 조남봉(이순재), 그는 개인택시 운전을 하면서 매일 바쁘게 살고 있다. 은퇴하고 쉬어도 될 나이이지만 그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다.


그의 아내 71세 이매자(정영숙), 그녀는 평생을 대찬 남편 성격을 잘 받아주고 집안 살림을 하며 자녀를 사랑으로 키워왔다.


부부는 아들 하나가 있는데 결혼하여 며느리와 손녀가 있다. 그런데 이 아들은 경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해서 얹혀살고 있다. 아들은 교수를 꿈꾸지만 현실은 반백수처럼 지낸다.


한집에 노부부와 아들 내외와 손녀까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이 북적거리는 일상이다.



손녀는 할머니에게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하고 할아버지에게 돈을 달라고 하지만 버럭 단칼에 거절당한다.


쓸데없는 돈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알뜰한 조남봉 하지만 그로 인해서 가족들은 모두 강제로 검소하고 틀에 짜인 생활을 강요당한다.


어느 날, 이매자는 주전자를 가스불에 올렸는데 물이 끓어넘쳐도 끄지를 않는다. 그녀는 두통이 가끔 오고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혼자 의사에게 상담을 받아보니 치매라는 것이다.


자기가 앞으로 온전한 정신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 이매자는 남편에게 예전에 신혼 초에 갔었던 바다로 가족 여행을 가자고 말한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 후로 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며 단칼에 거절한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가족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하지만 나중에 교수돼서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크루즈 여행을 보내준다고 좀 기다리라는 허풍이 돌아온다.


결국 이매자는 치매가 심해져서 평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예전에 남편 때문에 첫째 딸이 죽은 기억을 떠올라 딸을 죽게 만든 놈이라면서 남편과 개인택시를 마구 때린다. 가족들이 말리고 난리도 아니다.


조남봉은 치매에 걸린 이매자를 요양원에 보내버리라고 호통을 치고 결국 이매자는 요양원에서 홀로 지내게 된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옆에서 따뜻하게 챙겨주던 아내가 막상 집에 없으니 허전하고 그립다.


어느 날, 개인택시 운전 일하러 나서는데 누가 차를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화가 난 조남봉은 범인을 잡기 위해 차량 블랙박스를 열어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기가 진흙이 묻은 신발로 택시를 때린 것이었다. 깜짝 놀란 조남봉은 병원에 찾아가고 그 역시 치매라는 진단이 나온다.


그러고 나니 자기처럼 낯선 무서움을 느꼈을 아내가 떠오른다. 아내가 왜 가족여행을 가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된다.


둘보다는 하나가 나을 거예요.
그래도 하나 보단 둘이 낫지.
심심치도 않고…


그는 요양원에 있는 아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자기가 직접 보살피겠다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말하고 다시 함께 지낸다.


이제 택시 운전은 그만두고 아내를 챙기면서 집안일을 하고 있다.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남편에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진작에 치매에 걸릴 것 그랬다면서


조남봉은 다 같이 가족끼리 소풍을 가자고 말하고 동물원을 찾아갔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이 닫혔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집에서 장만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가족들에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간다.


점점 치매가 심해진 이매자는 손녀를 자기 딸로 오해하고 뜨거운 우유를 겁에 붓으려다가 며느리 손목에 화상을 입힌다.


이 사건으로 며느리는 이 집에서 더는 살기 힘들다고 친정으로 가겠다고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간다. 조남봉은 혼자 남은 아들에게 아내를 따라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집에 노부부만 남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챙겨준다. 둘은 끝까지 함께 할 것을 약속하고 정신줄을 놓지 말자고 독려한다.



멀쩡한 상태일 때 서로에게 하고픈 이야기를 도화지에 적어 소통한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글로 표현하고 글로 대답하는 애틋한 부부이다.


이매자는 더 이상 남편과 자식이 고생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괴롭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다행히 병원에서 아내를 살렸다.


아내에 마음을 이해한 조남봉과 이매자는 마지막 여행을 준비한다. 속 사정을 모르고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어린 소녀같이 맘이 들뜨는 아내이다.


둘은 이쁜 하와이 커플 남방을 입고 있다. 옷이 이쁘다고 좋아하는 아내이다. 마치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에 모습 같다.


겁나지 않아?
올 것이 왔다 싶으니까
아무렇지도 않아요.


조남봉은 자동차 속도를 올려서 저 너머 세상으로 가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속도위반으로 경찰에게 걸린다. 


그래서 시간에 여유가 생겼으니 아내가 가고 싶어 했던 신혼 때 갔던 그 바다를 보러 간다.


새벽에 이매자는 잠에서 깨어보니 푸르스름한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로 걸어가 모래사장에 앉아 한참을 쳐다본다. 꼭 오고 싶었는데 이렇게 오니 좋다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잠에서 깨어난 조남봉은 바닷가에 앉아있는 아내에 뒷모습이 보인다. 아내에게 말을 걸으니 대답을 하지 않고 쓰러진다. 그렇게 아내는 하늘나라로 갔다.


혼자 남은 조남봉은 자동차를 타고 남은 여행을 마저 떠난다.



신혼 초에 젊었던 두 사람이 바다를 보면서 대화를 나눈다. 각자에 로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이가 들면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노인이 되어도 먹고산다는 이유로 일상이 젊은 시절과 다르지 않은 고달픈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 큰 자식이지만 경제적으로 도와주고픈 마음과 여러 가지 이유로 여전히 부모 노릇을 하고 있는 노부부가 나온다.


어찌 보면 지금 60~80대 부모 세대 모습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에 인생보다는 자식을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가 치매가 걸리게 되면서 두 사람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오롯이 두 사람에 추억과 사랑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면서 예전에 품었던 애틋한 서로에 대한 애정을 다시 일깨운다.


영화처럼 시련이 다가왔을 때가 어쩌면 서로에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평소에는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생각에 서로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미루고 또 미루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그런 시련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다가왔는데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아니면 실천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후회하지 않을까 싶다.


이매자가 원하는 것은 엄청난 부와 명예가 아니었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 소풍 가서 오손도손 맛난 거 먹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몇십 년 동안 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숙제처럼 가지고 있었다. 이매자는 남편과 소소하게 나들이 가고 싶고 다정한 말로 대화하고 서로 챙겨주고 싶은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 두 명이 신혼 초에 원했던 소망은 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이유로 그 소망은 점점 멀어져 갔던 것이다.


늦기 전에 지금 여기 내가, 배우자가 원하는 소소한 것을 실천하고 추억을 하나씩 쌓아가야 한다.


자식들도 부모님에 아름다운 노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한 번쯤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담이지만 이순재 캐릭터는 이순재만 가능한 거 같은 느낌이다. 거침없는 하이킥에서도 그렇고 일관된 성격 연기를 보여준다. 지금처럼 계속 건강하게 호통 연기를 잘 보여주길 바란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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