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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화 Sep 12. 2023

이별의 아픔과 후유증

나는 평일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주님께 여쭤보고 싶었다. 나는 눈을 감고 성체조배를 시작했다.

‘주님, 주님께서 J를 저의 짝으로 정해 주신 것 아니었나요? 왜 저를 힘들게 하시나요?’

주님은 답이 없었다. 나도 회피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친한 친구에게도 너무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다. 괜히 J가 욕먹는 것은 참기가 힘들 거 같아서. 평일 미사를 드리고 오면 어김없이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우는 날도 줄어들었다. 나도 점점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J는 이걸 원하는 것이었을까. 주일에 복사도 잘 섰다. 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성당에 미리 가서 기도를 했다.

‘주님의 뜻이었나요? 저의 기도가 부족함을 아시기에 주님의 뜻입니까?’

회사 일은 너무 정신없이 흘러갔다. 새로운 어르신들의 신규 상담과 나들이 프로그램, 그리고 평가 준비에 출근하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퇴근 시간에 다다랐다.
시간이 갈수록 J를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퇴근하고 글을 쓸 때는 웃기도 하고 짜증도 내고 울기도 하면서 쓰다 보니 지나간 시간이 추억이 되었다. 예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그와 함께해서 좋았다. 그와 약속한 한 달이 되기까지 앞으로 2주가 더 남았다. 이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에게 이별을 고할 거라 느껴졌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이라도 놓으면 그는 나를 바로 놓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더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주도권을 뺏겼기 때문이다. 선택권은 그에게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서로 사랑하는데 균형이 다를 뿐이지 서로 재고 따지고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가 시간을 갖자고 한 다음 날 엄마는 나에게 나의 예상과 달리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잘 지내라고, 생일 선물 챙겨 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과자를 잘 먹었다고 전해 달라고 했었다. 그 말은 전할 수 없었다. 나는 이별이 처음이 아니었는데도 이별을 아직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차인 기분이었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면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이별에 대해 ‘우리가 지옥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실연당한 학생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는 뉴욕주립대학교의 실험이 있다. 실연당한 학생들에게 낯선 사람의 사진을 번갈아 보여주며 자기 공명 영상으로 그들의 뇌를 촬영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활성화되는 신경 전달 물질이 다시 분비되었다. 쾌락을 제공하는 ‘도파민’, 몸을 흥분 상태로 만드는 ‘노르에피네프린’, 그리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코르티솔’ 같은 것들 말이다. 연인이 떠나갔음에도 사랑의 전달 물질이 다시 분비되는 이유는 사랑에 빠졌을 때의 행복감을 뇌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연을 경험하면 상실감을 느끼고 결핍된 사랑을 더욱 갈망하기 때문에 과거에 사랑했던 기억이 쾌락 중추를 자극해서 상대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욱 강해져 도파민 분비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별의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고 인지하는 순간 뇌에서는 분노 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이 급격히 분비되고 우리 몸을 흥분시킨다고 한다. 나 또한 무기력하다가 울고 화를 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렇게 낙심한 사람들은 입맛을 잃거나 고열에 시달리는데 이것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와 같은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해서 그때 감정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정신과 의사 토머스 루이스와 리처드 래넌에 따르면 우리가 이별할 때마다 사랑이 시작될 때 느꼈던 홍역을 치러야 하는 이유가 사랑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 때문이다. 낭만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던 화학 물질들이 이별 뒤의 두려움을 격정적으로 만들고 신체적으로 항의하기 때문이라고.

시간이 갈수록 분노하고 울고 혼자 시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청승을 떨었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 정신을 못 차리도록 나를 혹사해 볼까 고민도 했으나 포기했다. 괜히 술을 마셨다가 그에게 술김에 전화를 할 수도 있으니까 참았다. 내 입맛은 돌아오지 않았다. 식사는 여전히 조금 먹었다. 회사 동료들이 나한테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물어봤다. 나는 애써 웃었다.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 밤에 잠을 잘 잤다. 회사 일도 열심히 했다. 그도 여전히 열심히 야근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동시에 내 생각은 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내가 없어도 되는지 확인해 본다고 했는데 내가 없어서 잘 지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점점 무뎌져 가고 있었다. 나는 그와 나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처럼 나도 현실을 직면하다 보니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나는 이제야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국화야, 괜찮겠어? 감당할 수 있겠어?’

나는 결혼 문제에서도 우리만 생각했고, 그는 현실까지 전부 보았다. 그것이 우리의 다름이었다.

‘J야, 나 솔직히 지금 네가 보고 싶어.’

그는 아닐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은 그러했다. 무뎌져 가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 주변에 그가 남긴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가 없이 사는 법을 알지 못해서 순간순간마다 울었다. 주말이 되면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의 색깔이 진해졌다.

‘내가 너를 정말로 많이 사랑하고 의지했구나.’

결혼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결혼은 그와 하고 싶었던 거지, 다른 사람은 필요없었으니까. J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생각했다. J의 선택으로 결정할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J를 놓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J가 나를 놓는다면 방법은 더 이상 없었다.

갈라진 땅들과 말라 버린 채소들, 가뭄으로 단비가 필요한 시점 장마철이 시작되었다. 한 달이 지났다. 그를 만나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하늘에 구멍이 난 건지 비가 쏟아졌다. 습도가 높고 불쾌했다. 나는 우산을 쓰고 그를 만나러 갔다. 멀리서 J가 보였다.

‘울지 말고, 덤덤하게 잘 얘기하고 오자.’

나를 다독였다. 한 걸음씩 발을 떼었다.
그렇게 우리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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