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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랑 살면 좋을까

살아본 사람만 아는 이야기

by 실버라이닝

처음 친정엄마랑 살아서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표정관리가 어려웠다. 처음엔 억지웃음을 지으며 '네 좋아요. 그럼요.'라고 대답하다가 얼마 지나고부터는 억지웃음마저 짓기 어려워 무표정한 얼굴로 '네, 뭐, 좋은 것도 있고…‘'라고 얼버무리거나 ’ 엄마랑 살아보신 분만 아는 뭐 그런 게 있어요. 하하하' 하며 답답한 심정을 교묘히 드러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매일 분가를 고민했다. 작은 전셋집 두 채를 구해 예전처럼 같은 아파트 다른 집에서 사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세가가 매매가와 큰 차이가 없는 데다 분가를 하면 훨씬 저렴한 동네로 평수도 많이 좁혀서 가야 할 처지였으니 남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본인만 참으며 지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바보. 네가 아니라 내가 죽겠어서 그러는 건데. 내가 힘들어하는 건 아무도 모르지.

코로나가 덮치고 온 가족이 집에 종일 붙어 있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나름의 방법으로 서로를 배려하느라 모두 노력했지만 주파수가 맞지 않았다.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달랐는데 그동안에 바쁘게 사느라 몰랐다가 한데 모여 부딪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각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온갖 잡음이 난무했다. 음역대도, 파동도 다른 소리로 가득 찬 집안은 멜로디 없이 삐 소리만 울려 퍼졌다.


집안일이 우선이었던 엄마는 싱크대에 때가 끼고 화장실 청소가 매일 되어 있지 않는 것부터 김치냉장고 손잡이와 전등 스위치 주변 벽지에 끈적이는 때들이 눈엣가시였다. 투석을 하고 돌아와 혈관에 피가 새서 밴드를 8개씩 붙인 팔로 부엌바닥을 닦으며 내가 들을 수 있게 중얼거렸다. '야, 이것 좀 봐라. 시커먼 거. 이게 보이지도 않나 봐. 아유 내가 정말 안 아프면 매일 닦을 텐데.'


남편과는 육아관에 대한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일주일 내내 하루 종일 아이들을 지켜본 남편은 아이들에 대한 불만을 참지 못했다. 그동안 나를 통해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에피소드와 성실한 태도, 그에 따른 결과물에 대한 내용을 주로 전달받아서였을까, 아이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 있었던 듯했다. 다만 문제는 내 눈에 남편의 행동이 자신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해 훈육이 아닌 짜증과 화로 일방통행하는 모습으로 비친다는 점이었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거나 엄마아빠를 무시하냐는 말을 하며 무서운 눈으로 아이들을 쳐다볼 때면 남편의 훈육이 공격적이기만 할 뿐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느꼈다. 어른이라면 충분히 비꼬거나 감정을 건드리는 말보다 긍정적인 언어를 쓰고, 서로 기분 좋게 충분히 행동을 유도할 수 있음에도 남편이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 눈치를 보며 싸움만은 피하고 싶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모르는 척 밥그릇을 덜그럭거리며 설거지를 할 뿐이었다.

엄마와 함께 살고부터 부부싸움을 제대로 못했다. 적당히 눈치껏 알아서 각자 혼자 삭히고 풀었다. 하지만 같은 불만이 반복되자 서로의 분은 안으로 잦아들지 못하고 밖으로 불쑥불쑥 엉뚱한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왔다. 근본적인 원인은 그대로 둔 채 별 것 아닌 일에 자꾸만 날을 세웠다. 게다가 집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였기에 식구들은 다른 가족에 대한 불만을 나에게 털어놨고 나는 매일 어떻게 내용을 미화해 전달해서 관계를 풀어내야 할지 숙제가 쌓여만 갔다. 엄마는 사위와 아이들에 대한 불만을, 남편은 장모님과 아이들에 대한 불만을 나에게 전했다.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전달하려 노력했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기 않기를 신경 쓰며 관리했지만 가족들은 수긍보다는 자신을 방어하는 공격적인 언어를 돌려줄 뿐이어서 상처받는 건 나뿐이었다. 어느 쪽에서건 나는 상대방을 옹호하는, 쓸데없이 관대하고 수동적인 사람취급을 받았다. 웃는 날보다 눈치 보는 날, 걱정스러운 날, 조마조마한 날, 짜증 나는 날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수기 앞에서 물을 따르는데 심장이 조여왔다. 따가운 것도 아니고 쥐어짜는 것도 아니고 심장에 쥐가 나는 것처럼 멈추더니 커지고 부푼 다음 단단해졌다. 묵직한 통증에 나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어 세게 때렸다. 한번, 두 번, 세 번. 그래도 통증은 계속되었다. 여덟 번, 아홉 번, 열 번. 심장이 아픈 것보다 주먹이 떄리는 통증이 심해질 때까지 한참을 때리고 나니 심장에 난 쥐가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휴. 깊은 한숨을 쉬는데 오래전 한 철학관에서 ‘정신병원에 갈 팔자네요.’라고 들은 말이 떠올랐다.


아마 이 날이었을 거다.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나 몰라라 약을 받아먹으며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게. 치매에 걸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죽은 동생이름을 부르다가 아 맞다 정화는 죽었지, 하며 까르르 웃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티브이에서 영화를 보며 울다가 잠들고 싶었던 게. 프로포폴 주사를 한 대 맞고 누워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우리 집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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