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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매너리즘

몸이 지치면 며칠 후 마음이 지친다

by 실버라이닝
웩. 웩. 아우 토할 거 같아.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대학병원까지 가는 길. 엄마는 뒷좌석에 누워 입에 비닐봉지를 대고 구역질을 했다. 드신 것도 없어 침만 뱉을 뿐이었지만 계속되는 메스꺼움으로 신음소리를 냈다. 운전말고는 딱히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없이 운전대만 꽉 쥐고 있었다. 능숙하게 응급실 접수를 마치고 나면 엄마와 침대에서 의사를 기다렸다. 매번 반복되는 AI 같은 질문에 AI처럼 대답을 하고 나면 간호사가 우리와 눈을 마주쳐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응급환자 우선’이라는 글귀를 보며 숨이 넘어가는 자신이 제일 응급이 아니냐며 엄마는 나를 재촉해서 의사나 간호사를 부르게 했다.



야, 네가 가서 자꾸 말을 해야 들여다본단 말이야. 가서 좀 물어봐봐. 피검사 결과 언제 나오냐고. 급한 환자도 없어 보이는데 왜 여기는 들여다도 안보는 거야. 속 메슥거려 죽겠는데.



투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창기에 포도를 많이 드시고 포탈슘 수치가 급격하게 올라 호흡이 정지될 뻔 한 상황에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구급차가 올 때까지 3분에서 5분을 버티기 위해 산소통을 사서 방 한 구석에 세워 두었다. 하지만 그 후로 엄마의 철저한 식단관리로 한 번도 포탈슘 수치는 오른 적이 없었다. 다만 수치가 오를 까봐 무서워하는 마음의 병이 생겼다. 소화가 잘 안 되거나 감기 기운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으면 엄마는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진다거나 토할 것 같다고 증상을 호소했고 구급차를 불렀다. 그렇게 수차례, 병원에 가서 산소포화도와 피검사,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다 찍어도 특별한 이상이 없었던 엄마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공황장애 증상인지 포탈슘 수치가 오른 증상인지를 구분하기까지도 또 몇 년이 더 걸렸고 그동안 응급실행은 반복되었고 의료진을 재촉하는 상황도 늘 무한반복되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응급실행에 대한 나의 반응도 무뎌졌다. 당황스러운 기색도 없이 의료진보다 덤덤하고 때로는 더 차갑게 엄마를 대했다.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다가 엄마가 이불을 덮어달라고 하면 그제야 엄마를 보고 이불을 한 번 덮어주었다. 옆에 환자가 들어오면 그 환자의 상황을 지켜보는 일에 더 신경을 썼고 엄마의 질문에 짧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잦은 응급실행에 매너리즘이 찾아와 나는 겨우 잔심부름이나 진료비 결제 정도만 하는 게으른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매너리즘의 사이사이 언제나 후회와 자책의 자문자답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 나도 알지. 엄마는 일부러 아픈 것도 아니고 응급실이 좋아서 가려고 하는 것도 아니지. 그래, 맞아. 엄마가 일부러 투석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나를 고생시키려고 낳은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내가 힘든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젠 연락할 동생이 없으니 나 혼자 엄마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서 밤을 새우고, 아이들을 돌보고 일을 하고 다시 병원에 가고. 힘든 마음에 엄마에게 툴툴대고나면 고생은 다해놓고 쌀쌀맞다고 욕을 먹었다. 엄마는 아플 때마다 짜증을 내는 횟수가 늘어갔고 자주 서럽다고 울었다. 남편은 중간에서 바쁘고 그러면서 미안해했고 아이들은 정신없는 어른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그러면서 어느새 돌아보면 한 뼘씩 커 있었다. 이 끝이 언제일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는 것이 또 죄가 되는 것 같아 차마 상상은 못 해보고 당장 하루하루가 억울하고 힘들고 외롭다고 혼자 생각해 볼 뿐이었다.



응급실에 가는 시간은 보통 밤 열두 시가 넘을 때가 대부분이고 둘째가 아직 어렸을 때라 나는 늘 지쳐있었다. 안 그래도 잠이 부족한데 이렇게 응급실행을 하는 날이면 내 몸이 힘든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한두 시간 잠들었다가 다시 엄마를 신장 투석실에 데려다 드리고 큰 아이 등교를 챙겼다. 그제야 눈을 좀 붙일까 하면 둘째가 일어나 배고프다고 하는 탓에 진한 믹스 커피 한 잔을 찬물 마시듯 벌컥벌컥 마셨다. 몸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지치고 나면 며칠 후 마음이 지쳤고 매너리즘은 조금씩 무기력과 우울증으로 모양을 바꾸고 있었다. 끝나지 않은 어제에 억지로 마침표를 찍고 시작하는 하루의 문장은 단어가 아닌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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