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언어
신장투석을 한 지 10년이 넘은 엄마는 매 달 피검사와 엑스레이,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우리는 매번 감옥에서 가석방 판단을 기다리는 장기복역수처럼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 설명을 듣는 일은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몇 년 간 큰 탈 없이 잘 넘어갔는데 이번엔 고비를 넘지 못한 듯했다. 엑스레이상으로 신장쪽에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확실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결과 나온 다음에 거기에 맞는 대책을 강구하자고 겨우 엄마를 달래 놨는데 투석실 의사가 초를 쳤다.
내가 의사밥 먹은 게 몇 년인데, 엑스레이 딱 보니까 생긴 게 아주기분이 나빠.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 동안 엄마는 종일 드시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가족들은 엄마 눈치를 보느라 각자의 공간에서 조용히 할 일을 했다. 엄마 방에 들어가서 TV 채널을 돌리며 엄마가 평소에 좋아하던 트로트 경연프로그램의 볼륨을 올려봤지만 엄마의 귀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나쁘게 생겼다’는 그 세포가 암세포가 분명하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이미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의사는 우리에게 일단 개복을 해서 신장을 떼어낸 다음 확인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암이 아니면 다행인 거라고. 그러면서 ‘하지만 뭐 이건 거의 확실해요’라는 말을 굳이 덧붙이며 엄마의 상처받은 영혼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댔다.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 끝에 주변의 권유로 더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의사는 자신을 의심하는 거냐며 그 후로 신장실 내진을 돌 때 엄마 침대를 건너뛰었다.
신장암 쪽 분야에서 유명한 교수님으로 예약을 하고 검사까지 한 달을 기다렸다. 한 달 동안 우리 모두 대화가 별로 없었다. 엄마는 기운을 내려해도 나지 않는 게 느껴졌고 식구들은 분위기를 즐겁게 끌어올리려고 노력해야 할지 그냥 조용히 지내는 게 나은 건지 헷갈렸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이 지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교수님은 이전의 의사와는 달리 말수가 적었다. 하지만 그는 ‘투석 오래 하셨네요. 고생 많으셨겠어요.’ 하며 두꺼운 투석 바늘이 10년 넘게 꽂혀 굵어진 엄마의 혈관을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와 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혹시 암이 맞으면 교수님께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거죠?
교수님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일은 없어야죠. 사진으로 봐서는 확실하진 않은데요. 결과 나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너무 걱정 마시고요 혹시 악성이더라도 다 방법이 있으니까요.
말은 그렇게 엄마와 나를 죽였다 살렸다. 동화 속에서 자신을 구하려다 죽음을 맞이한 왕자를 끌어안고 흘린 공주의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살려내듯 교수님의 말 한마디는 우리 모녀를 구했다. 이전의 한 달보다 훨씬 살만한 일주일을 보냈고 결과는 음성이었다.
다행입니다. 음성이네요. 그냥 예전처럼 투석 잘 받으시며 관리 잘하세요.
나란히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손을 꽉 잡았다. 엄마도 기분 좋게 웃으며 울었다. 살았다. 엄마, 우리 더 행복하게 지내자. 맛있는 거 더 많이 먹자. 여행도 가자.
관에서 일어난 시체처럼, 죽었다 살아난 귀신처럼 엄마가 병원 투석실로 돌아갔다. 오진을 했던 의사는 엄마의 결과를 다른 환자들을 통해 이미 들었지만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호사들만 ‘다행이에요 어머니.’ 하며 인사를 건넸다. 의사와의 갈등을 다른 의사와 풀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말로 받은 상처도 말로 회복했으니 되었다. 그동안 신장 투석만으로도 힘들었는데 이젠 암이 아니고 신장 투석만 한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게 된 걸로 충분했다. 누구보다 건강해진 기분으로 다시 월, 수, 금 열심히 병원에 갔다. 동화 속 죽은 왕자가 살아나 공주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듯 우리도 이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모녀의 인생은 잔혹동화였다. 잘못 배달되었던 암을 돌려보내고 얼마 후 진짜 암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