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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물속에서

겁이 많은 용감한 사람

by 실버라이닝


수영을 한다. 아니, 마구잡이로 헤엄을 친다. 어느새 검게 변한 강물. 찐득해져 살갗에 들러붙는 촉감이 생생하다. 찝찝해져 물에서 나오려 반대방향으로 물살을 갈라 보지만 불어난 강물에 떠밀려가기만 한다. 폭포가 시작되는 경계선까지 끌려 가자 시선이 갑자기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변한다. 하늘 모서리에서 내가 허우적대는 나를 바라본다. 잠에서 깬다.


물은 늘 끈적하고 더럽다. 흐름은 불안정하고, 수면 아래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 내 몸은 물속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다가 오물이 가득한 검은 물속에 얼굴까지 잠기기도 한다. 깨어난 후에도 여전히 피부에 감각이 남아 있어서 불쾌하고 생각할수록 두렵다. 하지만 다시 잠이 들면 또다시 강으로, 바다로 가 헤엄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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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같은 꿈을 꾼다. 더러운 물에서 허우적대는 꿈. 처음 이 꿈들을 꾸었을 땐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려는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하지만 이젠 미래가 아닌 지금의 나를 보는 거울로 여긴다. 꿈이 나와 내가 대화를 나눌 테이블을 마련해 주는 셈이라고.


그러고 보면 꿈이 새로운 일을 대하는 내 도전의 방식과 닿아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내가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가까운 지인들은 안다. 새로운 일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날들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그러면서도 여유로운 자태는 놓치고 싶지 않아 가면을 쓰고 관객을 맞이한다. 무대 뒤, 결과에 대한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자고 끊임없이 독백과 방백을 일삼는 사이 내 안에 가득 찬 불안을 틀어막느라 고생하는 건 무의식의 나뿐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날 바보 취급 하진 않을까? 도중에 그만두면 혀를 차겠지? 괜히 나섰나?


질문들이 한 여름 관악산의 모기들처럼 내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을 끌어안은 채 물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나를 끌고 들어 간다. 적어도 물속에선 모기들이라도 사라지겠지. 실패할까 봐 두려운 사람인 동시에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그대로 머무는 것이 더 두려운 사람. 그 양가감정 사이에서 나는 꿈속의 강을 계속 헤엄친다.


어쩌면 내 머리와 마음이 방황할 때 오히려 몸은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하다. 거센 물살에 휩쓸리고, 두려움에 떨다가도 언젠가는 물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러면 된다는 것을. 물아래 모래바닥에서 나를 다시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게 다라는 것을.


그래 나는 겁이 많지만, 그보다 더 용감한 사람.

그러니 다시 강으로 들어가는 사람.

수영을 잘 하진 못하지만

허우적거릴 힘 정도는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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