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카드

이상형이 아니면 어때

by 실버라이닝

그는 매일 새벽 기도에 나가는 성실한 교회 오빠 스타일이었다. 또래 남학생들과는 결이 다른 씁쓸한 유머를 구사하고, 여자 친구들의 고민을 차분히 들어주는 진중한 시선까지.


유일한 단점이라면 나와는 거리가 먼 여자를 좋아한다는 정도랄까. 긴 생머리에 잘록한 허리, 속삭이듯 말하는 애들 옆에서 일단 친구로 내 자리를 사수하기로 한다. 주기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연애 조언을 핑계로 꾸준히 가스라이팅을 하는 건 기본이고. 연약한 여자를 보필하며 인생을 낭비하지 마. 자기 주도적인 여자를 좋아해야지. 이를테면 나 같은.


이상형이 내가 아닌 사람을 곁에 두는 것으로 사랑이 시작되었다. 혹시나 새로운 카드가 들어와 패색이 짙은 포커판을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라는 킹카드를 손에 꽉 쥐고 그의 곁에 새로운 여자가 나타나도 태연하게 판을 지켰다. 괜찮아, 저건 뻥카야. 체크 또 체크, 배팅을 하며 다음 카드를 기다리다 그녀가 떠나면 콜, 내 손엔 언제나 킹카드가 있었다.


목사님이 될 줄 알았더니 대학에 가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연락처를 알아내 술 한잔하자고 용기를 냈다. 아끼는 후배를 소개해 주겠다며 이제 막 제대한 남자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그와 술 한잔할 핑계가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그를 흔들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크게 흔들리는 건 나였다. 둘이 운명이라면 보내줘야지 하면서도 맘 졸이는 내가 둘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더 있다가요, 언니.


후배의 말 한마디를 동아줄처럼 붙잡았다. 우리 둘만 아는 이야기들을 들추며 그를 놀리고 웃는 사이사이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선을 지키는 척하면서, 선을 흐리는 행동만 골라하며. 들킬 만큼 솔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물러나지도 못한 채. 소개팅이 끝날 때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셋이 걷던 길엔 어느새 그와 나 둘만 남았다. 나란히 버스에 오르는 내 모습이라니, 이 정도면 내 패를 다 보여준 거 아닌가 싶은데. 그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없이 술에 취한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