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

너의 패를 보여줘

by 실버라이닝

  이 틈에 지난 몇 년간 내가 보지 못한 모습이나 캐내 볼까. 베테랑 형사처럼 노련하게 살금살금. 꽤 희망적이었다. 가스라이팅이 빛을 보기 시작한 건지 아니면 삭막했던 군 생활 때문이었는지 이상형이 내 쪽으로 조금 방향을 튼 듯했다. 자상함과 어두운 유머, 인생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는 더욱 깊고 단단해져 있었고. 다행히, 그는 후배와 운명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익숙한 실루엣이 차에 올라탔다. 첫 번째 과외를 마치고 두 번째 과외를 가는 길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물었다. 이따가 소주나 한잔할래? 원래 술은 더 원하는 쪽이 사는 법. 제발. 마음은 다급했지만, 들키고 싶지 않아 눈에 힘을 풀고 물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가늠해 볼 새도 없이 돌아온 그의 대답은, 그래. 손에 쥔 킹카드가 반짝였다.


오늘 밤엔 조금 특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동네 작은 꼬치구이 집 하나 거덜 내면 네 진심을 알 수 있을까. 술잔을 채우고 또 채운다. 우울도가 비슷한 남녀는 사랑에 빠지기 쉬우니, 가끔 행복하지만 주로 우울한 둘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이가 반갑다. 위로나 억지 공감 따위 필요 없는 가성비 좋은 대화. 책임감과 자유 사이를 줄 타듯 사는 기술 이야기는 어느새 사랑하는 법에 대한 자기소개가 되고.


취한 그가 상처를 보여주는 순간, 거기 그곳에 파고들어 가시처럼 박히고 싶다. 상처의 동맥을 찔러 내가 빠져나가면 죽는다고 고백하도록. 나 때문에 아프고 나 때문에 산다고 매일 편지를 쓰도록. 거절당할 것 같지 않은 믿음 아니 거절당해도 좋다는 객기가 생기고, 마침 우리의 영원한 부스터 소주가 곁에 있다.


소주잔을 들자 그가 웃었다.


그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그의 눈을 보며 내가 말했다.


아니, 이거 마시면 나랑 키스하는 거야.


잔을 내려놓기 전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친구로 지내는 동안 궁금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면, 그의 키스는 어떨까. 목소리처럼 낮고 굵을까 아니면 상큼한 반전이 있을까. 얼굴에서는 어떤 향이 날까. 나는, 나는 어떻게 될까.


키스는 유연하고 따뜻했지만 단호했다. 내 움직임에 맞춰주는 듯해도 절대 내가 이끄는 대로 두지 않았다. 그러니 기린처럼 목을 꼬며 눈이 마주치면 웃는 게 전부. 고양이처럼 등을 꼿꼿이 세우다가도 금세 코알라처럼 몸을 둥글려 그의 품에 쏙 들어가는 게 최선.


입술에서 시작된 고백이 혀끝을 찌른다. 나를 사랑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틈을 주지 않으므로 대답은 즉각적이다. 모르겠어? 사랑해, 사랑한다고. 엎치락뒤치락거리던 두 개의 사랑이 동시에 외친다. 너의 카드를 보여줘. 카드를 뒤집어. 내가 먼저 쥐고 있던 킹카드를 보여준다. 로열 스트레이트 플래시. 그가 뒤집은 카드는 에이스. 풀 하우스.